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 생가 기념관, 접근성 대안마련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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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노 생가 기념관, 접근성 대안마련 시급
  • 홍주신문
  • 승인 2011.11.1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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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지난 8일 홍북면 중계리에 고암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 건축연면적 1002㎡ 규모로 건립돼 문을 열었다. 총사업비 70여억원이 들어간 기념관에는 보유하고 있는 작품과 유품740여점가운데 120여점만 선보였다고 한다. 홍성의 젊은 사람들 중 이응노가 누구인데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까지 건립하느냐고 의문을 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응노 화백은 복원된 중계리 생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홍성에서는 홍성초에 입학했던 것 정도이며, 대부분 타지에서 생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1958년 프랑스 파리로 건너간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 1904~1989)와 부인 박인경(朴仁京, 1926~)은 1967년 동백림(東柏林) 사건에 연루돼 한국으로 압송된다. 징역3년, 자격정지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은 이들은 다시 파리로 돌아갔고, 백건우·윤정희 부부 납치 미수 사건 이후 이응노는 1989년 프랑스에서 사망할 때까지 한국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했다. 이후 이응노와 박인경은 1983년 한국 국적을 버리고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다. 이들은 1987년, 북한의 초청을 받아 평양에서 이응노 화백 개인전을 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부인 박인경은 납치 발생 17년 만인 1994년 1월초, 서울에서 열린 이응노 화백 5주기 전에 첫 입국한 후 한국을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제 세월도 많이 흘렀고, 시대도 변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예술과 생활세계를 구분했던 준거가 모호해지면서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이 도입되어 문화정책의 영역이 확대되고 있지만 그 핵심은 아직 예술에 있다. 예술은 개인의 미적 경험과 인식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표현의 산물이지만 모두가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인 성격을 가진다. 즉 예술을 통해 아름다움과 진실된 영혼을 공유할 수 있기에 기쁨과 감동의 순간을 맞고 정서적 안식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홍성출신의 고암 이응노 화백 생가 기념관이 문을 연 계기가 됐다. 하지만 생가지에 기념관을 건립하다 보니, 접근성이 좋지 않다는 문제를 제기하는 여론이 개관 첫날부터 논란이다. 이제는 자동차 이용 중심의 공공시설을 만든다는 것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다. 이제부터라도 공공시설은 친근감이 가는 규모로 계획하고, 입지는 대중교통 이용이 편리한 곳이거나 가능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즉 자동차에 둘러싸인 ‘격리된 공공시설’이 아니라, 주민들이 걸어서 쉽게 찾는 공간이자, 도시의 활력을 불러일으키는 ‘주민센터의 장소’가 되도록 거듭나야 한다. 대중교통의 접근성이 좋지 않으면 주민(관람객)들의 발길은 뜸해질 수밖에 없다. 이응노 생가 기념관이 안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이며, 대안모색이 시급한 홍성군의 현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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