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정책과 좋은(good)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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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정책과 좋은(good) 행정
  • 김진욱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3.28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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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정책(public policy)은 안정된 국민생활과 국가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한때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산아제한 정책으로 폭증하는 인구규제에 노력했었지만 근자에는 세계 최고의 초저출산으로 국가 소멸까지 우려돼 갖가지 인구정책에 몰입하고 있다. 국가 정책은 정치와 마찬가지로 생물(生物)이라 진공상태의 사회에서 탄생하는 불변의 개념이 아니다. 시대의 흐름과 환경 변화 및 이해당사자(stakeholder)나 대상 집단(target groups)의 다양한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기 위해 새로운 이념(ideas)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다. 

때로는 신의 영역에서나 가능한 예언들이라 현실에선 전혀 새로운 결과가 도출되기도 하며  판판이 빗나가는 예측 때문에 최고결정자는 낭패를 겪기 일쑤며 항상 그 책임이나 부담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시대가 요구하는 지도자의 역량과 지혜는 국가의 미래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우리 주변은 일상적으로 해결해야 할 수많은 문제(problems)나 공공의제(policy agenda)들로 산적해 있다. 국내적 요인은 물론 국제적 영향까지 감안해 전문가의 역량을 총동원해도 수월찮은 난제들이다.

가장 시급한 물가안정은 서민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당장 꺼야할 의제들이다. 과일을 비롯한 농산물가격은 두 배나 올랐다. 인건비 상승은 급기야 일본도 넘어섰다. 고령화로 사회복지비용의 증가는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세대들의 만혼(晩婚)과 저출산에 이어 비혼(非婚)이 늘면서 미래 세대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최근 지역 및 필수의료체계를 안정시킨다고 과격하게 추진된 의과대학 입학정원 문제는 정부의 일방적인 추진으로 갈등의 극치다. 수련의들이 병원을 떠났으며 수많은 대학생이 휴학이나 유급할 형편이고 대학병원의 의사들의 사의로 이어져 그야말로 난맥상이다. 이 와중에 애꿎은 환자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으며 가족들도 애타고 분통 터지지만 마땅히 대책이 없다. 분명한 것은 수많은 국민의 생명이 위태로워지며 불안한 일상은 악성 트라우마로 연결될 것이 염려된다. 지난 1개월여간 쏟아낸 관련 부처의 겁박에 미동도 하지 않는다. 믿는 구석은 그동안의 경험 아니겠는가? 지난 20여 년간 의료인력 정책은 이해관계자들의 주장이 전적으로 수용됐고 그 결과 비보험 영역의 높은 수가는 고스란히 환자부담이었으며 벌이가 되는 곳에 의사 쏠림으로 필수의료는 처참하게 소외됐다. 그런 결과들은 양질의 의료서비스는 수도권과 대도시로 편중됐고 지금도 악순환 과정이다. 시골에서 응급환자가 생길 경우 골든타임 확보가 어려워 많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정부의 의료인력 증원은 이유 있으며 당연히 추진해야하는 과제임에 분명하다. 다만 안정된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민주성(democracy)을 기반으로 효율성(efficiency)이 담보될 수 있어야 가능하지만 작금은 거리가 있다.

우리 사회에서 꼭 해결돼야 할 공공문제들(public problems)은 반드시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민의(民意)를 잘 반영해 최종 결정돼야 한다. 대상 집단과 이해관계인은 물론 국익(國益)과 국민의 요구를 적극 수렴해야 하고 관련 전문가 토의를 충분히 거친 후 다수결로 정해지는 것이 민주주의의 대원칙이다. 개인과 집단의 갈등을 완화할 수 있고 사회 안정화를 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이다. 수적으로 부족한 의사와 지나치게 높은 수가로 민생에 부담이라면 관련 부처의 담당자들이 실태를 점검하고 문제를 분석해 해결방안을 면밀히 추진해야 마땅하다. 무엇이 어디에 얼마나 많은 문제로 작용하며 그로 인해 피해받는 대상자가 얼마나 되는지 그리고 전문가 입장에서 혜안이 무엇인지 파악한 후에 법적 조치가 필요하면 의회의 논의과정을 거쳐서 민의를 종합적으로 반영한 정책을 제안하고 그에 대한 반응을 확인한 후 최종 대안을 결정해서 추진해야 한다. 

모든 과정과 절차가 상당부분 무시되고 공론화나 대의기관의 의견을 경청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급조된 정책의제들은 첨예한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특히 선거나 국가적 대사를 앞둔 상황에선 더욱 신중해야 한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각종 정책이 손바닥 뒤집듯 수시로 변한다면 국민은 매우 혼란스러워진다. 사회 물정에 어두울수록 대중매체에 휘둘릴 수 있으며 일방적으로 안정을 추구하는 개인들은 정치적 관심이나 민주성에 무관심해질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는 민중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개인이나 집단은 국가 정책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특히 일방적인 정책추진으로 혼란을 가중시키는 행태에 대해서는 체념으로 일관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는 민의를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편중된 견해와 일방적인 정책추진으로 야기된 혼란과 피해는 국민 부담이다. 낮은 지지율이 가장 엄중한 경고인데 일시적 반등에 편승해 폭주한다면 거센 난관에 부딪힐 수 있다. 여론은 엄중하고 심판은 엄격하다. 소소한 잘못으로 극단을 맞이할 수 있고 고난을 거쳐 성숙된 시스템이 보이지 않게 작동하는 강인한 사회라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안정된 국민생활은 좋은(good) 행정이 전제돼야 한다. 일찍이 1967년에 제정된 영국의 옴부즈맨법(Parliamentary Commissioner Act)에서 나쁜(bad) 행정은 행정이론이 실제 현장에 잘 적용되지 않는 것으로 편견, 무시, 부주의, 지연, 무능력, 기량부족, 외고집, 자의성 등 개인적인 문제로 규정한 바 있다. 나쁜 행정은 국민의 행복을 생각하지 않고 특정 정권이나 집단의 이해관계만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국민이 국민을 위해 일하도록 행정에 위임한 권한을 국민을 위해 행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의 삶의 수준을 도리어 떨어뜨리는 것으로 칸트(I. Kant)는 국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행정은 그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기 때문에 가장 근본적으로 ‘나쁜’ 행정이라고 주장했다. 

독재정권이나 특정 이익집단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포획된 또는 착취적 관료제가 나쁜 행정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국민을 위해 작동하는 행정이 모두 좋은 행정은 아니다. 국민을 위한 행정과정이 반응적이지 않고 투명하지 않거나 비효율적이고 그 결과가 비효과적이라면 이 역시 좋은 행정이 아니라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행정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주인인 시민들이 원하는 가치를 실현해야 할 대리인으로서 의무와 책임이 있다. 좋은 행정이란 목적론적이고 의무론적인 측면이 긴밀히 연결돼 있는 행정이념이고 가치이다. 목적을 향해 의무를 다하는 행정을 기대한다.
 

김진욱 <혜전대학교 교양과 교수, 행정학 박사, 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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