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8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끝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끝 > 현우는 참 별난 녀석이라고 생각하며 음식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배가 고팠던 참이라 그런지 금방 바닥이 드러나버렸다. 진영이도 국물을 후루룩 들이마시는 폼이 다 끝낸 것 같았다. “입맛에 맞나 보구나. 더 갖다 줄까?” 일어서는 개동의 손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잡아 끌었다. “아냐, 배불러 죽겠어. 그만둬.” “그래. 알았어. 음식 더 안 가져 올테니 손 좀 놔줘라.” 개동이 웃으며 말하자 둘은 손을 놓았다. 주방에 들어갔던 개동은 잠시후 주스 두 잔을 들고 나왔다. “이거 너무 진수성찬인데.” “너, 엄마한테 혼나는 거 아니냐?” 두사람이 이를 쑤시며 말했다. “천만에. 우리 엄만 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는 걸 좋아해. 엄마도 굉장히 발이 넓거든. 우리 엄만 인간적이야. 공부도 중요하지만 인생을 즐기며 교육 | 한지윤 | 2014-05-30 10:45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7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7 > 개동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엇다. “못 당하겠군. 핑계없는 무덤 없다더니. 꼼짝 없이 공짜 음식 먹어야겠네.” “어허 공짜는..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냐? 우리집 음식 먹고 맛있으면 선전해달라고 주는건데.” “알았어, 알았어.” “그래 뭐 먹을래?” “쫄면 먹지 뭐.” 한참동안 메뉴판을 훑어본 현우가 말했다. “난 떡만두국.” 진영도 따라 주문했다. “아줌마. 쫄면 하나하고 떡만두국 하나요. 그리고 군만두 하나두요. 전부다 곱빼기로 해줘요.” “그래 그래. 개동이 친구들인가부지?” 주방에서 고개를 내민 아주머니가 웃으며 두사람을 쳐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엉덩이를 들썩이며 인사를 드린 현우와 진영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학교에서 오냐?” 개동이 노란무와 김치, 젓가락을 가져오며 말했다. “ 교육 | 한지윤 | 2014-05-22 14:48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6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6 > “대학을 가보시겠다고?” 종호가 다리를 건들대며 현우에게 다가섰다. “오현우.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거 아냐? 주제 넘게 갈잎을 먹겠다고 덤비면 굶어죽는다, 이거야.” “너희들 왜 자꾸 이러는 거야?” 진영이 떨리는 소리로 항의했다. 패거리들 중 한 명이 진영의 코앞으로 바싹 얼굴을 들이 밀었다. “이건 또 뭐야? 오라- 바보 온달을 길들이는 평강공주님이시로군. 근데 웬 평강공주 코밑이 이렇게 거뭇거뭇하냐?” 아이는 낄낄대며 진영의 코밑으로 손을 가져가다가 흠칫 놀라 옆을 돌아보았다. 현우의 억센 아귀에 팔을 잡힌 것이다. “털끝 하나라도 건드리면 가만 두지 않겠어.” “그. 그래? 가 가만 두지 아 않으면.” 대꾸를 하면서도 잔뜩 겁이 난 표정으로 녀석이 물러섰다. “박종호. 비겁하게 몰려다니 교육 | 한지윤 | 2014-05-15 14:56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5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5 > “죄송하지만 저 먼저 갈께요. 집에 빨리 가봐야 해서…” 목례를 하고 나서는 수미의 얼굴은 축축 늘어지는 몸에도 불구하고 활짝 피어났다. 왕순은 머리를 싸매고 누웠다. 공갈협박 이후 미애는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방을 차지하고 누워서는 안방마님 행세를 하고 있었다. 자기 맘대로 옷장을 발칵 뒤집어 새로 정리해놓지 않나, 진호에게 이거 해라, 저거 사와라 심부름을 시키지 않나. 왕순은 서랍장 위를 쳐다보았다. 함박웃음을 짓는 밥상만한 미애의 얼굴이 액자에 담겨 놓여있는 게 보였다. “이 액자를 이 자리에서 1밀리미터라도 옮겨 놓으면 각오해욧.” 안 먹겠다고 버티는 짬뽕을 억지로 시켜먹이고 나서 미애가 한 말이었다. 빼도 박지도 못하게 덜미 잡힌 신세를 아무리 한탄해봐도 소용이 없ㅅ는 일이었다. “형, 형!” 교육 | 한지윤 | 2014-05-08 13:3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4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4 > “뭐라구?” 