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쪽같이 사라진 꿀벌들… 생태계 붕괴와 식량위기의 서막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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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진 꿀벌들… 생태계 붕괴와 식량위기의 서막일까?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3.27 08: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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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꿀벌 집단실종사건
양봉농가들은 서늘한 가을이 오고 꽃이 질 무렵 월동 준비를 시작한다. 꿀벌은 열심히 만든 꿀을 농부에게 제공하고, 농부는 그 대가로 설탕물을 준다. 꿀벌은 이 설탕물을 먹고 겨울을 보낸다. 자연이 긴 잠에서 깨어나 움직이기 시작하는 봄이 오면 꿀벌도 본격적인 활동을 재개한다. 원래는 그랬다. 그런데 올해는 어찌된 일인지 겨울을 보내고 다시 활동을 시작해야하는 꿀벌들이 온데 간데 사라지고 없었다.<사진>

이번 달 초 한국양봉협회가 전국의 회원 농가를 대상으로 파악한 꿀벌 집단 실종 피해현황에 따르면 벌통 약 227만 개 가운데 39만 여 개에서 꿀벌이 사라진 것으로 집계됐다. 일반적으로 월동기에 들어갈 무렵 통 당 1만 5000마리 정도의 꿀벌이 안에 서식하는 것을 고려할 때 최근 국내에서 집단적으로 실종된 꿀벌 개체 수는 약 59억 마리에 달하는 셈이다.

이에 전국의 지자체, 농촌진흥청, 농림축산검역본부, 한국양봉협회 등은 지난 1월부터 두 달가량 전국적으로 민관합동조사를 실시했으며 비교적 이른 시기에 봄을 맞이하는 남쪽 지방(제주

·경남·전남 등)의 피해규모가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파악했다. 사실 꿀벌 실종의 징후는 이미 몇 년 전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지난 2006년 꿀벌이 집단 실종되는 ‘군집붕괴현상’이 처음으로 보고됐다. 미국 환경보호국은 응애류(해충), 농약, 이동식 양봉으로 인한 꿀벌 스트레스 등을 군집붕괴현상의 복합적 이유로 제시했다. 또한 태양의 흑점 활동이 자기장에 혼란을 일으켜 꿀벌의 방향 감각을 상실시킨다는 분석도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는 2010년대에 들어서 이미 꿀벌의 30~40%정도가 사라진 것으로 전해진다.
 

■ 이 시각 홍성의 농가들은 
홍성군이 실시한 양봉농가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관내에는 약 137개의 양봉농가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한 한국양봉협회 홍성군지부가 파악한 월동 꿀벌 피해 농가 수는 30~40곳 정도다. 

홍성군 축산과 친환경축산팀 관계자는 “양봉사업이 완료된 농가를 방문하며 현황을 확인해본 결과 해충 등의 질병보다는 평년보다 이른 시기에 따뜻해진 기온 탓에 계절을 착각하고 나간 벌들이 도로 날씨가 추워지자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것 같다고 한다”면서 “피해를 입은 각 양봉농가들은 10통에서 많게는 40통 정도 피해를 입은 것으로 들었다”고 전했다.  
 
이번 문제는 양봉농가뿐만 아니라 작물 재배 시 벌의 수정활동을 필요로 하는 농가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벌의 수정활동이 필요한 대표적인 작물로는 딸기, 사과, 수박 등이 있다. 

이상구 한국양봉협회 홍성군지부장은  “딸기농가가 특히 많은 논산에서는 수정벌이 많이 부족한 상태라고 들었다”면서 “특히 양봉농가끼리 거래하는 꿀 생산용 벌통은 통 당 시세가 5~10만 원 정도 오른 상황”이라고 밝혔다.

홍철의 홍성군딸기연합회장은 “다음 달이면 딸기 재배 하우스에 들어갔던 벌통도 뺄 예정이고 지금은 보통 딸기농사를 마무리 짓는 시기라서 이번 사태가 관내 딸기농가에는 아직까지 별다른 영향을 주고 있진 않다”고 전했다. 
 

■ 꿀벌이 사라진 이유는?
농림축산식품부의 기타가축통계에 의하면 국내 꿀벌 개체 수는 지난 2009년 약 38만 마리에서 2019년 13만 마리로 대폭 감소했다. 한국환경공단은 지난해 8월 환경상식 관련 홍보물을 통해 “꿀벌의 개체 수 감소는 천적인 장수말벌이나 외래종이 증가한 영향도 있지만, 더 큰 원인은 이상기후 현상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환경공단에 따르면 꿀벌은 온도에 민감한 ‘변온동물’로 전해진다. 인간의 활동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고 지구온난화 현상이 가속되면서 변온동물인 꿀벌이 자신이 가진 에너지 대부분을 온도를 낮추는데 소모했고, 반면 채집과 산란 활동은 줄어들어 개체 수가 지속적으로 감소했다는 분석이다.

