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와 마을이 함께 만드는 ‘마을교육공동체’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기존 학교 교육체계에만 맡겨놓아선 안된다.
마을이 학교와 함께 교육의 주체로 서는 것이 마을교육의 관건이다.
교육이 깊고 넓으려면은 학교는 더 수렴적, 마을은 더 확장적이어야
농촌지역의 아이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한 의미있는 정책 포럼이 홍성에서 열렸다. ‘자생적인 마을교육 공동체’, 어떻게 만들 것인가? 이는 홍성교육지원청(교육장 주도연)이 지난 5일 홍성문화원에서 개최한 ‘2019 홍성 마을교육공동체 정책포럼’의 핵심주제다.
홍성 각 지역의 초·중·고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에 일임하는 것으로 만족할 수 있겠는지 등에 대해 전문가 분석과 학교 교육을 보완하고 있는 실제 사례를 통해 학교 교육이 지닌 한계를 극복할 대안 모색에 나선 것이다.
■ 교육에 대한 통념에서 벗어나야
지금까지 아이들의 교육은 당연히 학교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런 통념을 벗어나야 교육에 대한 새로운 대안들이 가능하다는 점을 포럼은 주목했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오직 학교라는 기존 교육체계에만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마을공동체가 함께 분담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부각됐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마을교육공동체’를 조직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는 공고히 구축돼있는 기존의 교육체계의 범주 안에서 쉽게 엄두를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학교 밖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점에 동의를 해도 이러한 구상을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
주제발표에 나선 양병찬 공주대학교 교수는 경쟁교육에 매몰되면서 사회불평등을 재생산하는 등의 비교육적 결과를 낳고 있는 우리 사회를 그대로 둘 것인지 아니면 함께 배우는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인지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며 문제제기를 했다.
양 교수는 “원래 교육과 돌봄은 그 지역의 공동과제였다. 그러나 근대학교의 등장과 함께 교육이 국가의 책무로 이관됐고 지역과도 분리됐다”면서 현재 학교 교육이 지닌 한계가 무엇인지를 설명했다. 아이들의 교육을 학교 체제에만 일임해서는 학생 자신은 물론 학생이 속한 지역에서 공동체적 삶을 꾀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될 것임을 강조했다. 이제 마을이 교육의 한 주체로 학교와 손을 잡고 아이들의 전인적 성장에 함께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학교혁신은 내부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학교의 담장을 벗어나 지역과 함께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학교 역시 마을과 함께 협업의 주체로 나설 것을 주문했다. 이럴 때 학교도 자체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출구를 찾아 비로소 혁신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마을교육공동체’란 무엇인가?
포럼은 홍동면에서 실천하고 있는 마을교육공동체의 사례를 주시했다. 각 마을마다 주어진 조건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겠지만 실제사례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홍동은 대표적인 모범사례로 꼽힌다. 홍동을 선례로 홍성의 다른 지역들이 참고할 필요가 있다. 다만 홍동의 사례가 유일한 대안은 아니다.
△화월주(화정동·월산동·주월동)지역 교육네트워크 △청주의 일하는 사람들 △일본 요코하마시 사회교육시설의 마을교육공동체 등이 참고할만한 사례로 제시됐다.
무엇보다 △마을내 학생 △교직원 △학부모 △마을주민이 함께 학생의 교육활동 지원을 위해 참여해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 아이들의 교육은 우리 마을에서 책임을 진다”는 지역주민들의 주체적 의지와 역량이다. 포럼은 마을교육공동체가 구현할 수 있는 방향을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마을을 통한 교육이다. 이는 지역사회의 인적, 문화적, 환경적, 역사적 인프라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학습 형태다. 둘째, 마을에 관한 교육이다. 학생이 속한 지역에 대해 배우는 것이다. 셋째, 마을을 위한 교육이다. 학생들이 지역사회발전의 훌륭한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미래진로 역량을 키워주는 활동이다.
■ 가능성 보인 몇 가지 사례들
교육 여건이 학교는 더 수렴적이 되고 지역은 더 확장적이 되면 아이들의 교육 경험은 깊어지고 넓어질 것이다.
학교와 마을의 협업을 통해 교육의 수렴과 확장을 모범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사례들을 포럼에 모인 교사들과 학부모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지역네트워크 화월주는 ‘우리 동네 아이들을 우리 동네 어른들이 함께 키우자’라는 모토로 3개(화정동, 월산동, 주월동) 지역에 살고 있는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을 위해 교육복지 활동에 초점을 맞춘 사례다.
