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절에서 소통으로 가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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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절에서 소통으로 가기까지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0.0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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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의 변화는 갑자기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회복은 변화 그 자체를 시작하고 유지시키는 수많은 단계의 한 과정이다. 

K씨는 H기관의 운영팀장이다. 본 기관에서 근무한 지 3개월이 돼간다. 주로 하는 업무는 행정 서류 작성, 기관 행사 준비, 그리고 사업보고서 등을 작성한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일을 할수록 유능함과 소속감이 더해간다. 특히 H기관은 독거노인 간식을 지원하고, 지역아동들의 주말 돌봄 및 이주 아동을 함께 키우기 위한 프로그램 등을 운영함으로써 지역사회와 협치를 이루는 기관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과 아이들을 만나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보람된 지금의 일을 시작하기까지 K씨는 외부와 단절된 생활을 7~8여 년 동안 했다. 귀를 닫고, 눈을 감고 현실을 도피했던 그 시절의 삶은 긍정적이고 건강한 지금의 삶과는 매우 대조되는 모습이다. 

K씨는 어린 시절부터 직업군인인 아버지의 폭력적 언행으로 많은 상처를 받았다. 무엇보다 가족을 지시하고 통제하는 태도로 인해 “나는 커서 아버지에게 꼭 복수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된 후 아버지에게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했다. 유일하게 대응한 것은 아버지가 병환 중일 때, 한 손은 아버지의 멱살을 잡고, 한 손은 장롱을 친 것이 전부였다. 그렇게 증오하고 미워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삶에 대한 의욕은 더욱 상실되고 허무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상담자가 볼 때, K씨가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향한 미움과 증오, 그리고 복수하겠다는 생각은 성인이 된 후 게임과 유튜브로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선택게 했고, 행동의 정당성을 위해 아버지에게 잘못을 돌리면서, 아버지에게 수동적인 보복을 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로 인해 아버지는 자녀를 제어할 수 없음을 인식했고, 상실감과 공격성을 극단적으로 표출하면서 아들과 영원한 이별을 한 것이다.

프로차스카(James Prochaska)와 디클레멘트(Carlo DiClemente)는 변화모델(Model of Change)을 개발했다. 변화 5단계 모델은 바람직하지 않는 행동에서 바람직한 행동으로 변화할 때 사람들이 겪는 단계를 설명한다. 첫 번째 단계는 전숙고단계이다. 이 단계에서는 변화 의지가 없고, 문제 인식도 없으며, 양가감정도 느끼지 못하고, 회복이나 변화를 위한 실천도 없는 상태이다. 두 번째 단계는 숙고단계이다. 문제 인식과 불편감을 보이며 양가감정이 생기지만 과의존을 포기할 수 없는 딜레마 상태이다. 그래도 상담에 자발적으로 오게 하는 단계는 이 단계이다. 세 번째는 준비단계이다. 이 단계는 생각한 것을 준비하거나 행동으로 조금씩 옮기는 과정 중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과의존이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이 더 많다는 것을 믿기 시작하는 단계이다. 네 번째는 실행단계로 과의존 행동을 줄이거나 중단하기 위해 적극적인 시도를 하며 치료 계획을 세우는 단계이다. 이 단계를 통해 변화를 갖고, 변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유지단계이다. 이 단계는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한다. 하지만 변화 동기가 약해졌을 때 재발할 수 있다. 하지만 재발은 치료 과정 중에 나타날 수 있는 당연한 결과이기에 지속적으로 반복하다 보면 더 건강한 유지단계를 지킬 수 있게 되고 견고한 회복상태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현재 K씨는 실행 및 유지단계이다. 가정방문상담이 시작될 때는 숙고단계였고, 이후 준비단계 때 지자체에서 운영되는 ‘배움 카드’로 10개월 동안 간호조무사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국가자격증을 취득했지만 취업이 원활하지 않으므로 잠시 어머니와 갈등의 시간이 있었지만 K씨가 사회 구성원으로 생활을 시작하기까지 어머니의 ‘버텨주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여겨진다. 성인이 된 똑똑한 아들이 집에서 게임과 유튜브에 빠져있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힘들었을지 추측이 되기 때문이다. 

또한 준비단계 및 실행단계 때, 가정방문상담이 종결된 이후에도 간헐적으로 연락을 준 가정방문상담사 J선생님이 있었다. 선생님과 통화가 끝나면 ‘다음에 연락을 주실 때는 조금이라도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려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동기 요인이 되어 좀 더 노력하게 된 측면이 있었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첫 월급을 탔을 때 J선생님과 어머니에게 식사를 대접했다. 그리고 어머니에게 용돈도 드리고 일부 보험료와 적금도 시작하게 됐다. 곧 K씨의 저항을 함께 구르면서 변화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공감과 관심을 기울인 열매인 것이다. 

K씨는 앞으로 청소년을 위한 일을 하고 싶어 한다. 이를 위해 관련 공부를 알아보고 있다.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공부를 잘했고, 고등학교 때는 SKY반에 배정될 정도로 성적이 우수했음을 기억한다. 가정불화와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과 증오로 희망하던 길을 갈 수 없었던 삶이었지만, 상담을 통해 뛰어난 집중력과 높은 이해력, 그리고 즐겨하는 영어가 자신의 매우 큰 강점 자원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필자는 K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그러자 “첫째는 어른(부모)들이 잘해야 한다. 하지만 (자식들도) 부모를 미워하지 말라”는 말과 더불어 “실수하는 것을 겁내지 말고 넘어져도 당당히 일어납시다”라고 하며 활짝 웃었다. 

상담자는 K씨가 앞으로 건강한 동기균형을 갖기를 바란다. 곧 취미 활동과 여행, 그리고 생산적인 직업 활동과 봉사 및 종교 활동을 통해 자율감과 유능감, 그리고 관계감과 목표감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기를 응원하고 희망의 홀씨를 날린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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