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당(安懷堂)에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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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당(安懷堂)에서 〈1〉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2.02.19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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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홍성에 가면 옛 홍주읍성(洪州邑城)의 동헌 터가 있다. 세월의 풍파를 맞으며 묵묵히 견뎌오다 지난 십수 전부터 정비를 받아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이곳에 유학의 정치 이념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명소가 있어 여기 소개해 그 의미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논어》 <공야장>편 제25장에 이런 말이 있다. “안연(顔淵)과 계로(季路)[子路]가 공자를 모셨다. 공자가 말했다. ‘어찌 각기 너희들의 뜻을 말하지 않느냐?’ 그러자 자로가 말했다. ‘수레와 말과 가벼운 갖옷을 친구와 함께 쓰다가 해지더라도 유감이 없고자 합니다.’ 안연이 말했다. ‘제가 잘한 것을 자랑함이 없고 공로를 과시함이 없고자 합니다.’ 그러자 자로가 말했다. ‘선생님의 뜻을 듣고자 합니다.’ 공자가 말했다. ‘늙은이는 편안하게 해 주고, 친구에게는 믿음을 주고, 나이 어린 이는 감싸주고자 한다.’”(顔淵·季路侍. 子曰 “盍各言爾志?” 子路曰 “願車馬·衣輕裘, 與朋友共, 敝之而無憾.” 顔淵曰 “願無伐善, 無施勞.” 子路曰 “願聞子之志.” 子曰 “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

언젠가 안연과 자로는 공자와 한가한 때를 보낸 적이 있다. 이 이야기는 그때 있었던 일을 소재로 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일은 실제 일어난 사건은 아니다. 세간에 떠돌던 이야기를 취해 논어를 편집할 때 끼워넣은 것이다.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계로(季路)’라는 말에 그 단서가 있다. 자로(子路)는 성은 중(仲)이고, 이름[名]은 유(由)이며, ‘자로(子路)’는 그의 자(字)이다. 그는 노나라 변(卞) 땅 사람으로 일찍이 낭인이 돼 천하를 떠돌았지만, 공자를 만난 뒤 공자의 인품에 감화돼 스스로 제자가 된 사람이다. ‘계로(季路)’는 공자의 자제 가운데 용기로 이름 높았던 자로의 별명이다. [伯仲叔季를 생각하면 자로는 중씨(仲氏) 집안의 넷째(季路)였던 것 같다.

논어는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두 세대가 지난 공자의 재전제자(2대 제자) 때부터 서서히 편집되기 시작해, 그후 약 600여년 동안 갈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 삼국 시대의 하안(何晏) 대에 이르러 현행본으로 정초된 책이다. 당시 논어를 편집한 공문 제자[재전제자]들은 공자의 제자[직제자]들의 이름을 기록할 때, 자신의 스승이 사우(師友)를 대하던 예에 따라, 그들의 이름을 ‘자(字)’로 칭했다. ‘자’는 동료들이 서로를 칭할 때 사용하던 호칭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전통사회의 호칭수법이다.

옛날 선비들에게는 여러 가지 호칭이 있었다. 하나는 이름인 ‘명(名)’, 다른 하나는 ‘자(字)’, 다른 하나는 ‘시호(諡號)’이다. ‘명’은 부모·임금·스승이 당사자를 부를 때 사용했고, ‘자’는 관례(冠禮)를 치른 뒤 받았는데, 주로 동료들이 서로를 칭할 때 사용했다. 그리고 ‘시호’는 죽은 뒤 임금이 그 공덕을 칭송해 추증(追贈)해 내린 이름이다.

그런데 위 문장에서는 자로를 ‘계로(季路)’ 곧 별명(別名)으로 칭하고 있다. 공문에서 사용하던 호칭 수법이 아니다. 이 문장은 공문 밖의 세간에서 전해지던 이야기에서 소재를 취해 만든 것이다.

“논어(論語)”의 ‘논(論)’은 토론을 거친 뒤 편찬했다는 뜻이고[論纂] ‘어(語)’는 이야기란 뜻이다. 《논어》는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전해오던 공자 및 사우들에 관한 이야기를 모아 편집한 책이다. 공자께서 돌아가신 뒤 제자들은 각지로 흩어졌다. 그래서 공자의 말씀에 이견이 생겼다. 사라져 없어진 것도 있었다. 이에 스승의 가르침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공문 내외에서 전해오던 이야기를 모아 편집하게 됐다. 다만 아무 것이나 모아 두서없이 편집한 것은 아니고, 격언이나 격식으로 삼을 만한 것들을 취해 내용과 형식을 조정해 편집했다. 그래서 ‘논어’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위에 인용한 <공야장>편의 문장에는 옛사람들의 의식과 정신이 담겨 있다. 고대의 왕조들은 유교를 국시(國是)로 택했다. 그래서 공자의 말씀을 기록한 《논어》는 누구나 애독하던 고전이 됐다. 옛날 홍주목사가 홍주 고을을 다스릴 때 이 문장에서 ‘안회(安懷)’라는 말을 취해, 거기에 자신의 생각을 담은 듯하다.

이제 이 문장을 오늘날의 취지에 맞게 해석해 보겠다.

어느 날 공자는 안연·자로와 함께 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안연은 공문의 최고 고족(高足)이고, 자로는 공자에게는 벗이요 보디가드요 조언자요 반려자이니, 이들 세 사람이 시간을 내어 만났다 해 이상하게 여길 필요는 없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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