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닿는 순간 사라지는 3월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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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닿는 순간 사라지는 3월의 눈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3.05.25 20: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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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단 ' 3월의 눈' 25일 오후 4시 홍주문화회관
오영수·박혜진 등 국내 최고 국립극단 배우 출연

▲ 극중 노부부가 오래된 한옥집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극 '3월의 눈'은 관객의 눈에 '쉼'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번쩍번쩍하는 조명을 치우고 요란한 장면 전환 같은 것도 다 없애 버리고 포근한 빛 감도는 한옥집 풍경만을 정직하게 펼쳐놓은 무대. '치장'에 지쳐버린 마음속으로 잔잔한 평화가 찾아오는 순간이다. 극은 문 닫은 이웃 이발소의 소식으로 시작된다. 머리를 깎으려고 집을 나선 장오(변희봉 분)가 이발소가 폐업하는 바람에 허탕을 치고 돌아오자 이순(백성희)은 "우리 예민하신 영감마님 머리는 이제 누가 깎는다우?"라며 남편을 어른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은 죄다 뜯겨 나간 50년 세월의 이발소뿐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6·25전쟁, 군부 독재의 회오리 속에서도 꿋꿋이 버틴 노부부의 한옥집도 곧 문짝 따로 대청 마루재 따로 모두 흩어져 버릴 운명에 처했다. 손자의 빚을 갚아주려는 부부가 집을 팔면서 새 주인이 한옥은 헐고 그 자리에 3층짜리 상가 건물을 짓기로 한 것이다. 떠날 날을 앞둔 부부. 내달리는 바깥 세계의 시간을 잠시 붙들어 둔 듯한 공간에서 이들은 느릿한 말투로 때론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고 때론 사무친 세월의 한을 내비쳐 보인다.

부부는 지난 삶을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하지만 한옥집 곳곳에 놓인 물건에 시간의 흔적이 모두 깃들어 있어 몇 마디 대사만으로도 두 노인의 커다란 세월은 객석에 오롯이 전달된다. 실종된 아들 대신 손자를 길러내야 했던 부부의 사연, 또 노부부가 피난길에 처음 만나 먹은 준치국 얘기를 할 때면 마루 밑 먼지 쌓인 부엌 집기가 눈에 들어와 맘이 쓸쓸해지고 대문 밖 화분을 치우겠노라는 통장의 통보에 관객은 뒷마당 말라버린 작은 화분들을 보며 한 번 더 먹먹함을 느낀다. '3월의 눈'은 요란한 무대 효과로 관객의 눈을 빼앗지 않는다. 대신 느릿하게 흘러가는 서사 속에서 '한눈 팔 시간'을 허락한다.

지난 3월 연극 '3월의 눈'이 첫 선을 보이자 관객은 이들에게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떠들썩하지는 않지만 사라지는 것을 지켜내고 선 사람들에 대한 진지하고 따뜻한 지지이자 응원이었다. 3월의 눈은 한국 연극계의 거장 손진책이 연출하고 오영수, 박혜진을 비롯해 국내 최고의 국립극단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다. 평생을 오래된 한옥 집에서 살아 온 노부부의 3월의 단 하루를 통해 세대를 초월해 삶과 죽음의 과정에서 변해가는 것들을 잔잔하면서도 깊이 있는 이야기로 전달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전하는 작품이다.

오는 25일 오후 4시 홍주문화회관 무대에 오르는 이 공연은 중학생 이상 관람가능하며 전석 5000원이다. 예매는 홍주문화회관(630-9063)으로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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