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팔의 마라토너, 아름다운 질주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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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팔의 마라토너, 아름다운 질주는 계속된다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2.06.14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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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기획] 지체장애인 마라톤 선수 엄찬섭 씨

■ 창간호 사람들의 그후 3년 이야기

△ 본지 2009년 6월 10일자 창간호 기사


“홍성 출신 지체장애인이 세계 휠체어 마라톤대회에서 각 국의 선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3위에 올랐다”

지난 2009년 본지 6월 10일자 창간호에 게재된 엄찬섭(고암리. 50) 씨에 관한 기사의 전문이다.
엄찬섭 씨는 두 팔로 달리는 마라토너다. 3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마라톤과의 고독한 사투를 계속 하고 있었다.



엄 씨는 “올해 대회에서는 반드시 월계관을 쓰고 싶었는데 동메달밖에 따지 못했다”며 성적이 떨어져 걱정이라고 아쉬운 마음을 먼저 드러냈다.

태어나면서 선천성 하반신 부분 외성마비(지체장애 2급)를 앓아 하반신을 제대로 쓸 수 없었던 엄 씨였지만 고향인 서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어울리려고 노력했다고 한다. 구김살 없는 성격과 스포츠 덕분에 장애를 잊고 살았기에 가능한 선택이었다.

엄 씨는 지난 전국장애인체전에 홍성군 여자 선수 박현분 씨를 도와 코치 겸 동료 선수로 함께 출전해 박현분 씨가 금메달을 따는 성과를 올렸다.

“박현분 씨보다 조금 먼저 운동을 시작했다고 약간의 도움을 주었을 뿐인데 박 선수가 좋은 성과를 이뤄 그 동안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이뤄준 것 같아 덩달아 너무 기뻤다”고 밝혔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홍성중학교에 재학 중인 엄 씨의 아들은 유망한 육상 선수다. 세단뛰기와 허들이 주 종목인데 충남지역에서는 1위로 손꼽힐 정도로 우수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 전국대회 상위권에 입상하지는 못했다.

“어려서부터 아빠가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동기부여가 된 것 같다. 얼마 전 부상을 당하고 성적이 부진해진 이후 속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것 같아 안쓰럽다. 운동을 한다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라 얼마나 힘든 것인 줄 알기에 곁에서 그저 지켜보고 응원해 주는 길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얼마 전 연습 중이던 사이클 선수들의 어이없는 사망 소식을 접하고 엄 씨도 남의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마라톤은 로드 경기이기 때문에 혼자 연습에 임할 때면 사고 위험에 노출된 채로 무방비 상태다. 또한 메달을 따도 훈련 여건이나 삶의 질, 무엇하나 달라진 게 없다. 비장애인처럼 체계적인 훈련이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사람들의 무관심에 조금 섭섭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털어 놓는다.

그래도 왜 계속 마라톤을 하느냐는 질문에 “잠실 주경기장처럼 수많은 관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레드카펫을 밟고 전광판에 얼굴이 비춰지면서 메달을 목에 거는 순간이 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고생이 사라지고 나 자신이 너무 자랑스럽다. 그리고 가슴 속에서 벅찬 감동이 솟아나며 다음 대회엔 꼭 우승을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지게 된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엄 씨는 청년부 우승을 목표로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쳤으나 이제 나이 제한에 걸려 내년부터는 장년부로 출전을 해야 한다.

“어차피 시작한 훈련이니까 잘 극복하고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란다. 많은 이들은 장비도, 훈련 여건도 열악한 환경에서 이 정도 성적을 내는 것도 다행이라고 말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은 많다”며 우승의 그날까지 마라톤을 향한 그의 아름다운 도전과 질주는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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