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컹퀴와 유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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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컹퀴와 유니콘
  • 김상구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4.10.02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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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8일 스코트랜드인(scottish)들은 영국(연합왕국)<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으로부터 ‘홀로서기’를 할 것인가에 대한 국민투표에서 독립반대 55.4%, 독립찬성 44.6%를 선택하여 영국에 남아 있기로 결정했지만, 그 여진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스코트랜드가 영국을 구성하는 주요한 부분이면서도 여기에서 분리하고자 하는 깊숙한 이유는 스코트랜드와는 다른 종족이어서 덩치가 큰 잉글랜드로부터 늘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녀 왔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 때문에 아일랜드도 영국으로부터 700여년을 지배당해 오다가 1921년 독립을 성취했다. 스코트랜드인(scottish)들은 토끼처럼 생긴 영국의 머리 부분에 주로 살아온 사람들로 종족은 켈트족(Celts)에 속한다. 이들은 영국에 뒤 늦게 상륙한 앵글로 색슨족(Anglo-saxon)과 전쟁을 해야 했고, 1707년에는 잉글랜드와 합병되어 오늘의 영국에 포함된 슬픈 역사가 있다. ‘잉글랜드+스코트랜드+웨일즈+북아일랜드’로 구성된 영국에서 하나씩 떨어져 나가 버린다면, 초라한 영국은 ‘아, 옛날의 대영제국이여!’를 외칠 지도 모른다.

영국에서 사용되는 왕실 문장

스코트랜드에서 사용되는 왕실 문장

이러한 운명이 예측되어서인지 영국의 왕실문장(紋章)<Royal coat of arms>에는 연방 분리에 대한 영국의 불안감이 배어 있다. 버킹검 궁전의 문에 달려 있는 문장의 왼쪽에는 왕관을 쓴 황금빛 사자가 서 있고, 오른쪽에는 뿔 달린 유니콘(말처럼 생긴 상상속의 동물)이 목에 쇠사슬을 걸치고 있다. 황금사자는 잉글랜드를 상징하며, 거칠고 다루기 힘든 유니콘은 스코트랜드를 상징한다. 그래서 유니콘의 목에 굵은 쇠사슬이 운명처럼 바닥까지 드리워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자와 유니콘의 발밑에는 장미(영국)와 세 잎 크로버(아일랜드), 그리고 엉겅퀴(스코트랜드)가 동일한 넝쿨에 매달려 있다. 문장의 아래 띠에는 “하나님 그리고 나의 권리”라는 의미의 라틴어가 새겨져 있는데, 왕의 권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왕권신수설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 왕실문장이 스코트랜드에서는 변형되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문장의 맨 아래 쪽에는 엉겅퀴 꽃만 그려져 있고, “나를 욕되게 하는 자는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라는 뜻의 라틴어가 새겨져 있는데, 이 글귀는 스코트랜드 수도 에딘버러 성의 정문에서도 방문객들이 발길을 붙든다. 장미의 가시처럼 엉겅퀴의 가시도 찌를 수 있음을 암시한 말일까?

엉겅퀴의 표독스러움이 이 문구에 묻어난다. 먼 옛날 바이킹들은 스코트랜드를 침략하여 약탈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스코트랜드에 몰래 상륙하던 바이킹들이 엉겅퀴에 찔려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발각되어 스코트랜드는 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엉겅퀴는 스코트랜드의 국화가 되었고 영국왕실의 문장에도 등장하게 되었다는 설(說)이 있다. 나라를 구하는데 일조를 하였으니 귀한 대접을 받을 만하다. 18일 국민투표가 끝난 직후 영국의 여류 계관시인 더피(Carol Ann Duffy)도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게일어(스코트랜드의 옛 언어)로 된 시 “Tha gaol agam ort(I love you)”라는 시를 기고하면서 장미와 엉겅퀴는 서로 찔러 피가 흐르게 할 수 있는 유사성(affinity)이 있음을 밝히면서 서로를 찌르지 말고 친구로, 형제로 남아 있자고 스코트랜드인에게 부드러운 손길을 내밀고 있다.

계관시인의 애정어린 호소에도 스코트랜드가 영국에 계속 남아 있을지 불확실하지만, 이 문제를 투표로 결정하려는 영국의 자세는 분명 높이 평가할 만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이렇게 하겠는가? 스코트랜드에도 영국의 제도, 과학, 기술, 학문 등에 기여한 인물들이 많았다. 스코트랜드인들의 존경을 받는 시인 로버트 번즈(Burns)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들을 선도 하였고, 그의 가곡 “올드 랭 사인(석별)”은 사오십년 전 초등학교 졸업식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불렀던 우리나라 7080의 추억이 묻어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도덕 감정론’과 ‘국부론’을 써서 철학자 스미스씨, 경제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 스미스, 영국의 중앙은행이 된 영란은행(Bank of England)의 창립자 윌리엄 패터슨, 증기기관의 아버지 제임스 와트, 영화 ‘007’시리즈의 제임스 본드로 유명한 배우 숀 코너리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다.

이러한 역사적 자부심이 강한 사람들이 ‘연합 왕국’인 영국의 곁을 떠나고 싶어 한다. 그 이유는 복잡하지 않다. 장미와 엉겅퀴의 가시로 서로를 찌르기 때문이다. 두 나라가 ‘이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서로 반대 입장에 서서 서로 공감’하는 일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말이지만 두 나라만의 일이겠는가? 개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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