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간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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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간에도 경계선이 필요하다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1.18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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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울타리가 있다. 도로 주변이나 공원, 그리고 주택단지 등 어디서나 볼 수 있다. 울타리는 그 경계를 침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와 약속이 담겨 있다.

O씨는 50대 중년 여성으로 직장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30대 아들이 잠들어 있는 방으로 가서 빼꼼히 문을 연다. 자는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고기와 국, 나물반찬을 조물조물 무친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쩝쩝거리면서 맛있게 먹고 출근하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안쓰러움과 답답함, 그리고 한숨이 함께 차오른다.

K씨는 30대 초반의 1인 사업자이다. 주5일 동안 새벽 6시에 출근해서 오후 4시까지 일을 한다. 퇴근 후 집에 오면, 침대에 누워 유튜브, 웹소설, 게임으로 시간을 보낸다. 그때가 너무 편안하다. 하지만 노크도 없이 불쑥 방문을 열고 들어오는 엄마 O씨의 잦은 행동과 뼈에 각인 될 정도의 비난의 잔소리는 숨이 막혀 뛰쳐나가고 싶은 강한 충동을 일으킨다. 하지만 집을 나가면 고생임을 알기에 감정을 억누르면서 잔소리가 끝나기만을 고대한다. K씨는 현재 188cm의 키와 110kg의 체중의 큰 체형이다. 고혈압과 당뇨약을 복용하고 간수치도 높아서 얼굴이 거무스름하지만 ‘죽게 되면 죽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이나 식이조절을 할 의욕도 없다.

K씨는 지난 몇 개월 동안 가족이 잠들어 있을 때, 매일 밤, 그리고 주말에는 집 부근에 있는 모텔로 향했다. 모텔은 자신만의 영역이고, 경계가 분명한 울타리가 있어서 편안하기 때문이다. TV 시청이나 게임을 즐기며, 피자와 치킨 등 배달 음식을 마음껏 시킬 수 있고, 엄마의 교육(지시적 잔소리)이 없는 자신만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K씨는 지인들에게 4000만 원의 돈을 빌렸다. 갚아야 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엄마 O씨가 통장관리를 하고 있기에 결국 부모님이 알게 됐다.

사실 K씨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담배와 술을 접했고, 학교에 지각이나 조퇴, 결석, 가출 등이 잦았다. 그럴수록 엄마 O씨는 K씨의 모든 행동에 교육적 가르침을 담으려고 했고, 그때마다 엄마의 요구에 부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역부족임을 느꼈다. 갈등을 원치 않은 K씨는 엄마 앞에서는 ‘예스’이지만, 엄마가 없는 곳에서는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됐고, 이러한 수동 공격적인 행동은 계속적으로 문제 수위를 높인 결과를 초래했다.

엄마의 지시와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K씨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타지에서 PC방과 편의점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이나 일상을 주체적으로 관리한 적이 없던 K씨는 수입과 지출의 한도를 조절하지 못했다. 그래서 100여만 원, 300만 원, 500만 원 등 체불이 발생했고, 그때마다 아들이 신용불량자가 될까봐 엄마가 대신 빚을 갚아주었다. 엄마는 엄마대로 K씨의 반복된 행동이 버거워서 자살을 시도했지만 죽을 용기로 다시 살아보자고 자신을 다독이면서 아들을 잘 가르쳐서 독립시키겠다고 작심했다. 하지만 아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아들의 모든 행동이 거슬리고 자신의 미래를 앗아가는 아들이 너무나 싫어서 혼란스럽고 버거운 상황이다.

모든 인간관계에는 적절한 수준의 심리적, 신체적, 공간적 경계선이 있어야 한다. 경계선을 잘 설정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특히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갈등은 경계선이 제대로 설정되지 못한 데서 시작된다. 사티어 가족치료전문가인 김영애 박사는 가족간의 경계선을 네 가지로 정의한다.

먼저, 심리적 경계선이다. 심리적 친밀감을 형성할 때에도 두 사람이 서로 허용하는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 가족이기 때문에, 친하기 때문에 등의 이유로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경계선 침범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 공간적 경계선이다. 사람은 적절한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적절한 공간에 대한 경계선 안에 들어가려면 허락을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성인 자녀의 방문을 벌컥 열거나 반대로 자녀가 부모의 방문을 갑자기 여는 것도 침범이라고 할 수 있다. 곧 심리적 경계선이 약할 때 공간적 경계선 침범이 나타날 수 있다.

셋째, 신체적 경계선이다. 신체적 접촉도 상대방이 허락하는 수준까지만 해야 한다. 즉, 내가 생각하는 신체적 경계선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신체적 경계선이 다를 수 있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상대방에게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확인하는 것이다.

넷째, 표현의 경계선이다. 인터넷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이 있지만, 법적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좋은 의도로 합의된 공유는 바람직하지만, 동의하지 않은 노출은 폭력이며 범법행위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친밀한 관계에서도 서로 합의가 있는 경계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부모는 자녀의 발달 과정에 따라서 개입 정도가 달라져야 한다. 곧 자녀가 어릴 때는 부모가 자녀의 삶에 관여하는 비율이 좀 더 높을 수 있지만 성인이 된 자녀의 경우에는 그 비율을 많이 줄여야 한다. 이처럼 엄마 O씨와 아들 K씨의 경계선이 합의해 적절히 이뤄질 때 모자간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될 수 있으며, 서로가 성장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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