프랑스에서 사는 한국인 화가 이응노
상태바
프랑스에서 사는 한국인 화가 이응노
  • 황찬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9.14 08: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9년 독일 지역 순회전을 통해 미지의 한국인 화가로서 자신의 예술가적 역량을 마음껏 펼쳐 보였고 이응노는 1960년 1월 즈음 프랑스에 안착한다. 이응노의 술회에 따르면 ‘처음 독일과 유럽 및 미국 순회전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으나 유럽에서의 전시를 통해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게 됐고, 동양화와 서양화가 융합한 새로운 현대회화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정신이 그를 붙잡았다’고 한다. 

1959년 독일 활동시기, 4월 푸랑크푸르트에서의 <미국현대미술순회전시>와 7월 <카셀도큐멘타전시>를 접하면서 선진국 유럽과 현대미술이란 드넓은 세계에 그의 성정 상 응당 도전하고 싶었음이 분명하다. 1960년대 초, 프랑스 파리에 정착하며 파케티 갤러리(Galerie Paul Facchetti)와 전속계약(1961~1964)을 맺고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나 넉넉하지는 못했다. 아울러 한국에서 마련해간 여비 중 일부를 유학생에게 빌려줬다가 한국의 4·19혁명으로 송금이 끊어지게 되자 이응노 또한 난처한 상황에 빠지며 생활은 물론 작품재료 구입 또한 어려워졌다.

그러나 이응노는 그리다가 버린 한지, 신문지, 컬러잡지들을 손으로 찢고 뜯고 붙이는 새로운 경향의 꼴라주 작품을 1962년 파케티갤러리에서의 첫 번째 개인전에 출품하며 그의 예술가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다. 이후 이응노는 동양의 상형문자와 금석문, 페르시아 문명의 쐐기문자(수메르어, 고대 페르시아어 등), 아랍문자, 유럽 전통의 캘리그라피 등을 자유자재하게 구성하여 현대미술의 새로운 형식을 실험한다. 

나무, 바위, 구름, 새, 곤충, 동물 등 자연의 형태와 춤추는 사람 형상이나 동양의 상형문자를 결합해 구성(Composion)시리즈를 탄생시켰다. 이후 태피스트리, 헌 목재, 나무가구, 양털, 솜, 한지꼴라주, 수묵, 나무조각, 도자기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해 독특하면서도 생명력이 넘치는 다양한 특성을 지닌 문자추상 작품을 제작했다. 복잡한 구조의 문자들이 결합하면서도 간결한 짜임새와 3차원적 깊은 공간감은 유럽 예술인들에게 높은 찬사를 받기에 충분했다. 

이응노의 근본이었던 동양 미학을 근간으로 문자추상(Composion)이라는 현대미술의 새길을 만들어낸 것이다. 아울러, 이응노는 새로운 예술형식을 다양한 재료들로 실험하면서도 서화, 수묵, 풍경, 인물, 화조, 사군자 등 자신을 이끌고 깨우치게 했던 전통의 계승과 새로운 창작이라는 흐름을 놓치지 않으며 지속적으로 작품을 제작하였고 완성도를 더욱 높이기 위해 부지런하게 사생과 소묘를 연습했다.

1962~1964년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독일, 스위스, 벨기에, 미국, 한국 등에서 개인전과 단체전시를 개최하며 창작활동에 전념하던 중인 1964년, 세르누시미술관장 앨리세프, 평론가 자크 라세뉴, 화가 피에르 라세뉴, 한스 아르퉁 등 프랑스 각계각층 유명 인사 14명의 후원으로 프랑스 파리 세르누쉬미술관 내에 ‘파리동양미술학교’가 설립됐으며, 이응노는 교수로 위촉돼 푸른 눈의 제자들에게 동양의 서예의 법도, 사군자, 수묵산수를 가르치면서 동양미학의 심오한 세계를 교육시키고 전파하게 된다. 

박인경 화백의 인터뷰에서, “파리동양미술학교 한 학급 학생은 10명이었고, 수업은 기본 10회였으며, 첫 수업은 늘 선을 긋고 글자를 익히는 연습에서 시작했다. 서도(書道)를 배운 뒤, 먹을 쓰는 법, 풍경화 인물화 동물화 등 장르별 습작을 거친 뒤 수강생 자신의 작품을 제작하는 것으로 수업 구성이 됐다”고 증언했다. 실제로 이응노는 수강생들의 지도를 위해 ‘서도의 기초’라는 글자 교본까지 제작했고, 1978년에는 《수묵담채화법》을 발간했는데, 이 책은 수업교과서 용도로 수묵실습을 위한 기초 설명과 더불어 동양화의 다양한 이론과 미학적 관점을 설명하고 있다. 

예를들어 문방사우(붓, 먹, 벼루, 종이), 붓 쥐는 법, 선 긋는 법, 붓의 농염(濃艶)을 비롯 자연사물을 그리는데 있어 생략법과 자연에 대한 이해까지도 설명하고 있다. 또한 1988년에는 25년간 수강생들을 지도하면서 알게 됐던 여러 문제점들, 특히 수강생들이 어렵게 느끼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붙인 증보판 《수묵화 그리는 법 1988》을 제작했다. 이응노의 파리동양미술학교에서의 강의는 실질적으로 유럽 내 동양미술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동양문화를 전파하는데 있어 많은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1989년 이응노 화백 작고 후 박인경 화백이 지도했으며, 2015년 기점으로 약 3000여 명의 제자들을 배출했다.
 

황찬연 <천안시립미술관 시각예술팀장,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