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면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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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면역력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10.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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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추석(秋夕)은 코로나와 함께 다가왔다. 흩어진 가족들은 대면과 비대면으로 덕담(德談)을 한다. 명절은 매일 되풀이되는 평범한 일상을 멈추고 조상과 가족을 생각하게 만드는 날이다. 추석 때 가족과 친지들이 관심을 표현하며 묻는 질문이 연령대에 따라서 약간씩 다르다.

20대 취준생 A씨는 ‘뭘 하고 싶은 거니?’ ‘뭐하고 있니?’라는 질문을 받는다. 관심을 가장한 침범으로 느껴져 마음이 편하지 않다. 30대 직장인 B씨는 ‘직장은 안정적이니?’ ‘남자친구는 있니?’ 같은 질문을 받는다. 이런 질문을 들으면 자신의 삶이 다른 사람에 의해 평가되는 것 같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다. 워킹 맘 40대 C씨는 아이들의 학교 성적에 대해서 물어볼 때, 웃으면서 답변하지만 마음이 편하지 않다. 프리랜서 50대 D씨는 ‘결혼은 언제 할 거니?’라는 질문을 15년 동안 듣는데,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만 친척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간섭이 짜증난다. 퇴직자 60대 E씨는 ‘요즘 뭐하고 지내세요?’라는 말이 듣기 싫다. 말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는 사람을 만나는 명절이 스트레스가 된다.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체스터 피어스(Chester M. Pierce)는 흑인에 대한 언어적 차별과 모욕을 묘사하기 위해 마이크로 어그레션(micro-aggression)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이후 케빈 나달(Kevin L. Nadeal)은 마이크로 어그레션 중 한 유형인 마이크로 인설트(micro-insult)라는 개념을 사용해 소수자에 대한 무례함이나 비하 등이 내포된 말이나 행동이 간접적이고 교묘하게 사용되어 많은 사람이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고 했다. 그런데 미묘한 모욕을 경험한 사람이 낮은 자존감과 불안, 우울과 같이 부정적인 감정에 쉽게 노출돼, 노골적인 차별보다 더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면역은 생명을 유지하는 힘이다. 의학적 의미의 면역은 나 이외에 모든 것을 퇴치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코로나로 인해서 생물학적 면역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됐다. 몸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이 타인을 만나는 것이 쉽지 않듯이, 마음의 면역력이 약한 사람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 힘들다. 가족들과 친지들을 만났을 때 ‘너는 언제 결혼하니?’ ‘취업은 언제 하니?’ ‘얘들, 공부는 잘 하니?’ ‘퇴직 후 어떻게 지내세요?’ 등 덕담을 가장한 악담을 들을 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다. 더구나 코로나 상황에서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가까이’라는 구호를 외면한 채 어렵게 용기를 내어 만났는데 그렇게 된다면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괴로운 불행한 명절이 될 수도 있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몸과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야 한다. 우리 몸의 면역을 담당하는 세포는 골수에서 만들어지는데 백혈구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백혈구 종류 중 림프구는 몸 안에 잔존하는 균을 찾아내어 청소하는 역할을 하고, 균이 없어진 후에도 기억세포로 바뀌어 동일 균이 침입했을 때 그 균의 모양을 기억하고 있다가 바로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명절은 고향과 뿌리를, 가족을 생각하는 특별한 시간이다. 가족이기에 불편한 질문을 해도 된다는 시대는 지나갔다. 어른이라고 남자라고 대우받는 유통기한이 지난 20세기 가부장적 사고방식이 더 이상 통용되어서는 안 된다. 가족이기에 무례해도 된다는 생각을 버리고, 친척으로써 상대의 아픔을 함께 공감하고 위로해주는 사랑의 명절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림프구가 나쁜 균을 기억하고 있다가 물리치듯이, 가족을 위협하는 아픔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가족의 림프구 능력이 키워지면 좋겠다. 

올 해 추석, 당신의 마음은 행복했나요? 아니면 힘든 시간을 보냈나요? 명절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아픔을 치유하고 더 건강하게 살기 위해 마음의 면역력을 길러야 할 시간이 아닐까요?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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