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회당(安懷堂)에서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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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회당(安懷堂)에서 〈3〉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22.03.0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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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지긋한 어른들은 아들과 딸 그리고 손자와 손녀, 일가친척들 그리고 자신의 삶이 걱정 없이 잘 되기를 바라고, 한창 일을 하는 젊은 사람들은 상대방(국가, 정부를 포함해)이 약속[信]을 잘 지켜 일이 잘 이뤄지기를 기대하고, 어린아이들은 엄마 아빠가 구존(俱存)하고 또 자신의 꿈이 실현됐으면 하는 것이 희망이요 바램일 것이다. 

서로 다른 계층에 있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지닌, 서로 다른 꿈들이 모두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말하자면 가치가 고르게 배분되도록 조정하는 것, 공자는 그것을 ‘정치’라 생각하고, 그것이 이뤄진 세상을 ‘사람다운 세상’, 그것을 이루는 도덕을 ‘사람다움’이라고 생각했다. 공자의 언어를 빌어 표현하면 ‘인(仁)’이 그에 해당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고, 그런 생각을 실현하려 하며, 그런 생각을 도덕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적(敵)이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인자무적(仁者無敵)”이라 한 것이다.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老者安之, 朋友信之, 少者懷之]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정치가의 덕목은 가치를 배분하는 것이다. 모든 이의 꿈이 이뤄지도록 해 주는 것이다. ‘안회(安懷)’라는 말은 “노자안지”의 ‘안’, “소자회지”의 ‘회’를 따서 만든 것이다. 가히 목민(牧民)하는 자의 견결(堅決)한 의지와 투철한 사명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역대 홍주 고을의 수령들은 이 뜻을 가슴에 새기며 정사를 폈다. 그 뜻을 실현하는 데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자임했다. 그 뜻을 가슴에 새겨 행하면 마음에 거리낌이 없어, 언제나 마음이 편하고 행동도 반듯하게 된다. 그런데 추세(趨勢)에 눈이 멀어 이를 행하지 못하니 불안하고 초초해서 거짓과 위선으로 가득 찬 허언과 성명만을 구할 뿐이다.

이 ‘안회당(安懷堂)’ 뒤에는 ‘여하정(如何亭)’이란 이름의 고즈넉한 정자가 있다. 과거 홍주목사가 휴식을 취하던 곳이라 한다. 안회당에서 정사를 본 뒤 여하정 뜰을 거닐 수만 있다면 목민관으로서의 본분은 이미 행한 것이나 진배없다.

여하(如何)! 누가 나에게 묻기를, “그대는 왜 임금께서 하사하신 경사(京師) 고관(高官)을 마다하고 홍주(洪州) 같은 벽지(僻地)에서 수령으로 있으려 하는가”라 하기에, 대꾸하지 않고 웃어넘겼더니, 마음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더라. “좌우 사방의 산세가 이리도 좋거늘 어찌 이곳에 선비[東南美玉]가 없다 하리오? 그들과 함께 하는 것도 큰 즐거움이거늘...” [余方有公事, 作小樓二間. 懷伊水中央, 樹環焉泉懸. 開方塘半畝, 九日湖之湄. 一人斗以南, 捨北官何求. 環滁也皆山, 於此其無隹, 貧主東南美, 其必有所樂.]

여하정의 ‘여하(如何)’라는 말에는 이런 뜻이 담겨 있다. ‘안회(安懷)’의 정사를 펴니 고즈넉하고 무사(無事)한 것이 꼭 이백(李白)이 말하는 ‘별천지(別天地)’에 있는 것 같더라. 안회(安懷)가 구현된 홍주 고을을 인간 세상 밖에 있다는 별천지에 비유한 것이다.[別有天地非人間]

촌부향사(村夫鄕士)들은 ‘안회(安懷)’와 ‘여하(如何)’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지만, 구안지사(具眼之士)에게는 이백이 살던 벽산(碧山)만이 떠오를 뿐이다. 홍주가 왜 홍주인지, 왜 글 읽는 선비들이 출사한 뒤 이곳의 고신(告身)을 받으려 했는지, 어떤 정사를 펼쳐야 태평 세상에 되는지, 두 명소는 말없이 일러주고 있다. 그래서 그 정신을 지키고자 구한말 일제강점기에 그토록 많은 선비 처사들이 의병이 되고 독립투사가 돼 살신성인(殺身成仁) 했으리라. 그 숭고하고 거룩한 곳에 석비(石碑)가 하나 놓여 있다. ‘천주교순교…’. 홍주 고을 수령의 정사를 힐난이라도 하듯. 자신들에게는 왜 안회(安懷)의 덕을 펴지 않았느냐고 질타라도 하는 것일까? 그래서 천고낙지(天鼓落地)라 말하기 어렵다는 것일까?

問如何事栖碧山  오늘도 안회당과 여하정 뜰에는 비가 내린다.
 笑而不答心自閑  누가 나에게 무슨 일로 碧山에 사느냐 묻기에
桃花流水窅然去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으니 마음이 저절로 편안하더라
別有天地非人間  복숭아꽃 떨어져 흘러가는 저 물 아득히 먼 곳에 인간 세상 아닌 별천 지가 있으리라.
(李太白, 山中問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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