아저씨가 귀를 수미쪽으로 돌리며 소리쳤다. ‘아차’하며 수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이곳에서는 기계소리 때문에 평상시처럼 말하면 아무 말도 못알아 듣는다는 것을 개달은 것이다. 그래서 이곳사람들은 퇴근을 해서 조용한 거리에서 얘기할 때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댄다. 고상함과는 거리가 먼 악다구니 목소리로. 아가씨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두들 째지는 목소리이다. 수미는 아저씨에게 기계를 넘겨주고는 앞으로 와서 아저씨가 건네주는 제품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아저씨의 놀라운 손놀림에 수미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1분동안 두 개는 해치우는 것 같았다. 30분동안 정신없이 포장을 하고 숨도 돌릴 새 없이 수미는 박스를 만들기 시작했다. 분해되어 펴진 박스를 물건을 담을 수 있도록 바닥에 테이프를 붙여 쌓아두어야 교육 | 한지윤 | 2014-05-01 12:3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3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3 > “그러니까 단어공부는 각자 하기로 하고. 오늘은 to부정사에 대해서 정복해보도록 하자.” 현우는 진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쉽게 설명하기 위해 애쓰는 진영의 콧잔등에 땀이 서렸다. 명 번이나 자신의 얼굴을 보고,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진영의 성의에 현우는 자기도 모르게 빠져들어 고개를 끄덖이고 대답도 하게 되었다. “야! 놀라운데” 진영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웃으며 환성을 질렀다. “너 IQ가 얼마나 되냐?” “짜식! 뜬금 없이 웬 호들갑이야?” 현우가 겸연쩍은 듯 웃으며 진영의 어깨를 쳤다. “아냐. 내가 보기에 네 IQ 150쯤은 될 것 같은데.” “뭘. 네가 워낙 잘 설명해주니까 그렇지.” 수줍은 듯 손으로 얼굴을 부벼대는 현우의 모습이 유치원생같이 귀엽게 느껴져서 진영은 교육 | 한지윤 | 2014-04-24 15:07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2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2 > ‘연탄가스를 마셨나? 교통사고라도 난 게 아닐까?’ 온갖 불길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에 진영의 눈이 반짝 빛났으나 들어선 사람을 보고는 고개가 수그러졌다. 강선생이 출석부와 책을 들고 무거운 표정으로 들어섰다. “차렷, 경례.” 아이들의 인사에 묵묵히 고개만 숙여보인 강선생은 웃으며 몇 마디씩 건네오던 보통때와는 달리 곧바로 출석을 부르기 시작했다. “김명진” “네.” “남중현” “네.” .... “이소연” “네.” “양수미” “...” “양수미” “안 왔어요.” 대신 대답하는 은희의 목소리에 강선생은 고개를 들어 수미의 빈자리를 잠깐 쳐다보고는 계속해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다. “수미에게 무슨 일이 생긴 모양인데 누구 수미네 집 아는 사람?” 출석을 다 부른 강선생이 아 교육 | 한지윤 | 2014-04-17 14:55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1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1 > 스스로를 위로하며 멋진 양복을 빼입고 번쩍이는 구두를 신은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니 저절로 미소가 떠오르고 어깨가 으쓱거렸다. “형, 형! 큰일났어.” 손오공이라도 된 양 오색구름 위에서 뿅뿅 헤매던 왕순의 기분은 진호의 숨 넘어가는 소리에 금새 땅밑으로 곤두박질 치고 말았다. “왜 이리 호들갑이야? 이 녀석아. 청소나 열심히 할 것...” 단꿈 깨진 심통으로 짜증을 내던 왕순의 얼굴이 말끝이 흐려지는 것과 동시에 굳어졌다. “안녕하세요. 왕순씨. 히히.” 허연 허벅지를 다 드러낸 미니스커트를 입은 미애가 장미꽃 한다발을 내밀며 들어섰다. “어..어쩐 일이세요?” “네. 지난번에 문에 끼이는 바람에..호호. 드리려고 가져왔던 장미꽃을 못드렸었잖아요. 그래서 오늘 새로 사왔어요. 또 지난번 일도 사과드릴 겸.. 교육 | 한지윤 | 2014-04-10 14:33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0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50 > 왕순은 문을 활짝 열었다. 어슴푸레한 새벽공기가 기분좋게 실내로 흘러들어왔다. 늘어지는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편 그는 방문을 열어제꼈다. 