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시대 비대면 상담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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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비대면 상담을 하면서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9.17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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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꿨다.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려고 애쓰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남을 통해 움직이던 세상은 바이러스로 인해 비대면(Untact)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전에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비대면 상담을 현장에서도 받아들이게 됐다. 

O양은 초등학교 1학년이다.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마른 체형이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무서운 벌레 생각으로 잠을 못 잔다. 그래서 잠을 자야 할 시간이 되면 집 안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른다. O양은 스마트폰으로 유튜브를 시청하거나 장난감 놀이를 할 때는 엄마가 불러도 대답하지 않는다. 엄마가 혼내고 달래보지만 O양의 행동은 변함이 없다. 지속된 갈등을 해결하고 싶은 엄마는 코로나로 인해 한국에 귀국하자마자 O양을 상담실에 데리고 왔다. O양과의 상담은 60분으로 부족했다. “나는 어렸을 때 까꿍~ 하면 잘 웃었는데 지금은 웃지 않아요.” “전 상처 없어요. 마음이 아프지 않다는 뜻이에요. 하지만 엄마가 혼낼 때는 마음이 아파요. 엄마에게 사과해도 소용이 없었어요.” “나는 대장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친구가 아주 많았으면 좋겠어요. 나를 수많은 친구들이 좋아했으면 좋겠어요.” “나는 특별한 아이여서 너무 키우기가 어려워요.”라는 이야기들을 상담 시간마다 쏟아냈다. 그리고 몇 초 간격으로 두 주먹을 꽉 쥐고 양 볼에 갖다 댄 채, 양쪽 어깨를 움츠렸다 펴는 동작을 반복했다. 전형적인 틱 증상이었다.

틱 장애(tic disorder)는 눈 깜빡임, 킁킁대기, 고개 돌리기 같은 행동을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반복하는 것을 의미하며, 유전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이 원인이다. 틱 장애 아동은 일반 아동에 비해 자신의 가족 분위기를 불안하다고 지각하고, 부모는 자신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느끼는 불안과 긴장감을 표현하지 못한다. 부모에게 자신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지 못할 때, 아동은 몸으로 자신이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표현한다.

상담 중 O양은 “선생님을 ○○로 데리고 가고 싶다. 혼내지 않으니까!”라고 말했다. 부모에게 혼나는 것이 무서워서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한국에 귀국한 지 3개월 만에 O양은 부모님과 비행기를 타고 살던 곳으로 돌아가야 해서 상담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웠다. 그래서 코로나19로 인해 널리 퍼지는 비대면 만남을 상담에 적용해서 화상상담을 하기로 했다. 상담자는 처음으로 시도하는 화상상담이라 어색했지만, O양은 화면에서 상담자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리고 대면상담 때처럼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쏟아냈다. 상담자는 화면을 통해서라도 눈빛을 맞추며 공감하고 경청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O양이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었고, 상담 중 갑자기 화면이 끊기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마음을 쉬지 않고 표현하는 O양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상담을 지속했다. 

화상 상담을 계속하는 동안 O양의 틱 증상 횟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프로이트는 표현하지 못한 감정을 말하면 치유가 된다고 말했다. 화상 상담을 통해서라도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자, O양의 행동은 변화됐다. 현재 O양은 엄마가 부르면 곧바로 “예”하고 달려간다. 식사나 잠자는 것도, 동생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좋아졌다. 주변에 사는 친구 엄마들도 O양이 달라졌다는 말을 한다고 O양 어머니는 전해줬다. 아동은 성장하면서 느끼는 불안이나 두려움을 표현하지 않으면 몸으로 표현한다. O양은 비대면이지만 자신의 감정을 놀이와 말로 표현했다. 

그러자 틱 증상이 줄어들었다. 화상으로라도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O양과의 비대면 상담 경험을 통해 상담자는 코로나로 인해 대면상담을 하지 못하게 될 때, 화상상담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때로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우리가 마지못해 하는 행동이 어쩌면 우리가 이전에 알지 못한 좋은 대안을 발견하게 해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살기 위해 억지로 하는 행동 속에 예상치 못한 뜻밖의 보물이 숨어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오늘의 고통이 견딜만하지 않을까요?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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