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 현장의 노가다, 문 반장님의 하루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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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현장의 노가다, 문 반장님의 하루와 인생
  • 김창호 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
  • 승인 2020.04.0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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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목수(木手)1950년생. 고희라는 70을 넘긴 나이지만 아직도 건물 신축현장에서 형틀 목수 등으로 일한다. 건축 현장에서 문 반장, 문 사장, 문 목수로 흔히 불리는 그는 이제 힘든 일 그만 할 때도 되었지 않으냐는 가족이나 현장 소장 등 주변 사람들의 말에 고개를 가로 젓는다. 잔소리나 하는 뒷방 늙은이가 되지 않고 지금까지 돈을 벌 수 있다 것도 큰 보람이지만 여전히 건강하고 사지육신이 멀쩡하니 가능한 한 일을 해 보겠다는 굳은 소신을 가지고 있다. 특히 병원에 가보면 일하고 싶어도 몸이 아파 못하는 사람이 많은 데 자신의 처지는 얼마나 다행이냐는 것이다.

얼마 전 종합병원에서 건강진단을 받은 문 반장은 자신의 의학적 신체 연령이 실제 보다 10년 이상이 훨씬 젊은 58세 정도로 나타났다며 이런 건강의 유지에는 노가다 생활이 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노동하는 근육과 운동하는 근육이 다르다고 하지만 근력이 강화되는 것은 일단 대동소이하다. 운동을 하면 몸이 유연해지는 것을 느끼지만 노동은 때로 근육을 경직시키고 부담을 준다. 그러나 습관이 되면 신체가 잘 적응을 한단다. 거의 매일 하다가 일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좋지 않는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많다. 노가다 일도 일종의 중독성이 있는 것이어서 일을 하면 세로토닌, 도파민, 엔도르핀 등 몸에 좋은 물질들이 적절히 분비되고 활성화되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일을 못 하게 되는 날, 집에서 TV나 보며 빈둥거리면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오히려 병이라도 생길 걸 같은 느낌도 받는다.

문 반장은 매일 새벽 4시쯤이면 일어나 약속된 현장에 나갈 준비를 한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인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영하의 겨울 새벽에 일을 나갈 때는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라는 한심한 생각도 잠시 들지만 현장에 도착해 작업복을 갈아입고 연장을 챙기고 안전모를 쓰고 안전화를 신으면 금방 신명이 일어난다고 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현장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보통 동절기에는 오전 8시 정도부터 일을 하지만 여름에는 7시 정도부터 일을 시작한다. 특히 일을 계속 나가면 우선 무엇보다도 아침, 점심을 규칙적으로 잘 먹게 된다. 규칙적인 식생활에서 적절한 영양 보충의 중요성을 실감하는 기회도 된다. 남들은 춥다고 위축되고 움츠리는 겨울에도 일을 시작하면 땀이 나서 오히려 더울 때도 많다. 또 한여름에는 땀을 흠뻑 흘리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면 덥지도 않고 이열치열의 더위를 이긴 승리감과 상쾌한 기분은 새로운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하루 벌어 하루를 사는 일용직 근로자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붓대와 먹물들이 사무실에서 넥타이를 매고 머리를 쓰고 펜대를 굴려 화이트 컬러로서 버는 돈이나 블루 컬러로 버는 돈이나 차이가 없고 소중하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밥을 버는 신성한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수가 없고 오직 사람의 마음과 처신에 따라 귀하고 천한 것이 정해진다.

집이나 건축물을 함부로 지을 수 없었던 예전의 왕조시대에 목수는 역관(譯官)과 마찬가지로 모두가 일종의 직업공무원이었다. 지금도 덴마크에서 목수는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인기 1~2위의 직업인이라고 하지 않는가. 정신노동자들이 사농공상의 연장선상에서 육체노동을 경시하고 무시하는 경향이 아직도 잔존하지만 힘든 육체노동을 통해 땀을 직접 흘려 보는 것이, 일견 관계없이 보이는 사고의 깊이나 정신적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그는 자주 주장한다. ‘아이디어는 머리에서도 나오지만 근육의 사용에서도 나온다는 대발명가 에디슨(1847~1931)의 말을 상기시키는 통찰이 아닐 수 없다. 땀의 가치와 노동의 고귀함은 인간이 추구해야 할 거룩한 사업이다.

문 반장이 목수 기공(技工)이 된 것은 나름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가난한 경상도 농촌 출신이었던 그는 농사지으라는 부모의 강권을 피해 갓 청년이 된 철없던 시절에 서울로 왔다.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가기 어려웠던 그 때, 부모님 곁에서 몇 해 농사를 지어보니 너무 힘들고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고 뼈저리게 회고한다. 당시는 도무지 먹고 살기가 힘들어 모두들 궁핍한 농촌을 떠나 대도시로 무작정이나마 나가야 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그는 취미가 있던 가수가 되려고 가수 양성학원에 다녔으나 정작 노래는 제대로 가르쳐주지 않았고, 청소 같은 허드레 일만 계속 시켰다고 한다. 평균 이하의 작은 키에다 소위 비디오가 되지 않은 용모여서 3류 가수 출신인 학원 원장의 주목을 끌기도 인정을 받기도 어려웠다고 한다. 서울행의 직접적인 동기가 된 가수의 꿈은 결국 접었다. 그러나 그 때의 안간 힘이나 소질 때문인지 유행가는 지금도 잘 부르고 모르는 노래가 거의 없다.

가수라는 청운의 꿈을 버린 후 인생의 진로를 두고 이런저런 고민을 거듭하던 중 영등포 쪽방 촌에서 우연히 알게 된 목수를 따라 다닌 것이 평생의 직업이 됐다. 젊은 시절 멀리 열사의 땅 중동도 다녀왔다. 큰돈은 모으지 못했으나 결혼도 했고 번듯한 집도 샀고, 두 자녀는 공부도 잘 하고 좋은 학교 나와서 남들이 부러워하는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타고난 성실함을 바탕으로 한 비교적 성공한 인생이었다고 자부한다. 큰 인물은 되지 못했지만 못난 자손은 아니라는 스스로의 긍지다.

노가다 예찬론자인 문 반장은 몇 년은 더 일할 수 있다고 한다. 아직까지는 아이들 신세 지기는 싫다는 자립정신이나 자존심의 발로일 것이다. 어쨌든 부지런한 문 반장은 돈 욕심보다는 일 욕심을 내는 편이다. 요즘 그의 하루 일당은 20만 원 정도.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매일 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노가다 일은 비가 한 방울이라도 내리면 공치는 날이라고 해서 쉬어야 하는 속성이 있다. 그는 일이 일찍 끝나는 저녁에는 노가다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석양주를 마시며 하루의 피로를 씻기도 한다. 파이팅! 문 반장!

 

김창호<홍성조류탐사과학관 연구위원·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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