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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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06.2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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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류 중 사람만이 유일하게 말을 하는 동물(호모 로퀜스, Homo loquens)이다. 같은 말이라도 어떤 상황에서, 어떤 방식으로, 누가, 누구에게 하느냐에 따라 서로가 느끼는 언어의 온도 차이는 크게 다를 수 있다. 그것이 힘 될 수도 있지만 폭력으로 다가갈 수도 있다. 

J는 성인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군입대를 지원했지만, 며칠 만에 퇴소했다. 집에 돌아온 후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용돈을 벌고 있지만, 그 외 시간은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서 생활하고 있다. 어느 날 아버지가 퇴근하고 돌아오셨지만, 어느 때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J의 태도에 화가 난 아버지는 J를 향해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엄청난 비난과 폭언을 퍼부었다. 이를 잠잠히 듣고 있던 J는 갑자기 거실 한쪽에 세워 둔 야구 방망이를 아버지에게 휘둘렀다. 

J어머니는 삶이 너무 힘겹다. J를 임신했을 때 죽고 싶은 충동이 잦았고, 출산 후에도 아이와 눈 맞춤을 거의 하지 않았다. 당시 J의 아버지는 O를 운영했지만 폐업 후 집에서 게임으로 온종일 시간을 보냈고, 이를 보기 힘들었던 J어머니는 남편과 잦은 다툼과 폭력이 오가면서 매우 우울한 시간을 보냈다. 그런 여파인지 J의 언어 발달은 매우 느렸고, 어린이집에서도 사회성과 읽기 능력이 또래 아동보다 떨어진다는 이야기를 했다. J가 초등학교 때 엄마는 심리검사와 언어치료 등을 시도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맞은 J는 어느 날 어머니에게, “아버지는 나를 사람으로 취급 안하고, 도구처럼 취급한다”고 말했다. J의 어머니는 J를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현재 아들의 모습이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에 죄책감과 우울감만 쌓여 간다.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Albert Bandura, 1925~)는 사회학습이론을 통해 가족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을 학습으로 설명하고 있다. 아동들의 공격성은 공격적인 모델을 관찰하고 그 모델이 언제 강화를 받는지 주시함으로써 학습이 된다고 했다. 가족 구성원간에 일어나는 언어적·신체적 공격은 자녀에게 공격적 행동의 모델을 제공하고, 가족 내에서 그런 행동이 일어날 수 있다는 정당성을 제공해주며, 공격성이 사회화 되는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J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게임하는 모습과 어머니에게 행한 언어·신체 폭력을 자연스럽게 관찰했고, 아버지의 행동을 모델링했다. 또한 ‘자신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고, 도구로 본다’는 고백처럼 아버지의 언어폭력에 자신의 자아(自我)를 소심한 사람, 위축된 사람으로 내재화 하였고, 그렇게 세상과 소통을 했다. 성인이 된 후 아버지의 반복된 언어폭력에 지금까지 억압된 감정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어서 자신을 도구로 본 아버지를 야구방망이를 통해 폭력을 행사했고, ‘아빠도 죽이고, 나도 죽으려고 했다’며 울부짖은 것이다. 

야구방망이는 야구공을 칠 때는 매우 좋은 도구이지만, 사람에게 휘두르면 폭력의 도구가 될 수 있다. 실제 도구로서의 칼도 요리를 할 때는 매우 유용하지만, 사람에게 휘두르면 살인 도구가 될 수 있다. 그렇듯 욕설이나 비난, 조롱과 협박 등의 언어폭력은 외관상으로는 상처를 내지 않지만, 마음 깊은 곳에 물리적 폭력보다 훨씬 해로운 큰 상처를 내어서 내면을 병들게 한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부모-자녀 간 건강한 모델을 통한 관찰학습은 자녀들에게 긍정적인 자극을 주고, 동기화돼 행동으로 진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노력하는 부모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그리고 ‘말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최명옥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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