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시굴
상태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 유해 시굴
  • 윤신영 기자
  • 승인 2021.03.18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군유족회 지난 13~14일 개토제와 자체 시굴 시행
추정 지역 3곳 중 1곳만 시굴… 갱도·유해는 못 찾아

한국전쟁기 홍동면 민간인 희생자 1차 유해시굴이 갱도나 유해를 찾지 못한 채 끝마쳤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홍성군유족회(회장 이종민·이하 홍성군유족회)는 지난 13일 홍성군 유족과 내빈 등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유해 발굴을 위한 개토제를 지냈다. 14일에는 자체적인 첫 시굴을 시작했다. 특히 개토제에는 지난 2016년 담산리에서 발굴된 유해 중 DNA검사를 통해 유족으로 판명된 이종민 회장과 김동규 씨가 참석해 홍성군유족들을 위로했다.

이번에 시굴한 홍동면 월현리 산 18-2 일원은 한국전쟁 당시 일제 시기 폐 금광이 두 개 있던 지역으로 추정된다. 시굴 지역을 구체화한 근거로 당시 홍동면 마을 주민 세 명의 증언과 진실화해위원회 자료가 있다.

당시 마을 주민들은 이곳을 “일제 강점기 당시 금을 캐던 수직 갱도가 있던 자리로 지난 1950년 10월경 공권력에 의해 희생된 유해가 묻혀있다”고 증언한 바 있다. 다만 주민들은 그 위치를 각기 3곳으로 서로 다르게 추정했다. 진실화해위원회 자료는 이곳에 유해 20~30여 구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어 실제 유해가 발굴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에 홍성군유족회는 희생자들의 유해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일대 중 한 곳 369㎡(120평)을 토지주의 허락을 받아 유족들이 해당 토지를 매입하고, 유족들이 자체적으로 시굴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지난 14일 시굴 결과 결국 금광의 흔적이나 유해를 찾지 못하면서 홍성유족회는 안타까워했다. 유족 이병학 씨는 “지금 시굴한 지역 말고도 증언된 2곳이 있다”며 “이 2곳을 시굴하면 찾을 것도 같은데, 토지주의 마음이 우리와 달라 너무 안타깝다”고 슬프고 아쉬운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이 씨는 “지금은 계획을 예단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토지주와 협의만 된다면 언제든지 다시 시굴을 시작할 용의가 있다”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홍성유족회 이종민 회장은 지난 13일 개토제에서 “작년 8월부터 이번 시굴 사업 지원을 홍성군에 요청했지만 도움을 얻지 못했다”며 “이번 시굴 사업은 개인이나 유족 단체가 하기 어려운 사업인데 당시 군경에게 피해를 입은 만큼 현재 국가와 군이 나서 도와줘야 하지 않냐”고 주장했다.

이에 홍성군 관계자는 “홍동면 민간인 희생자 관련 시굴에 있어서는 결정된 바가 없어서 답변하기 어렵다”며 “다만 부수적인 부분에 대해선 최대한 지원할 것이며 홍성군유족회와도 지속적으로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기구였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지난 2009년 충남지역 국민보도연맹사건에 대한 진실규명결정서를 통해 “국가권력이 불법으로 민간인을 살해한 것”이라며 “국가는 유족을 비롯한 국민에게 사과하고 위령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라”고 권고했다.

또한 지난 2016년 2월 발굴 조사를 벌여 광천읍 담산리 산 93-1번지에 대한 발굴 결과 다수의 유해와 탄두를 발견함으로써 한국 전쟁 당시 민간인 학살 유해매장지임이 확인됐다. 당시 광천 폐 금광엔 1950년 6월부터 10월까지 보도연맹원을 비롯한 부역혐의 등으로 30~60여 명의 민간인이 군경에 의해 살해돼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했다. 담산리에서는 총 24구의 유해가 수습됐으며 홍성유족회에 따르면 이중 4구의 유족을 찾을 수 있었고 유해는 현재 세종시 추모의 집에 안치돼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