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죽어가고 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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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는 죽어가고 있다(1)
  • 권기복<홍주중 교감.칼럼위원>
  • 승인 2014.01.1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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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미국의 교육학자인 E. 라이머가 쓴 ‘학교는 죽었다(School is Dead:an Essay Alternative in Education)’라는 책이 1980년대 초반 한국에서 번역본이 출간되면서 커다란 충격을 남겼다. 이 책에서 시사하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의 학교교육제도에 대하여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미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학교교육은 E. 라이머의 비판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 라이머의 비판 요지는 ‘학교교육이 특권층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해 사회를 제도화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피지배층을 상대로 통제하는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학교교육이 인간을 점수(성적)화하고 그 점수에 의해 특권층으로의 진입에 대한 선택의 기회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학교교육의 차별을 통해 특권층의 세습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E. 라이머는 현대 학교교육의 기능을 비판한 것이다.
그럼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은 어떤 기능을 하였는가? 현대식 학교교육은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때는 개화라는 물결과 일제의 강압에서 벗어나는 길로 학교교육이 가장 중시되었다. 그래서 수많은 현대식 학교가 설립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조선 지배를 원활하게 수행하기 위해 한반도 전역에 초등학교(당시에는 소학교라 불림)와 실업학교를 세우고 식민지 교육을 하였다. 이는 오로지 피지배 민족을 손쉽게 부려먹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해방 이후의 학교교육은 국가적으로는 고등인력의 양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출세의 돌파구였다. 우리나라의 교육열풍은 산업화와 때를 맞추어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라면 자갈전답뿐만 아니라 집 한 채도 기꺼이 내놓는 것이 하등 이상할 이유가 없는 나라였다. 결국 학교교육은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출세를 보장하는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챙겨주는 마술보따리였다. 게다가 학력위주의 사회풍토는 개개인의 출세를 정당화시켜주는 순기능을 담당하였다.
세계에서 문맹률 최하위의 나라, 학생들의 학력 수준이 세계 최고임을 자랑하는 나라, 그런데 노벨상 수상자는 노벨평화상을 제외하고 하나도 받지 못한 나라, 바로 우리나라의 현 주소이다. 온 국민이 무언가는 열심히 하고, 인문계 고등학교 이상이면 밤이 새도록 건물 자체가 휘영청 밝은 나라, 수도인 서울로 대학을 가야만 대학다운 대학을 간다고 대접받는 나라, 대학을 졸업한 지 반 세기가 넘은 갖가지 국민대표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내놓는 표장이 무슨, 무슨 대학이다.
우리나라의 학구열은 정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대한의 아들딸들은 대학생활이 기본에 불과하다. 이제는 대학원, 유학, 박사과정 등이 너무나 일반화되어 있다. 산업화시대에 16년의 학교생활을 통해 최고의 일꾼으로 대접받던 사람들이 있었다면 정보화시대로 접어든 오늘날에는 20년 이상 학교생활을 하고도 대접다운 대접을 못 받고 있는 실정이다. 개중에는 스스로 아르바이트 활동 등을 통하여 등록금도 마련하고 자신의 생활비도 챙기지만 대부분은 나이 30을 넘나들어도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게다가 그들의 학교교육에는 엄청난 사교육비가 덧칠되어 있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이제 학교교육을 제고해보아야 할 때이다. 산업화시대에는 교육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되었을지 모르나 정보화시대로 접어든 오늘날에는 지나친 교육 열풍이 국가의 발전과 개인의 행복을 발목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가정과 지역사회의 몰락을 불러오는 것도 학교교육의 일조일 수 있다. 이제 학교교육도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학교교육의 본질은 ‘인간됨’을 추구해 주는 것이다. 즉, 학교는 스스로 모든 교육자원(사람과 사물 모두)에 대하여 언제나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조직망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담당해야 할 것이다.
지금도 학교는 죽어가고 있다. 앞으로도 학교교육의 본질적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면 머지않아 죽고 말 것이다. 그렇지만 재생의 길이 없지는 않다. 학교교육이 참인간으로서 알 것은 알고 들을 것은 듣고 느낄 것은 느낄 수 있는 본연의 기능 수행으로 나아간다면 학교는 인간 사회의 순기능 조직체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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