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제도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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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제도 민주주의
  • 범상<칼럼위원>
  • 승인 2013.08.1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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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나으리라 불러야 했던' 조선 서얼들의 한 맺힌 절규는 사극무대의 단골소재이다. 임금이 정부인 외에 여러 비빈(妃嬪)을 거느리고 첩을 두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시절, 조선의 양반과 아버지들은 무엇 때문에 자식에 대해서 그리도 가혹했을까?

이러한 차별은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신분계급사회에서는 지배계급의 숫자를 조절하기 어떤 방식으로든지 존재하는 자연스런 현상이다. 조선에서의 양반은 세금특혜를 받고 군역이 면제되며 정치에 참여하여 기득권과 불로소득의 이익배분에 참여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신분계급사회는 지배계층이 전체국민의 5~10%를 넘지 않았을 때 건강하게 유지된다.

조선은 공식적으로 양천제의 신분제도로서 노비를 제외하면 누구나 과거응시 자격이 주어졌고, 과거에 급제하면 양반신분을 획득 할 수 있었다. 후대에 와서는 4대 동안 관리를 배출하지 못한 가문은 양반의 신분을 잃게 되었다. 이로 인해 전 국민이 신분상승(유지)을 위해 과거에 매달리는 현상이 일어났으며, 임진·병자 등의 전쟁을 겪으며 과거급제에 해당하는 공명첩을 남발했고, 관직의 매매와 족보위조 등으로 양반의 숫자는 급격히 늘어났다.

이처럼 신분을 유지하기 위한 계층과 상승을 노리는 계층사이에서 온갖 병폐와 갈등이 생겨났으며 조선후기(1858년통계)에 이르면 양반의 비율이 70%가 넘게 된다. 현재 한국인들의 97%가 양반의 족보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 양반아!" 즉, 너 가짜 양반 아니야! 라는 비속어가 생겨나게 되었다. 신분계급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조선사회는 양반의 비율이 20%를 넘어서는 1700년 중반부터 완전히 붕괴되었지만 정치기술에 의해서 유지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90%의 국민들이 일거에 혁명을 일으켜 신권(神權)과 왕권의 봉건제도를 무너뜨리고 평등한 권리를 쟁취했던 프랑스시민혁명에 비한다면 근대국가로의 이전에 있어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살펴보았듯이 유럽사회는 절대다수의 피지배계급들이 혁명으로서 기존의 질서와 제도를 타파하고 자신들의 권리를 찾았으며, 그것으로 모든 국민들이 동일한 참정권과 권리를 가지는 민주주의를 탄생시켰다. 이에 반해 동양사회는 각 개인과 가문들이 제도라는 틀 안에서 개별적으로 상위계급에 합류하려 했고, 열강들에 의해서 민주주의라는 낯선 제도가 강제되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사회는 민주주의로서 발전의 단계를 거치지 않음으로서 국민들의 의식과 사회관습 등은 봉건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동양사회에서 신분계급에 대한 대규모 혁명이 일어나지 못했고, 산발적 저항에 그칠 수밖에 없던 것은 국가는 가정이 확대된 것으로서 군사부일체를 말하는 유교전통과 인본주의 사상의 영향이 크다고 본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국민전체가 양반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 국가와 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곧 역모이며 '구족을 멸한다'는 말처럼 집안의 몰락을 의미한다.

1945년 8월 15일 해방이후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정치방식으로 출범하였고, 이승만독재, 박정희독재, 전두환독재를 무너뜨리며 나름대로 발전시켜왔다. 그러나 아직도 다수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대통령은 나랏님(임금)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나랏님은 백성인 나를 자식 돌보듯이 보살펴 줄 것이라는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노무현대통령서거 당시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조문행렬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나랏님의 자살을 애도하기 위해서 이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는 60년이 넘도록 민주주의를 택하고 있지만 의식은 여전이 봉건사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3번씩이나 무자비한 독재정권을 경험했고, 지금 현재 대통령선거부정과 국정원선거개입사건으로 연일 10만의 인파가 촛불집회를 하고 있으며, 부자들에 대한 특혜로 서민경제가 파탄이 나도 여전히 나랏님의 성은을 기다리는 다수의 국민들은 낯선 제도 민주주의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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