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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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을 읽고
  • 김혜진 <홍성녹색당>
  • 승인 2023.09.21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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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있고 괴상하며 오만하고 똑똑한 여자들. 제목을 보자마자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미쳐있고 괴상한 여자들의 이야기는 어떤 걸까. 우울증에 대한 책이라는 것도 이 책을 택한 주요한 이유다. 나 자신을 포함해, 내 주변의 우울감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미나라는 젊은 연구자는 우울증을 겪은 자신과 다른 여성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을 쓰고, 알아주지 않던 고통을 주목해야 할 고통으로 만들며 스스로 회복하는 과정으로 삼았다. 31명의 여성들과 인터뷰를 해 완성한 이 책은 특히 한국의 이삼십대 여성의 이야기를 기록하고자 했다. 저자는 현재 한국의 이삼십대 여성을 사회적 규범과 스스로 추구하는 가치 사이의 괴리가 가장 큰 세대로 보았다. 이러한 사회적 모순 속에서 다양한 우울, 불안 증상을 갖고 고립된 채로 앓았던, 또한 강건히 버티고 일어나 서로와 공동체를 위한 활동을 하고 자립적으로 살아가게 된 이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이야 말로 정치적 활동이자 새로운 문화를 찾아가는 일이라 여겼다.
 

하미나/동아시아/1만 6000원.
하미나/동아시아/1만 6000원.

이제는 이삼십대를 지나 버렸지만 나 또한 이 이야기를 듣는 것이 절실했다. 무기력, 자해, 불면, 공황장애, 애정결핍, 자살 충동, 건망증, 강박증, 난독증, 불안증, 조현증, 조울증,,,,,, 책에 나오는 이 병명들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도 오랫동안 우울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정도도 우울증인지, 아닌지? 내가 힘든 것이 나 때문인지, 아닌지? 이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끊임없이 되묻고, 나 자신을 자책하며 살아왔다. 이 책을 통해 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이것이 이삼십대의 이야기라면 나는 사십대의 이야기를 또한 완성해보고 싶었다.

저자는 우울증의 진단과 치료 과정에서 여성들의 고통이 제대로 진단되지 않고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는 현실에 대해 설명한다. 원인 모를 통증으로 알려져 있는 섬유근육통, 다발성경화증, 과민성대장증후군, 턱관절장애 등의 증상과 우울증은 주로 여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판명이 어려운 질병은 유독 여성, 노인, 빈곤층에 많은데 이는 이들의 고통이 주류 학문의 담론으로 제대로 언어화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체 고통을 고통으로 승인받지 못한 여성의 우울감은 깊어가고, 우울해지며 신체 또한 더욱 병들어 간다. 서구 백인 남성 지식인 계층을 통해 규정되고 보편화된 정신질환의 이름들은 한국의 여성들의 고통을 얼마나 잘 설명해줄 수 있을까? ‘징징댄다고 생각할까 두려웠다.’

나는 웅크리고, 울거나 공상하며 살아온 시간이 아마도 그렇지 않은 시간 보다 많은 사람 중에 한 명일 것이다. 이는 자기 검열과 불안만을 가중시키는데, 책에 등장한 여성들의 이야기와 같았다. 끝없이 나를 덮치는 무기력, ‘정신력’이 약한 것 아니냐는 핀잔은 자기혐오를 키웠다. 의문과 자책으로 점철된 나의 역사가, 이 책에도 있었다. ‘진단은 누군가 나의 고통을 알아주는가 알아주지 않는가의 문제이다. 알아줌은 너무도 중요한 문제이다. 어쩌면 전부이다.’

나의 고통은 중증은 아니었기에 더욱 이름 붙이기 어려웠고 이를 고통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 심적 고통만 커져왔다. 그러나 이 뿌연 안개 속에서 ‘미괴오똑’을 읽으며 어느 정도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아니 살아오면서 조금씩 서서히, 나는 답을 찾아온 것 같다. 그렇다는 사실을 미세하게 느끼며 지금 이 순간까지 왔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어떤 고통도 모두 같은 크기가 아니고 각자의 고통은 모두 정당하며, 이야기되어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되어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저자가 만난 여성들 중 누구도 우울을 온전히 개인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내가 제일 아프고 나만 아프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내게 문제가 생겼다’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릴 만큼 예민한 촉을 가지고 이 고통이 얼마나 복잡한 그물망 속에 존재하는지를 감각했으며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이를 컨트롤하기 위해 애썼다. 그 과정에서 여성들은 스스로를 구원하는 주체가 나 자신임을 자각하게 된다. 여성 우울증 서사는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시민적 움직임으로 확장되어, 시위를 하고, 피해자 지원 단체를 만들며, 국회의원이 되거나, 창당을 하는 등, 자신의 상처를 드러내고 그것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를 치열하게 고민하는 개인으로서, 사회적 흐름으로서 존재했다.

결국 이것은 시대적, 사회 구조적 모순과 폭력 속에서 스스로를 돌보는 법을 알게 된 저자와, 31명의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서로의 고통을 기록하고, 연결하며 이를 사회적 차원으로도 ‘중요한’ 고통으로 만들기. 상처는 자긍심이 되고 연약함은 되려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는 힘이 된다. 취약했지만, 스스로 열심히 탐구해 온, 당사자이며 자기 몸의 전문가로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거리며 걸어와 찾은 답 또한, 나의 고통이 곧 나의 자랑이라는 것이다. 다른 여성들의 증언의 기록을 통해, 고통은 나를 넓게 만들었고 더욱 나아가게 했다는 걸 확신한다.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나아가는 여성들의 ‘우울’에 대해 궁금하다면, 고통을 이해하고 또 다른 방식의 돌봄을 상상하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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