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연결된 고통》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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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연결된 고통》을 읽고
  • 이동호 <홍성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이사>
  • 승인 2023.10.05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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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군 홍동면 인구는 3400여 명. 지난 6월 홍동에 ‘우리동네의원’이 문을 열었다. 우리동네의원(이하 동네의원)은 ‘홍성의료복지사회적 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의원인데 문을 연 지 올해로 8년째다. 지금까지 소재지로부터 3km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접근이 편리한 면 중심지로 올해 이전했다.

동네의원 길 건너에는 농협 마트가 있어 장 보러 오는 김에 들리는 어르신들과 주변 초·중·고 학생들이 주로 이용한다. 월 이용 환자수는 800여 명, 하루 평균 40여 명으로 홍동면 인구 1%가 매일 이용하는 셈이다. 우리동네의원은 1차 의료기관이다. 입원이 가능한 2차, 종합병원인 3차 상위 병원으로 가기 전 단계의 치료와 진찰을 받을 수 있다. 중대하거나 시급한 질병 치료가 아닌 가벼운 처방과 약을 받을 수 있는데, 의원을 이용하는 환자 대다수가 걸어서 이동하는 교통 취약 계층이라는 점을 고려해 보면 주민들이 체감하는 이점이 매우 크다. 약봉지 하나 받기 위해 하루 온종일을 쓰지 않아도 된다니 감사한 일이다.
 

이기병/아몬드/1만 7000원.
이기병/아몬드/1만 7000원.

책 <연결된 고통>의 저자는 서울 가리봉동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의원에서 일했다. 공중보건의로 이곳에서 군복무를 했다. 외국인 노동자의 근무 여건이 어떤지는 여기서 말하지 않아도 우린 이미 알고 있다. 근무 여건과 마찬가지로 그 생활 여건이 건강한 몸을 유지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닐 거라는 것도 예상 가능하다. 건강보험 가입도 어렵겠으나, 보험에 가입했다 하더라도 병원을 방문할 시간조차 없는 경우가 많다(병원치료를 못 받는 이유로 병원 갈 시간이 없어서가 30%라고 한다). 그래서 저자가 근무했던 외국인 노동자 병원에는 참다 참다 병을 키워 오는 환자가 많다.

책은 저자가 내과전문의로서 마주 앉은 환자의 질병을 규명해 가는 내용이다. 다음 환자가 기다리는 촉박한 일정 속에 조금이라도 병의 단서를 찾아보려는 저자의 모습은 탐정의 수사일지 같다. 독자도 셜록을 보조하는 왓슨처럼 그 과정을 따라가게 된다. 마지막 즈음 환자의 병명이 밝혀지는 순간 우린 비슷한 희열을 느낀다. “범인은 바로 OO이야!” 

책의 진짜 매력은 이제부터다. 저자는 환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방식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어디가 불편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증상을 정확히 짚지 않고 온갖 증상을 쏟아낸다. ‘가슴이 답답하고요. 머리가 어지러워요….’ 그리고는 저자가 학교에서 배운 진찰 프로세스와 다른 전개가 시작된다. 탐정(?)인 저자는 이것을 단순히 외국인과의 소통방식 차이라고 단정 짓지 않는다. 이 고민에 잠을 못 자겠는지(?) 저자는 의료인류학을 공부하기에 이른다. 

진료소 내 의료행위로는 풀리지 않는 열쇠를 찾아 나서기로 한 것이다. 그 덕에 우리는 진료소에 찾아온 환자의 질병을 병으로만이 아닌 사회와 문화로 해석해 볼 기회를 갖는다. 이로써 이 책은 단순 병원 일기에 머물지 않게 된다. 저자는 질병이 생기는 원인을 한 개인의 책임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맥락으로 시야를 확장시킨다.

태국 노동자가 대변을 누다 기절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조선인 숙소에 전염성 진드기 옴이 발생해도 그들이 퇴소하지 않는 이유는? 서로 관계없는 것 같이 나열된 요소들을 저자는 하나씩 고리를 꿰어낸다. 질병은 한 가지 요소로만 발생하지 않는다. 의료기술은 전문화되는 만큼 분절돼 왔다. 인간은 부분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한 사람이 여러 부위의 총합 이상이듯, 한 인간의 건강도 그를 둘러싼 사회적 맥락 속에 있다. 

저자가 만난 것은 외국인 노동자다. 하지만 그가 종횡무진 사건을 펼쳐가는 무대는 바로 우리 K-의료 현실이고, 그 민낯이다. 외국인 노동자가 겪었을 우리 사회의 장벽과 그로 인한 사회적 질병. 사실 그것은 내 옆집 할머니가 겪고 있는 장벽과 다르지 않다. 고독과 고립 말이다. 병원 갈 시간조차 없는, 장애를 가진, 홀로 이동이 불가능한 이들에게 장벽은 일상이다. 의료는 한 인간이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권리임에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 지역소멸을 말할 때 우린 여기에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저자는 의료를 더 발달시키는 길은 통합적인 관점을 갖는 것이라 한다. 바로 ‘돌봄 의료’다. 하나의 방법으로 마을 주치의제도를 제안한다. 자주 가는 단골 의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상업화로 인한 과잉진단-과잉치료가 아니라 공익성이 담보된 사회적 의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동네의원을 이용하는 농촌 주민 800명이라는 ‘숫자’는 시장 논리로 계산해 보면 터무니없는 숫자다. 하지만 약봉지 하나를 넘어 구체적인 돌봄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에서 동네의원의 의미는 작지 않다. 저자의 말처럼 ‘단 한 사람의 것일지라도, 누군가의 고통을 해석하고 줄여보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 결국 우리 자신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과 이 책을 읽고 더 많은 우리동네의원을 꿈꿔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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