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마 철마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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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마 철마산에서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4.02.27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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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34>

 


여기는 지혜로운
발걸음이 머무는 곳
서로에게 아픔을 주는 일 없이
너에게도 나에게도
나름의 지혜를 모으게 하는 곳

지혜란 마음을
조용하게 하는 것
그러나, 삶의 둘레를
조용하게 하는 것이 아닌
움직이는 마음에 횃불을 이루는 것

멀리에 과녁을 두고,
이제는 쏜 살의 빠르기와
철마의 빠르기를 겨루지 않는다
쉽사리 생각에 이끌리지도 않는다

취할 것과 버릴 것
사랑과 미움이 한결같은 여기는
늘 푸른 청정 소나무처럼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가는 지혜를 모아가는 곳

철마산(鐵馬山)은 고려 후기에 와서 그 이름을 얻었다는데 구전에 의하면 홍북면 노은리에서 태어난 최영장군이 그의 애마(애마의 이름은 금마金馬)를 타고 금마들판을 달리며 무술에 연마하고 있을 때 자주 오르내렸던 산이라고 전한다. 어느 날 최영 장군은 사랑하는 애마를 시험하기로 하였다. 그것은 멀리에 과녁을 두고, 쏜 화살의 빠르기와 애마의 빠르기를 겨루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화살을 쏘았고, 애마는 단숨에 내달렸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화살이 보이지 않는다. 최영장군은 자신의 애마가 화살보다 늦게 도착하였다는 성급한 생각에 그만 칼을 들어 애마의 목을 베어버렸다. 그러자 그제서야 휘융 하고 화살이 날아들었다. 최영 은 경솔한 자신을 꾸짖으면서 애마를 고이 묻어주었다. 그 뒤 사람들은 최영 장군의 애마가 묻힌 곳을 이름하여 금마총(홍성입구 국도 21번 가에 있다)이라 부르고, 최영 장군이 활을 쏜 산을 이름하여 철마산이라 했다. 금마상은 금마가 이 고을의 상징이 되어 왔다. 면민들이 뜻을 모아 1992년에 세웠다. 그리고 봉화대는 3․1 만세 운동 당시 주민들이 산봉우리에 올라 봉화를 올리고 만세 운동을 전개하였던 것을 다시 상기하고자 만들어 놓은 상징물이다. 그 당시 3월 1일 저녁 8시경 이원문씨 집에 모인 이재만, 최중삼, 조한원, 민영갑, 김재홍, 조재학, 김종석 등 일곱 분이 만세를 부르며 철마산 봉우리에 오르니, 뒤따라 오른 주민의 횃불로 온 철마산은 불꽃봉우리를 이루었다고 전한다. 이 때 만세운동에 참가한 사람은 무려 184명, 그 중 115명이 대통령 표창을 받고 국가의 책자에 기록되었으며, 46명이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최영장군의 뛰어난 무술과 용맹, 그리고 184선열들의 장렬한 애국정신과 함께 지략용기로 민족정기를 새롭게 되살리고자 1992년 추모하는 마음을 모아 비를 세우고, 철마상을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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