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꾸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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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꾸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
  • 김옥선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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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마당에 60여년이 된 은행나무가 있다. 물론 세입자인 내가 심은 것은 아니다. 여름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해주고, 가을에는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노란색을 자랑한다. 하지만 늦가을이면 은행 냄새로 골머리를 앓는다. 그래서 하루 일과는 은행을 쓸어내는 것으로 시작하게 마련이다. 함부로 베어낼 수는 없다. 내가 주인이 아니기도 하고, 나무를 함부로 베어내는 일은 목신(木神)의 화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심었지만 인간에게 주는 경관이기에 그저 바라보고 지켜볼 뿐이다. 

경관(景觀)의 한자를 살펴보면 ‘景’은 ‘볕 경’, ‘그림자 영’이며, ‘觀’은 ‘볼 관’이라는 뜻이다. ‘빛과 그림자를 본다’는 의미다. 나무, 꽃 등의 자연이 주는 빛과 그림자를 보면서 인간은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그 감정을 나 혼자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와 공유를 하고 싶어지는 것이 보편적 심리다. 그래서 인간은 경관을 가꾼다. 이 지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가꾸기 위해 무차별적으로 밀어내거나 주관적 잣대에 의해 이른바 경관을 조성한다. 

어느 마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주택 주변에 여러 가지 화사한 꽃들과 나무들이 심어져 있다. 이름도 생소한 꽃들이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기분이다. 꽃을 심어 가꾸는 할머니를 만났다. 

“꽃을 왜 심으세요?” “아름다우니까.” “꽃만 아름답나요? 할머니가 더 아름다워요.” “사람은 아무리 예뻐도 속이 시끄러운 동물이야. 그런데 꽃은 저렇게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잖아.” “저렇게 예쁘게 가꾸려면 풀도 뽑고 물도 주고 해야 하잖아요?” “그럼 해야지. 저것들이 얼마나 예민한 것들인데. 사람 키우는 것보다 더 보람 있잖아. 그리고 나만 좋나? 이 주변을 다니는 사람들도 함께 기분이 좋아지잖아? 그러면 다 좋은거지.” 그야말로 우문현답이다. 

마을만들기사업 중 하나로 마을안길 경관사업이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경관보존직접지불제는 지역별 특색 있는 경관 형성을 위한 작물 재배 및 마을경관보전활동을 통해 농촌 경관을 아름답게 가꿔 지역축제, 농촌관광, 도농교류 등 지역사회의 활성화 도모하고자 하는 사업이다. 국고 70%, 지방비 30%로 이뤄지는 이 사업에서 정부는 경관작물과 준경관작물을 정해놓았다. 경관작물은 메밀, 코스모스 등 23종, 준경관작물은 청보리, 밀등 9종이다. 이를 심고 가꾸기 위해 마을 부녀자들이 쪼그리고 앉아 풀을 메고, 물을 준다. 

수 십 년 동안 밭을 매기 위해 쪼그리고 앉아 일하던 부녀자들은 연골이 닳아 무릎 수술과 허리 수술을 하는데 다시 마을경관을 만들기 위해 부녀자들의 쪼그려 앉기가 반복된다. 사람이 먼저이지 경관이 먼저는 아니다. 이제 마을경관사업의 내용이 좀 바뀌어야 할 때가 왔다. 

장곡면 광성3리는 100여년이 넘는 돌담들이 있다. 밭에 돌이 많아 작물을 가꾸기 어려웠고, 그래서 주민들은 밭에서 고른 돌로 담을 쌓았다. 눈썰미 있는 몇몇 주민은 돌담 쌓는 기술자로 일하기도 했다. 직접 쌓으니 수리도 손수 한다. 마을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마을 리더에게 신신당부했다. 마을의 돌담은 소중한 마을의 자원이니 잘 가꿔주기를 바란다고 말이다.
 
마을경관의 시작은 내가 살고 있는 마을을 둘러보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너무 익숙해서 그냥 지나치고 갔던 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는 일, 그 익숙함에 따뜻하고 애정 담긴 손길을 내미는 일에서 마을경관이 비롯된다. 가꾸는 것은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한 일련의 활동이지만, 지켜내는 것은 그 어떤 어려운 여건에서도 보존하기 위한 인간의 치열한 노력이 들어가는 일이다. 

무조건 가꾸려고만 하지 말고 먼저 있던 것들을 잘 살피고 관찰하자. 그것만 해도 마을경관의 절반은 성공이다.

김옥선<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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