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인의 말본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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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인의 말본새
  • 이원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10.22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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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71년 전에 태어난 그분은 키가 컸고, 잘 생겼으며 구수한 목소리에 술을 잘 마셨다. 마른 고기 한 묶음만 가져오면 가난뱅이든 강도든 따지지 않고 제자로 받아들여 제자가 3000명이나 됐다고 알려졌다. 한편 그보다 2096년 뒤에 태어난 이분도 어린 시절 얼굴 모습이 뛰어나고 기품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남에게 구속을 받지 않았다. 서애 유성룡이 평한 이 분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고 앞에 소개한 인물은 공자님이다. 

이 두 사람은 준수한 외모 외에도 훌륭한 공통점이 또 있었으니 말을 잘했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을 잘 했다는 것은 적절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말만 최상의 방식으로 구사했다는 의미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 품격이 없고 거칠며 직설구사 했다는 의미이다. 요즘 사람들은 말이 품격이 없고 거칠며 직설적이어서 대체로 말이 천박하다. 게다가 마음에 여유가 없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게다가 말을 시작하거나 말을 받는 타이밍에 대한 고려가 별로 없고 말투에 담긴 오묘한 감정 변화라거나 말본새 전반에 대한 궁리도 많이 부족해 말의 향기나 여운을 맛보기 힘들다. 

뿐만 아니라 야비한 말, 욕설, 듣도 보도 못한 정체불명의 신조어, 청소년층에서 주로 양산하는 극도로 축약된 급식체, 방송 출연의 공인들이 제멋대로 써대는 엉터리 발음 따위로 우리의 언어생활은 갈수록 해결난망의 혼란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말은 곧 그 사람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의 출신지며 성장배경, 교육수준, 감정표현방식, 성정, 성격, 말하는 순간의 기분 등을 알 수가 있다. 구사한 어휘 뒤편에 흐르는 감춰진 마음 상태까지 알 수가 있으니, 말 한마디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도 놀라운 일인가! 그러나 한층 더 중요한 것은 말에는 신통한 염력이랄까 주술적인 능력이 붙어있다는 사실이다. 이점은 동서고금이 똑같이 인식하는 점이다. 

‘같은 말을 만 번하면 그 말대로 된다’는 유명한 격언은 서양 책에도 나와 있다. 언어 순화 문제는 겉으로는 그 치명적인 면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듯하지만 실제로는 잠시도 방치할 수  없는 문제이다. 왜냐면 그릇된 언어사용은 삶을 질을 떨어뜨림은 물론이고 인간의 영혼을 황폐화시키고 갈수록 관계를 악화시켜 인간사회에 온갖 분란을 야기 시킨다. 이런 때야말로 가능한 감정을 절제하며 유머를 통해 막힌 소통에 대반전을 이끌고, 그럴 수 있는 분위기와 언어구사 방식과 타이밍에 놀라운 재능을 발휘해 온 충청인의 말본새를 되돌아보고, 다시 배워야 할 때이다.

방송인이었던 밀양 출신 안상윤의 《충청도는 왜 웃긴가?》라는 저술은 충청도인이 구사하는 언어적 감각과 재능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우선, 충청도 해학의 특징을 뭉근함, 능청, 너스레, 농치기, 재치, 감정이입, 유머 본능, 친근감, 간결, 정겨움, 의뭉, 장광설, 자부심 따위를 꼽았다. ‘뭉근함’을 보여준 예를 보자. 온수기가 고장 났다. 미장원에서 생긴 일이다. 머리를 감기던 미용사가 한참 만에 물었다. “괜찮은겨?” “아! 닭 튀기는겨?”

다음은 충청도식 감정이입의 사례다. 아는 사람의 사망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 양반 숟가락 놓으셨디야.” 유머 본능의 한 토막. 

과속하지 말라는 충청도 방식의 플랜카드. “그렇게 급하면 어제 오지 그랬슈!” 충청도인은 양반고장이어서 인지 감정표현도 요란스럽지가 않다. 홍성 광천읍 출신의 소리꾼 장사익 씨가 홍성에서 공연을 할 때 동네 어르신과 친구들을 초대했다. 박수와 열광적인 환호로 공연이 끝났다. 동네 어르신 왈. “좀 허네!” 참으로 좋았다는 극찬의 말이었다. 결코 험한 말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가짐, 화를 내려다가도 그 말투를 들으면 웃게 만드는 언어구사 방식, 생각할수록 친근미가 묻어나는 말, 감정이 다양하게 담긴 말본새. 이런 충청인의 말씨야말로 막말과 거친 말이 난무해 결국 극한대립으로 이끄는 빗나간 언행을 정화할 수 있는 최적의 처방이 될 것이다.

 

이원기 <청운대학교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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