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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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물
  • 김혜진 <홍성녹색당>
  • 승인 2024.01.11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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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세 살부터 오랜 시간 장애인 운동을 해 온 저자 홍은전은 마흔이 다 돼 동물권의 세계에 사로잡혔다. 장애인차별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는 일을 하던 그의 눈에 이젠 갇혀 있는 동물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된 그때, 이 세계를 알기 이전으론 절대 돌아갈 수 없게 된 그때부터 그는 자신의 직함을 ‘인권기록활동가’에서 ‘인권동물권기록활동가’로 바꿨다. ‘인권’은 그가 표현해야 할 ‘엄청난 차별과 저항’을 전혀 포함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비장애인으로 살던 그의 세계가 장애인 운동을 하며 깨어졌고, 또 한 번 ‘인간밖에 모르던’ 세계가 무너졌다. 《나는 동물》은 그 이후 약 3년간의 신문 칼럼을 모은 책이다. 
 

홍은전/봄날의책/1만 3000원.

책에는 그가 활동하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장애인 당사자로서 활동하는 이들, 그리고 장애인을 지원하는 비장애인 활동가들의 이야기도 있다. 또한 동물권 운동가들의 치열한 투쟁의 기록들이 있다. 그를 사로잡은 ‘세상의 가장 만연한 차별인 비장애중심주의와 인간중심주의에 맞서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가만히 앉아서 읽는 것이 황송하다. 미처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은 너무나 뜨겁고 생생하다. 귀한 한 사람의 생이 짧은 글마다 오롯이 펼쳐져 있다. 인간도, 동물도, 전 생애를 통해 짓밟혀 온 이들 존재에 대한 이야기는 언론에서 잘 접할 수 없다. 이 이야기들이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생님이 자신에게만 장래희망을 묻지 않았던 순간을 기억하는, 그러나 자라서 장애여성단체를 만들었고 사회변혁운동의 대표가 돼 저상버스와 승강기와 법을 만들게 된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영희, 루게릭병을 앓아 열일곱에 자살을 시도했었지만 장애인차별철폐연대를 조직해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를 이뤄냈고 이후 10년 동안 대구시 장애인 예산을 여섯 배나 늘린 조금호,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십대에 시설에 들어가 먹고 자고 예배만 드리며 20대를 보냈지만 지하철 사고로 야학 동료들과 손해배상을 청구했고 보상금에 혜화역 엘리베이터 설치까지 이끌어낸 이규식, 장애인들의 탈시설을 돕는 활동가로 8명의 장애인 당사자들과 함께 두 달간의 노숙투쟁을 벌여 한국 최초의 탈시설 주거정책을 만들어 낸 김정하.

5000여 마리의 닭이 똥과 오줌, 토사물과 함께 층층이 쌓인 트럭에서 고통받는 모습을 본 후, 도계장 앞에서 자신의 몸을 결박해 도살공장을 멈추게 한 혐의로 기소된 김향기, 도살장 앞에서 돼지와 소에게 물을 주고,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라고 외친 DxE 활동가들, 도살장의 처참한 모습을 외면하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도살장을 찾다가 ‘새벽이’를 훔쳐온 은영의 이야기도 있다. 법정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썰리는 병아리들과 감전되는 돼지들의 영상이 흐르고, 판사는 활동가에게 업무방해 혐의를 내린다. 그 앞에서 “이것은 왜 학살이 아닙니까”, “왜 범죄가 아닙니까”라며 울부짖는 이의 모습을 우리는 홍은전을 통해서야 들을 수 있다. 

장애인들은 그리고 왜 동물권 활동가들은 판사의 말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활동을 하는 걸까. 맨몸을 그냥 내던지고 때로는 알몸으로, 무모하게 다른 이들을 놀라게 하는 걸까. 저자는 어떤 질서에 도전하는 이들은, 평소에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것들을 ‘자신의 몸을 부딪쳐서’ 보이게 만든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인간도 동물이다’라며 외치는 동물권 활동가 청년들을 보며 오래전의 자신의 동료들을 떠올렸다. 구석에 감금되어 살아왔던 존재들이 처음 서울 지하철역에 등장해 ‘장애인도 인간이다’를 외치며 그 모습을 드러냈던 2001년을 말이다. 차도에 뛰어들고 시민들의 이동을 방해하며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넘나들었던 그들 덕분에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로 나아가는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음을 지적한다. 

얼마 전 뜬장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먹으며 사는 개농장의 하루를 직접 경험해 쓴 기자의 기사를 읽었다. 사람들은 살을 에는 추위와 뜬장 바닥을 딛는 아픔과 몸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처참한 환경에 경악한다. 하지만 우리가 신나게 먹어치우는 닭과 돼지와 소들이라고 별반 다르지 않음을, 정작 모른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사육과정에서 이미 온 몸에 병이 들고 불구상태이거나 정신도 멀쩡하지 않을 그 존재들을 맛있게 먹고 있다는 것을, 철저히 가려져 있기에 알지 못한다. 

비장애인간 사이에서도 만연하는 능력 중심의 차별은 장애인차별과 종차별로 확장된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나는 동물》을 통해서라도 우리는 들어봐야 한다. 그러면 장애인권과 동물권을 말하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해방과 같은 말이 될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경쟁, 효율성, 인간중심의 이성에서 벗어나 어떤 존재라도 차별받지 않고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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