침을 질질 흘리며 베개를 껴안고 정신없이 자고 있는 진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 그만 일어나라.” 왕순의 고함에도 진호는 몸만 한 번 뒤척일 뿐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자식이 족보가 물구나무 섰나? 어른도 못 알아보고 어디서 개기는거야!” 왕순은 쪽마루 위로 성큼 올라서서 진호의 멱살을 잡아 일으키며 소리를 질러댔다. “불이야! 불!” 고함소리에 진호는 눈도 채 뜨지 않은 상태로 벌떡 일어나 왕순의 손을 뿌리치고 방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어디야, 어디?” 장님처럼 손을 허우적거리며 난리를 치면서도 진호의 감긴 눈을 좀처럼 뜨이질 않았다. 교육 | 한지윤 | 2014-04-04 09:34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9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9 > “엄마 아빤 하늘나라에서 만나셨을까? 엄만 그곳에선 편안하게 지내셔야 할 텐데. 너무 지독히 고생하셨어.” 수진의 말에 입원 3개월 만에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퇴원명령을 내렸을 때의 기억이 났다. “그러니까 내가 뭐라 든. 병원은 돈만 집어먹는 곳이라니까. 어서 집에 가자”며 이를 악물고 일어나 보이시던 어머니의 해골에 가까운 검은 얼굴이 떠올랐다. “언니, 엄마가 보고 싶어.” 수진은 그만 울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파묻었다. 수미의 눈에서도 한줄기 굵은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려왔다. 수미는 손등으로 볼을 훔치고 방으로 올라서며 수진의 어깨를 안았다. “울지 마, 수진아. 우리가 울면 엄마는 하늘나라에서도 고생하셔. 우리가 웃으면서 잘 지내야 엄마 마음도 편하시지.” 코를 훌쩍이면서도 애써 눈물을 삼키며 교육 | 한지윤 | 2014-03-27 15:39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8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8 > 주머니에 넣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재민은 일어섰다. 그러자 강순도 먹다 남은 빵을 챙기며 부랴부랴 따라 일어섰다. 그러자 강순도 먹다 남은 빵을 챙기며 부랴부랴 따라 일어섰다. “아, 아니 잠깐, 강순씨. 여기서 잠깐 기다려 보세요. 그 녀석에게 전화 좀 해야겠어요. 사실은 제가 돈이 없거든요.” 재민은 강순을 다시 눌러 앉히고는 태연스럽게 문까지 나와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집으로 내달렸다. 그런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강순이 흡족한 얼굴로 남은 빵을 허겁지겁 먹어치우는 동안. 수미는 어두컴컴한 언덕길을 터벅터벅 걸어 올라갔다. 새우깡 한 봉지를 담은 비닐봉지를 한 손에 들고 걷는 수미의 마음은 반나절 동안 슈퍼 일을 하느라 지친 몸보다 더 무겁게 느껴졌다. 축대 한 켠에 초라하게 기대고 선 구멍가게를 지나 교육 | 한지윤 | 2014-03-20 14:02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7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7 > “선희씨 어머니는 정말 좋은 분이신가 봐요.” 경우는 긴 대답을 기대하는 선희의 눈을 피하며 말했다. “네. 우리 엄마는 친구 같아요. 전 어머니께 비밀이 없어요. 엄만 저의 모든걸 이해해주시거든요.” 웃음 띤 선희의 모습이 예뻐 보이는 것과 동시에 부러움으로 가슴이 찡해졌다. 경우의 표정이 왠지 어두워지는 것을 눈치 챈 선희는 더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경우는 자기 때문에 어색해진 분위기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알수 없었다. 옆을 보았다. 모두들 끼리끼리 떠드느라고 정신이 없어 보였다. 경우는 재민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강순을 쳐다보았다. 잔뜩 부푼 입으로 무언가를 떠들고 있는 그녀 앞의 접시는 텅 비어 있었다. 재민은 흘깃 쳐다보니 기세등등하던 아까와는 달리 푹 쭈그러 교육 | 한지윤 | 2014-03-13 13:42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6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6 > “빨간 무” “그 좋은 이름 다 두고 빨간 무가 뭐야, 빨간 무가.” 하지만 이름이 좀 후졌어도 사람만 잘 걸리면 장땡이라고 애써 좋은 쪽으로 생각하며 재민은 하느님을 불러댔다. “빨간 무가 누구냐?” 