한편, 이번 사태와 관련해 지난 14일 농촌진흥청은 “최근 양봉농가의 월동 꿀벌 피해 원인은 지난해 발생한 꿀벌응애류와 말벌류에 의한 폐사, 이상기후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며 “대부분의 피해 봉군에서 응애가 관찰됐고 일부 농가의 경우 꿀벌 응애류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여러 약제를 최대 3배 이상 과도하게 사용해 월동 전 꿀벌 발육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소속 박사과정생이 포함된 우리나라와 중국 연구진은 지난해 1월 학술지 ‘Ecology and Evolution’에 발표한 논문 ‘Foraging trip duration of honeybee increases during a poor air quality episode and the increase persists thereafter’에서 미세먼지가 꿀벌의 방향감각을 떨어뜨린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며 꿀벌 감소의 주된 원인을 살충제에서 찾았던 영미권 연구자들과 다르게 심각한 대기오염이 벌 개체 수 감소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 꿀벌의 중요성
인간은 벌꿀을 선사시대부터 채집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스페인에 있는 어느 벌꿀 채집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약 8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또한 기원전 3200년경 고대 이집트 문자에서는 꿀벌 모양이 왕권을 상징했으며, 왕의 무덤인 피라미드에도 꿀단지를 함께 넣은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 역사에서는 고구려 건국 초기인 기원전 37년경에서 기원전 19년 사이에 벌꿀이 처음으로 등장한다.

이처럼 꿀벌과 인간의 관계는 너무 오래된 나머지 이제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돼버렸다. 지난 2019년 미국의 한 미생물기업은 뉴욕에 있는 식당들과 함께 꿀벌이 멸종했다고 가정한 상태에서 아침식사를 만들어 보는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가루받이 없이도 자라는 뿌리채소가 식탁 위에 가득 올라왔고 샐러드에는 꿀벌의 수정활동을 필요로 하는 아보카도나 오이, 완두콩 같은 작물들이 모두 빠지게 됐다. 샐러드 드레싱으로 쓰일 꿀도 당연히 없었다. 또 사료로 쓰이는 작물이 줄어들어 유제품과 소고기가 전부 사라졌다. 육류로는 가격이 폭등한 생선구이 한 토막만 식탁에 올라왔다. 꿀벌 멸종으로 생태계가 붕괴돼 물고기 개체 수 감소로 이어졌다고 가정했기 때문이다.

꿀벌은 인간이 재배하는 작물의 약 30%에 달하는 수분(가루받이)을 책임지고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의 설명에 따르면 꿀벌은 전 세계 식량의 약 90%를 차지하는 100대 주요 작물 중 71종의 수분 작용을 돕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15년 사무엘 마이어 하버드대학교 공중보건대 교수 연구팀은 의학전문 학술지 ‘The Lancet’에 “꿀벌이 사라지면 식량난과 영양실조로 매년 142만 명이 사망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로선 꿀벌이 사라지면 인간이 직접 붓을 들고 수분을 해야 한다. 배꽃 수분작업은 우리나라에서 이미 사람이 하고 있지만 매년 2500명의 자원봉사자가 투입된다는 통계가 있다. 지금과 같은 꿀벌 개체 수 감소가 앞으로도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드론기술과 나노기술로 만들어진 수분작업용 기계벌이 날아다니는 농촌풍경을 보게 될 것이다.  
 

■ 꿀벌을 지키려는 노력
한국환경공단은 꿀벌을 지키기 위해 온실가스 감축 정책지원과 기후변화 대응 역량강화 사업 등을 실시하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지원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소비량이 일정 수준 이상인 사업장을 대상으로 절약목표를 설정하고 관리하는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온실가스 배출 사업장을 대상으로 연 단위 배출권을 할당해 범위 내에서 실질적 온실가스 배출량의 여분 또는 부족분을 거래하도록 허용하는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정확한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하는 등 국가 고유 배출계수를 개발하고 품질보증과 품질관리를 수행하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구축 등으로 분류된다.

또한 한국환경공단은 기후변화 대응 역량강화 사업의 일환으로 신 기후 체제의 온실가스 감축 부담에 대비해 산업계의 온실가스 배출량 관리와 감축 전략을 수립하면서 이를 이행할 전문가를 양성하고, 그린캠퍼스 선정·운영지원으로 온실가스 대량 발생원 중 하나인 대학의 온실가스 감축을 돕고 있다. 이와 더불어 기후변화 홍보 누리집을 운영해 기후변화와 관련된 국내외 정책 동향과 최신정보를 제공하는 등 기후변화 인식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환경공단은 꿀벌 개체 수 감소를 막고 기후변화를 멈추기 위해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3가지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는 무분별한 냉방기기 사용 줄이기, 둘째는 일회용품 사용자제하기, 셋째는 가까운 거리는 대중교통 이용하기다. 

어느 날 갑자기 불세출의 천재가 나타나 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하기 전까지는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을 버리고 각자가 이런 간단한 생활 수칙 몇 가지를 지키며 생활하는 게 인간이라는 생물종이 지구에서 연출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군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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