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사(處士)의 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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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處士)의 길〈1〉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1.11.25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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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사(處士’)의 원의는 재덕(才德)은 있지만 은거(隱居)하여 벼슬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사인(士人)을 가리키던 말이다. 그들은 자처(自處;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처신함)하기를 좋아했고 생전에 이름이 들리는 것을 구하지 않았다. 고대에는 벼슬하지 않을 경우 ‘서민’의 신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모든 남자들은 벼슬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벼슬을 하게 되면 원하지 않는 일, 도의에 어긋난 일도 서슴 없이 해야 했기 때문에, 덕이 높은 고사(高士)들은 구차한 삶을 싫어하여 처사로서의 삶을 선택하는 예가 종종 있었다. 공자도 제(齊) 나라에서 돌아온 뒤 처사의 삶을 영위한 적이 있으며 삼도를 허무는 일[“墮三都”]이 실패한 후 천하 유력을 떠났을 때 한 동안 처사의 삶을 동경한 적이 있다.

처사는 구차한 삶을 싫어하여 서민으로 살아갈망정 원칙과 소신을 지키며 산 사람들이다. 출사를 하게 되면 많은 혜택을 받지만 그 대가로 왕에게 충성을 서약해야 한다. 그러나 출사를 하지 않으면 군신(君臣) 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명을 따를 필요가 없고 충성을 바쳐야 할 의무도 없다. 춥고 가난하며 고통스런 삶을 영위해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법을 위반하지 않는 한 관리들의 제재를 받은 경우는 거의 없다. 왕이나 관리들의 입장에서는 처사들의 존재가 마음에 들지 않고 또 성가시게 여겨졌지만, 이들을 제재할 방법이 법 테두리 안에 없고, 또 이들이 실현하고자 하는 것이 ‘출사 때문에 자신들은 실현하지 못하는’ 유학의 이상이었기 때문에 ‘외경(畏敬)’의 차원에서 바라볼 뿐이었다. 만일 자신들의 요구(대개는 부당한 요구-필자)에 응하지 않는다 하여 제재를 가하게 되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이상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관리들은 물론 국왕조차도 존경할망정 억압하지 않았다. 

전제군주가 지배하는 사회에도 법은 있었다. 법의 준수와 적용은 황제라 해도 피해 갈 수 없었다. 종종 사극 같은 것을 보면 초법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왕이 등장하는 예가 있는데. 그것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그렇게 그려지고 있는 것일 뿐, 불법을 저지르는 왕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왕조를 떠받치는 기둥이 바로 법이었기 때문이다. 왕이 법을 무시하게 되면 그것은 곧 왕조의 정당성을 부정하는 것이 되어 왕조의 관계자들 쪽에서 용납하지 않았다. 정난(靖難)이 일어난 것이다. 왕이 저지르는 불법이 자기들의 사익(私益) 추구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관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어쨌든 ‘공(公)’이 건실해야 자신들도 가져갈 수 있는 몫[私]이 있기 때문이다. 법 곧 ‘공’의 준수는 왕이든 신하이든 모두가 지켜야 할 천하의 보편 원칙이었다. 
혼란은 정해진 규칙(“禮” 곧 분배 정의)이 지켜지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런 일들은 대개 왕이 국정 운영을 태만히 하여 관리들에 대한 통제가 미흡하거나 부패한 관리[外朝]들을 감찰하기 위해 영입한 내조(來朝)의 관리들이 백성들의 몫을 불법적으로 강탈할 때 일어난다. 이때 백성들의 삶은 필연적으로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심한 경우 왕조가 몰락하기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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