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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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발견
  • 김옥선<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9.2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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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에게 전화가 왔다. 휴대전화 벨소리가 진동으로 바뀌어서 오는 전화를 하나도 받지 못하게 생겼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당신은 건드린 것이 없는데 휴대전화가 오래돼 바꿀 때가 됐다는 것이다. 난감했다. 전화상으로 설명을 드린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고 벨소리가 진동으로 바꿨다고 고장난 것은 분명 아닐텐데 말이다. 결국 노모는 지나가는 젊은이를 붙들고 벨소리로 변경은 했지만 최신 스마트폰으로 바꾸고 싶은 마음은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참고로 노모의 나이는 여든세 살이다.  

코로나19로 인해 농촌지역 마을만들기사업 대부분이 시행되지 못하고 있다. 대안으로  화상회의, 공동체 미디어의 재발견 등의 방법을 강구하고 있지만 젊은이들만 사는 마을이 아니고서는 농촌지역에 적용하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무릇 마을만들기의 시작은 대화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화의 사전적 의미는 마주 보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일을 말한다. 눈을 맞추며 서로의 표정을 살펴, 배려하고 위로하는 그 일련의 모든 과정이 쌓여 ‘대화’라는 과정을 만들어낸다. 

영국의 역사학자 시어도너 젤딘(Theodore Zeldin)은 ‘대화는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거나 감정을 나누는 수단이 아니며 사람들의 머릿속에 생각을 주입하는 방법만도 아니다. 대화는 저마다의 기억과 습관을 지닌 마음과 마음이 조우하는 과정이다’라고 조언한다. 

그의 대화에 대한 정의는 인터뷰를 하는 과정과 비슷하다. 비록 마스크를 착용하고 농촌지역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일은 단순히 마을조사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는 일만은 아니다. 마을에 대한 주민 각자의 기억과 개인의 기억을 내면에서 끄집어내고, 이것이 타인에게 반사돼 각자의 내면에 축적하는 과정이 대화를 통한 마을기록의 과정이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액정을 통해 얼굴을 보고 인사를 나누는 화상회의가 얼마나 실질적 효과를 볼 것인지에 대해 솔직하게 말하자면 미심쩍기만 하다. 개인적으로 아직 촌스럽고, 아날로그적 삶을 지향하며, 문명의 이기를 잘 활용하지 못하는 성향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발로 뛰어다니며 사람을 직접 만나 손을 흔들고, 눈을 맞추며 그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것이 가장 최선의 대화라고 믿는다. 

어떤 마을에 조사갔을 때의 일이다. 올해 여든두 살인 어르신은 삼십대 중반에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했다. 도저히 농촌에서 먹고 살 방법이 없어 떠났다고 한다. 목욕탕에서 화부로 일하고, 공장에서 일하며 자식들 여우살이도 시켰다. 그러나 마음 한편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싹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타향살이를 하면서도 틈나는대로 고향에 들려 며칠씩 머물다 갔다. 마을지를 만들기로 하면서 주민들은 그 어르신을 꼭 봐야 한다고 했다. 마을일에 대해 어르신만큼 잘 아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한다. 어르신은 경기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전화 통화를 두 번 시도했지만 대화를 이어가기 어려웠다. 홍성 사람이 전화를 한 것도 반가웠고, 마을책을 만든다고 하는 일에 감격해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르신은  명절을 앞두고 자녀와 함께 마을에 온다며 전화를 했다. 부랴부랴 약속을 잡고 어르신을 뵀다. 대화를 나누는 중 어르신은 마을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훔쳤다. 배고픈 시절, 어려운 시대를 넘었던 당신과, 당신의 이웃들에 대한 연민과 애통함이었다. 

어르신과 헤어지며 다음에는 경기도로 찾아뵙겠다고 돌아서 오는 내내 내 마음도 애통했다. 당신의 눈물을 보며 안아드릴 수도, 손을 어루만져 줄 수도 없었기에 어르신의 눈물을 마음의 단비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쉬었다. 마스크를 착용하고서라도 당신을 만나 눈을 맞추며 마음과 마음이 조우하는 대화를 나누는 기쁨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 간절하다.

 

김옥선<홍성군마을만들기지원센터 팀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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