킥킥대로 웃는 소리에 재민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한택이 남은 두 남자애들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재민은 얼른 맞은편의 두 여학생을 쳐다보았다. 둘 다 빙그레 웃고 있어서 누가 자기 파트너인지 알 수 없었다. “노란 무의 파트너, 빨간 무가 누구야?” 재민은 두 여자애의 손을 보려고 했으나 누가 쪽지를 쥐고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야.” 운명에 맡기자는 심정으로 재민이 힘없이 쪽지를 내밀었다. “어머, 반가와요. 내가 노란 무에요.” 에그머니나, 하느님도 무심하시지. 프로레슬러가 벌떡 일어나더니 넙죽 교육 | 한지윤 | 2014-03-06 11:02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5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5 > 끈질기게 졸라대는 녀석이 귀찮아서 경우는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상관이 있지. 너도 알겠지만 내가 얼마나 순진하고 순수한 놈이냐? 가슴이 떨려서 도저히 혼자는 못나가겠단 말야. 너라도 곁에 있어야 유머와 재치라는 내 매력이 나올 수 있단 말야. 제발 나 좀 살려주라. 이렇게 애원할게.” 재민은 이젠 손까지 싹싹 비벼대며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경우는 웃음기가 가신 정말 심각한 재민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짜식. 급하기는 되게 급한가보군. 나한테 빌기까지 하고.” 손을 비벼대는 녀석 앞에서 경우의 마음은 약해지기 시작했다. “에잇. 찰거머리 같은 녀석, 내가졌다.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 데 하나밖에 없는 친구 소원 못 들어줄까. 그래 가자 임마.” 재민은 금방 환한 얼굴이 되어 경우를 와락 껴안 교육 | 한지윤 | 2014-02-27 11:32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4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4 > “야! 요즘 세상에 미팅 한번 안 해보고 이 황금같은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냐?” “아, 글쎄. 난 그런 데에 관심 없다니까.” 경우는 인상까지 찌푸리며 사양했지만 재민은 막무가내였다. “특히 너 같은 공부벌레야말로 꼭 해봐야 한다구. 영어문제, 수학문제 잘 푸는 것도 중요하지만 만인에게 상식이 된 미팅, 즉 인생경험 하는 것도 무시할게 못된단 말이야.” “공부 때문이 아냐. 난 그런 일에 취미 없어.” “야, 그렇게 샌님 같은 말만 해봐라. 윤리선생처럼 서른 살도 되기 전에 썩은 수세미 모냥 우그러진다, 너.” 경우는 50은 넘어 보이는 윤리선생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음을 지었지만 고개를 가로젓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오경우. 죽어도 싫다면 강요는 안 하지.” 재민은 갑자기 심각하게 표정을 바꾸며 경우의 교육 | 한지윤 | 2014-02-20 10:53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3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3 > 진영이 전장에 나가는 무사라도 된 양 눈을 빛내며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의 얼굴에 어두운 표정이 잠시 스쳐갔다. “그래. 꼭 잘 되길 빈다.” 그는 한마디 툭 던지고 걸음을 빨리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진영은 대학이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슬쩍 떠오른 현우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헐렁헐렁한 가방을 메고 앞서 걸어가는 현우의 쓸쓸한 뒷모습을 잠자코 바라보던 진영은 고개를 숙이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현우의 곁으로 다가섰다. “현우야. 난 모처럼 좋은 친구를 만난 것 같은데, 대학도 같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어.” 진심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는 진영에게 현우가 씁쓸한 웃음으로 답했다. “대학? 대학 같은 건 생각해 본 적 없어.” “아냐. 네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조금만 노력하면 해낼 수 있을 거야. 나도 교육 | 한지윤 | 2014-02-13 11:10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2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2 > “초등학교 5학년 때 우리 반에 다리를 저는 아이가 있었어. 