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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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의미
  • 송경섭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1.12.23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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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지가 없어서 여러 일을 하면서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공사장 잡부, 이삿짐센터에서 짐 나르는 일, 택시 기사 등의 일을 했다. 노동자의 하루가 얼마나 길게 느껴지는지, 겉으로 보기엔 쉬워보여도 택시 기사가 얼마나 고달픈 직업인지 알게 됐다. 그러다가 30대 중반에 첫 목회지에 부임할 수 있었다.

아주 작은 시골 교회였다. 어르신 몇 분이 계셨는데 모두 다 힘들고 슬픈 사연이 있으셨다. 예배당이 아주 조그만 교회였다. 작은 교회엔 큰 부담인 부채도 있었다. 담임자 사례는 상상도 못하는 교회였다. 그렇지만 내게도 일할 교회가 생겼고 나도 목회자가 된 것이다. 그 감사와 감격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

그렇게 2년이 지났는데 감리사님이 갑자기 예산에 있는 교회로 나를 보냈다. 친구 전도사님이 갈 자리였는데 친구가 나를 추천해줬다. 내게 자리를 양보한 친구는 지금 대전에서 크게 목회를 하고 있다. 예산에 있는 교회는 장로님도 계시고 목회자 생활도 책임져주는 자립교회였다.
하루아침에 내 대우가 하늘과 땅 차이로 급상승했다. 놀랍기만 했다. 교우 몇 명 앞에서 설교하던 내가 이제 수십 명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생활비 지원이 안 되는 미자립 교회에서 자립교회의 담임자가 됐다. 첫 사례비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내가 이렇게 많은 사례를 받아도 되는지 스스로 놀랐다. 이전 교회에서는 아무 사례도 없던 내가 갑자기 사례비를 받으니 큰 부자가 된 것 같았다.

솔직히 내가 장로라면 나 같은 사람은 절대 초빙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면에서 뒤떨어지고 자격 미달인 사람을 누가 좋아하겠는가? 너무 궁금해서 장로님께 여쭤보았다. “왜 저를 담임자로 받아주셨습니까?” 

장로님의 대답은 이랬다. “우리에게는 훌륭한 목사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처지를 이해하시고 우리처럼 지내실 수 있는 분이면 만족합니다.” 시골 교회의 형편을 이해하고 시골에 적응할 수 있는 목회자이길 바라신 것이다. 아는 것 없고 매사에 부족해 부끄럼이 많고 쉽게 얼굴 빨개지는 나를 겸손한 사람으로 봐주신 것이었다.

며칠 전에 어르신 권사님이 교회에 오셨다가 교회 근처에 있는 초등학교에 일하러 가신다고 나가셨다. 노인 일자리인데 하루 세 시간씩 한 달에 10일 일하신다. 그때가 점심시간이 다 된 시간이었다. 집이 머니까 점심도 안 드시고 그냥 일하러 가시는 것 같았다.

얼른 권사님을 교회로 다시 불렀다.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급히 교회 공유냉장고에 있는 컵라면에 정수기에서 뜨거운 물을 붓고 드시도록 했다. 냉장고에서 과일과 빵과 사탕도 몇 개 드렸다. 권사님이 그러신다. “목사님이 컵라면에 따뜻한 물을 붓고 드시라고 챙겨주실 때 내 눈에서 눈물이 났습니다. 이 늙은이를 생각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컵라면 하나에 그렇게 감사하시니 오히려 내가 몸 둘 바를 몰랐다.

이제 성탄절이 다가온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돼 찾아오신 날이다. 우리는 이 사건을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부른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이다. 성육신의 정신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처럼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마구간에서 태어나셨다고 한다. 그분은 인간의 모든 생로병사를 그대로 겪으면서 인간으로 사셨다. 인류는 그분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초자연적인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이 아니다. 그분은 사랑의 기적을 보여주셨을 뿐이다. 그분 때문에 인류는 하나님이 사랑이신 것을 알게 됐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죄인들을 살리기 위해 그분이 죄인의 자리에 서신 것이다. 죄인들을 심판의 죽음에서 밀어내시고 그분이 대신 심판을 받으신 것이다. 사실 죄인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인류를 대신해서 죽으셨음을 믿는다. 그러니까 곧 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분이 죽으신 것이다.

이걸 정말로 믿는 사람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걸 믿으면서도 바뀌지 않는다면 그건 참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닮으려고 노력해야 정상이다. 안타까운 것은 예수님을 진짜 믿는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너무 적다는 사실이다.

이 사랑 이야기가 우리를 구원해줄 것이다. 세계는 아직도 독재와 차별과 전쟁 준비로 갈등하고 있다. 어디 세계뿐인가?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 직장과 마을은 어떤가?

누가, 어떻게 평화를 만들고 사랑을 만들 것인가? 갈등과 전쟁이 비정상이고, 사랑과 평화가 정상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낮은 자리로 내려와서 함께 손을 마주 잡아보지 않겠는가? 나만 옳다는 교만을 내려놓자. 나만 생각하는 이기심을 내려놓자.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자. 역지사지하자.

가장 낮은 자리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에 축하와 경배를 드린다.

송경섭 <결성감리교회 목사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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