광주 구도심에 속한 이 지역엔 저소득층 밀집지역으로 지역의 열악한 경제상황은 지역에 살고 있는 아동·청소년 문제로 이어져 방과 후 가정 내 방치되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이로 인해 학업부진, 조기 비행, 정서적 어려움 등을 겪는 학생들과 경제적 어려움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건강상의 문제도 발견되던 지역이다.
화월주는 아동·청소년들의 공동체 의식 형성과 개개인의 진로개척 및 성장, 지역 주민 네트워크와 사회안전망 구축 등으로 문제를 풀어갔다. ‘진로탐색을 위한 직업현장’이 참고할만하다. 이를 통해 진로탐색과 마을관계망 형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었다. 화월주는 ‘꿈찾는 달팽이’(자유학기 연계마을 진로체험 프로그램)를 통해 마을에서 교육적으로 의미있는 사람들을 발굴해 학생들에게 연결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마을의 공무원, 목수, 의사, 약사, 복지사, 엔지니어, 미디어활동가, 제과제빵사, 카센터 등이 직업 멘토로 역할을 수행하며 마을의 다양한 직업체험으로 한 학기 과정을 채우는 방식이다.
홍동의 햇살배움터의 사례는 “홍동에서 지루하지 않게(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철학이 핵심이다. 이재혁 햇살배움터마을교육연구소 소장은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기 교육철학을 반드시 수립해 놓을 것을 권했다.
햇살배움터는 홍동지역의 배움터와 일터가 힘을 모아 아동청소년들을 지원하는 교육네트워크다. 지난 2002년 여성농업인들의 자녀를 돌보기 위해 시작한 마을공부방이 모태가 됐다. 교육안전망 구축에 역량을 집중했다. 청소년거점 공간인 만화방을 만들어 ‘또래안전망’을 만들었다. 청소년마실이학교를 통해 돌봄이 필요한 청소년을 지역 어른과 연계할 수 있도록 했다. 마을작업장학교를 통해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는 마을의 어른들 곁에서 아이들이 자연스레 직업체험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도시에 비해 문화적 인프라가 취약한 농촌마을 아이들의 문화정서를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홍동 지역의 학교(금당초, 홍동초, 홍동중, 풀무고)와 9개 지역단체(갓골유기농업영농조합법인, 교육농연구소, 꿈이자라는뜰, 논배미, 마을활력소, 밝맑도서관, 원예조합가꿈, 장곡신나는지역아동센터, 홍성여성농업인종합지원센터)가 마을학교가 참여하고 있다. 홍동의 마을학교는 마을과 학교가 함께 키운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마을과 학교가 서로돕는 지속가능한 ‘온마을학교’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양 교수가 이야기하는 마을과 학교 그리고 학생이 교육의 주체로 ‘마을교육공동체’를 만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 홍성사람은 홍성이 무대여야
포럼에서 제기된 문제 중에 한국의 교육은 그동안 ‘서울을 위한 교육’을 해왔다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마을교육공동체는 홍성을 위한 교육이 가능한지에 대한 실험이기도 하다. 대학 진학과 취업 등의 이유로 홍성을 떠나 무대를 다른 지역으로 옮겨야하는 교육 체제가 지속되면 홍성의 공동체는 서서히 와해될 수밖에 없다.
홍성사람은 홍성이 주 무대여야 한다. 굳이 홍성을 떠날 이유를 만들 필요가 없게 만드는 새로운 교육은 기존 학교 교육체제가 담을 수 없는 내용이다. 새로운 그릇이 필요하다. 지난 5일 홍성에서 열린 ‘2019 홍성마을교육공동체 정책포럼’은 새로운 그릇을 학교와 마을이 함께 아이들 교육의 주체로 참여하는 ‘마을교육공동체’로 제시했다. 이미 성공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마을들이 하나 둘 생겨나고 있다.
홍성의 다른 지역 주민들도 눈과 귀를 열고 관심을 가질만한 이야기다. 학교는 아이들의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져야한다는 기존 통념을 접고, 학생은 교육의 객체만이 아님을 깨달으며, 온 마을의 적극적 참여가 필요하다. 학교·마을·학생 모두가 교육의 주체로 서 있을 때 마을교육공동체의 문은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