옆 동네 고아원에 사는 여자애였는데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서 점심시간엔 늘 운동장 한구석에 쭈그리고 앉아있었지. 그런데 천도영이라는 자식이 매일 그 애를 놀려대는 거야. 어느날 점심시간이었지. 고기반찬을 싸온 그 자식이 그 여자애보고 도시락을 같이 먹자로 그러더라. 여자애가 다리를 절룩거리며 다가오니까 일부러 젓가락을 땅에 떨어뜨리고는 주워갖고 와서 먹으라는 거야. 여자애가 젓가락을 주우니까 그 자식은 큰 소리로 “야, 이 거지야. 그런 더러운 젓가락으로 내 도시락을 같이 먹으려고 하냐? 저리 비켜. 더러운 년.” 하면서 여자애를 밀었어. 여자애가 넘어지면서 책상 모서리에 코를 부딪혀 코피를 흘렸는데도 그 자식은 마구 웃어대며 발길질을 하고 치마까지 교육 | 한지윤 | 2014-02-06 14:0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1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1 > 진영이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지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1학년 때쯤 하이네의 ‘아스라’라는 시를 읽고 잠못 이루면서 그의 열병이 시작되었으니까. 그때부터 닥치는 대로 시를 읽어댔다. 브라우닝, 롱펠로우, 워즈워드에서부터 이해인과 서정윤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하이네만큼 완벽한 시를 쓰는 시인은 없다는 것이 수많은 시를 편력하고 난 뒤의 결론이었다. 오랜 친구의 웃음을 던져주고 있는 듯한 빛바랜 누런 책장을 내려다보며 진영은 짧은 한숨을 토했다. 어머니의 차가운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뭐하냐?” 누군가가 등을 툭 쳤다. 돌아다보는 진영을 쳐다보는 현우의 얼굴이 보일 듯 말듯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그는 진영의 손에 들려 있는 책을 흘깃 넘겨다보았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니? 선생님이 뭐라고 하던?” 교육 | 한지윤 | 2014-01-23 15:08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0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40 > “스승이라는 직업은 성직과 다름 없다고들 하잖아요. 그래서 옛날에는 스승의 그림자도 안 밟았다고들 하구요.” 그녀는 떼어낸 꽃잎들을 잘게 찢어내어 손으로 비비며 먼 산을 바라보는 강선생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건 다 옛말이 되었죠. 요즘엔 통하지 않는 이야기예요.” 잘게 부수어진 꽃잎들을 엄지와 집게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빚으며 고개를 가로젓는 그녀의 말에 강선생이 한숨을 내쉬었다. 강선생의 눈에 소영의 한탄은 낯선 모습이 아니었다. 바로 3년전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부임했을 때 새로 사서 입은 와이셔츠의 파르스름한 빛깔만큼이나 사도(師道)에의 자부심으로 꽉 차 있을 때였다. 지금과 다를 바 없는 동료 교사들의 물욕과 눈치에 찌들은 얼굴을 보고서도 환멸보다는 자신의 임무 교육 | 한지윤 | 2014-01-16 11:51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9 > 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9 > 현우가 무언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려고 했으나 강선생이 손을 들어 제지하고 계속 말을 이었다. “네가 지난번 다니던 학교에서 왜 이리로 전학을 왔는지 알고 있다. 나는 전말을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 짖고 싶지 않다만 교장선생님이나 학교당국에선 지금 너를 주목하고 있다.” “전과자를 격리시키는 것과 똑같은 이치군요.” 현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라고 너를 부른 건 아냐. 네 의지와 무관하게 나쁜 상황에 말려들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거다.” 강선생이 담배를 비벼 끄며 숨을 내쉬었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코에서 뿜어 나왔다. “그 애들의 행실을 알면서도 왜 학교 측에선 가만히 두는 겁니까?” 얼굴에 비웃음을 가득 담고 현우가 강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 교육 | 한지윤 | 2014-01-09 14:59 처음처음123다음다음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