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양심불량, 왜 일어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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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양심불량, 왜 일어나는 것일까?
  • 박만식 주민기자
  • 승인 2020.07.25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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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저렇게 주·정차를 할까?” 주·정차문화 생각해 볼 때
이기심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양심불량에서 비롯돼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배려’라는 말은 참으로 아름다운 단어다. 배려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配慮)이란 좋은 뜻과 배반되고 어그러지다(背戾)란 나쁜 뜻이 있다. 우선 좋은 배려에 대해서는 굳이 논하지 않아도 회자되는 많은 이야기가 있고 또 아름다운 사연들이 있다. 사실 이 배려가 세상에 널리 자리 잡고 있기에 좋은 배려 이야기를 생략한다.

이번엔 배반되고 어그러지는 배려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하는데, 그 중 우리가 흔히 격는 운전문화에 대한 배반되고 어그러지는 배려를 논하고자 한다.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대수는 2020년 상반기에 2360만대를 돌파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 국민 2.19명당 1대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어마어마한 숫자의 현 생활의 필수품인 자동차. 그렇다면 그 가장 보편적인 자동차를 운전하며 보여지는 일상적 배려 수준은 어떠할까?

우리 모두 운전을 하면서 매일 한번쯤은 인상을 찌푸리는 경험을 해 본적이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은 유형은 운행을 방해하는 얌체 정차와 도로를 막는 비양심적 주차, 그리고 코너를 막아놓은 무지막지한 주차가 제일 많을 것이다. 두 번째는 운행 중 겪는 과속, 칼 치기, 과도한 경적울림, 심지어는 보복운전까지 여러 형태로 만나게 된다.

우선 가장 배려 없는 모양새로 제일 많이 보여 지는 주차문화를 얘기해보고 싶다. 운행 중 어처구니없이 서있는 차들을 보면 “왜 저렇게 주(정)차를 할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것은 나만 편하면 된다는 형편없는 이기심과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양심 불량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형편없는 이기심은 어떤 용기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것은 스스로 “나의 수준은 이것 밖에 안 된다.”라고 떠벌리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렇다면 타인을 배려하지 못하는 양심불량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불법 주차라는 것에 대한 처벌이 솜방망이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겨도 된다’는 안일하고 편협한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어린이 보호구역에 주정차를 해놓아도 처벌수준이 약하고 단속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민식이법(도로교통법 일부개정법률)’이나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이 탄생 한 게 아니겠는가? 상습 불법 주정차 지역에는 늘 차가 즐비하다. 

어떤 곳은 이면도로를 본인의 상가 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심지어는 상품을 적재하고 작업까지 하는 곳도 많다. 아파트 주변은 어떠한가? 항상 주차장 부족으로 주변 이면도로는 주차장이 돼버린 지 오래고 그곳은 언제부터인가 보행자와 운전자가 범접하면 안 되는 곳이 돼 버렸다. 화재현장에서 생명을 위태롭게 방해하는 것도 양심불량에 팽배해 있는 비양심적 주차위반자들인 것이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 근본적인 해결책은 스스로 지키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우선은 정책적으로라도 방법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짜투리 땅을 ‘쌈지주차장’으로 만들고 빈집 등의 철거를 통해 ‘공영주차장’ 등을 늘리고, 불법 주정차에 대해 무거운 과태료를 부과하면 되지 않을까. 

어린이 보호구역에 주정차 과태료 100만원, 소방차 진입방해주정차 과태료 200만원, 일반 주정차 과태료 30만원. 아마 대부분의 운전자가 주정차 규범을 스스로 지키게 될 것이다. 주정차는 지위여하를 막론하고 똑같이 지켜야 하는 상식적 에티켓일 것이다. ‘배려…’ 우리가 높이 평가하는 배려가 배반이 되고 어그러지는 배려보다 월등하게 많아지는 세상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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