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너의 경계에 선 '그림이 있는 정원'
상태바
나와 너의 경계에 선 '그림이 있는 정원'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3.03.04 10: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가끔 여행을 떠난다. 강을 따라 펼쳐지는 드넓은 초원에 이름 모를 들꽃 사이로 나비와 벌이 춤을 추며, 싱그러운 수액이 넘쳐나는 계곡에 순록과 새들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그곳, 인간은 더 이상 정복자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순리대로 살아간다. 그들을 대표하는 붉은 얼굴 추장은 군림의 제왕이 아니라 삶의 지혜를 함께 나누는 친구이며, 대지와 인간을 연결하는 자애로운 어머니이다.

붉은 얼굴 추장들은 이렇게 말한다. 흰 얼굴 추장들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금을 물리려고 한다. 그리고 병사들을 계급으로 나누어서 일반병사들만 양 때처럼 앞으로 내모는 식의 전쟁을 한다. 이것은 개인의 용기나 정당한 목적이 아니라 강요에 의해서 전쟁터에 끌려 나오기 때문이다.

또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도저히 사고 팔 수 없는 것조차 팔라고 강요한다. 대지는 모든 생명들의 어머니다. 대지위에 피어나는 꽃들과 맑은 공기와 자유롭게 나는 새들, 그리고 조상들이 묻혀있고 삶이 숨 쉬며, 아름다운 추억들이 과연 사고 팔 수 있는 것들인지 묻는다. 그리고 대지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미래의 자손들에게 잠시 빌려 쓰고 있으므로 어느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없으며, 이것이 붉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의 삶의 방식임을 강조 한다.

또 이렇게 살아간다. 나무를 꺾어 지팡이 하나를 만들 때도 대지와 나무로부터 허락을 받는 의식을 행하고, 사슴을 잡으려고 활을 쏠 때도 자연의 방식대로 쏘며, 약초를 만나면 처음 대면하는 것은 할아버지 약초라 생각하여 인사를 하고 다음 것부터 캐겠다며 양해를 구한다. 덫은 짐승이 다치지 않게 놓고, 늙고 병든 것 건강하지 못한 수컷 등부터 취한 다음 하루양식에 필요한 것만 가져오고 나머지는 살려 보낸다.

위의 이야기들은 류시화가 번역한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 내용의 일부이다. 이 책은 인디언들이 백인들로부터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생명의 어머니인 땅을 빼앗기고, 삶의 방식을 강요당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잘 묘사되어 있다. 필자는 가끔 이 책에 나와 있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인디언들의 지혜와 삶의 방식을 배우는 여행을 다녀온다. 그 이유는 무소유의 삶을 배우면서도 황금만능이라는 사회 환경 속에서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본주의 방식에 길들여진 찌든 때를 벗기기 위해서이다.

지금 현실은 살 수도 팔 수도 없는 것들과 소유할 수 없는 것들조차 사고 판다. 여기에 대한 반동(자본주의)으로 유럽에서는 누구도 소유할 수 없는 숲과 강을 만드는 운동이 일어난다고 한다. 예를 들면 어떤 독지가를 중심으로 여러 시민들이 참여하여 공동명의로 숲을 만듦으로서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자연이 된다는 것이다.

광천의 명소이자 홍성8경의 하나인 '그림이 있는 정원'이 재정난으로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물론 엄격히 따지면 개인의 소유이고, 경영미숙이라는 원인이 있으므로 공론화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그동안 홍성8경이라는 이름을 가졌고, 홍성의 관광자원의 역할을 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너와 나의 경계를 허물고 홍성이라는 큰 틀에서 공익적인 방법을 모색했으면 싶다. 여기에 대해서 소유주도 동의하고 있으므로 서로 지혜를 모은다면 우리 홍성에 우리들의 공원이 만들어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