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檢搜完剝)
상태바
검수완박(檢搜完剝)
  • 이상권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4.14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국가권력은 국민에 대해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힘이다. 그중에서도 한국의 검찰은 가장 강력한 국가권력기관의 하나이며, 국가원수도 검찰의 칼날을 피하기는 어렵다.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등 전직 대통령들이 하나같이 검찰 신세를 진 분들이니, 퇴임을 앞둔 대통령도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윤석열이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아직은 여당인 민주당이 막강한 절대다수 국회 의석의 힘으로 ‘검수완박’하자고 나섰다. 검찰 수사권을 완전히 박탈해서 기소만 할 수 있도록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내세우는 명분은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해 국민의 권익을 해한다는 것이고, 외국의 사례도 검사에게 수사권을 부여하지 않거나 극히 제한하는 것이 통례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러한지, 세계 주요 국가들의 검찰제도를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한다.
영국이라는 나라는 기본적으로 형사사건과 민사사건이 따로따로라는 개념이 없었던 나라이다. 그래서 민사사건 소송을 법원에 제기하듯이, 형사사건도 피해자가 가해자인 상대방을 법원에 기소하는 사인소추주의가 원칙이었다.

일반인은 이처럼 기소장을 써서 법원에 접수시키는 것이 무척 어려우므로, 변호사를 선임해서 법원에 대리로 기소장을 접수시키다가, 피해자의 권익보호 차원에서 근대에 들어와서 경찰이 피해자를 위하여 ‘기소장’이 아닌 ‘고발장’을 피해자 대신 법원에 접수시키는 제도가 도입됐다. 이것을 가리켜 경찰이 기소까지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넌센스다.

이런 기소장이나 고발장 등 서류의 제목이 어떻든 간에 이 서류를 받아주는 기관은 바로 ‘치안법원’이다. 치안법원 판사가 판결을 하지만, 그 판결은 기소여부에 대한 판결이며, 이 판결을 하기 위하여 치안법원 판사는 경찰을 직접 지휘해 수사를 한다. 수사결과 기소판결을 하게 되면, 사건을 형사법원으로 보내서 유·무죄 여부와 형량 등의 판결을 하게 하는 것이다.

치안법원 판사는 우리나라 검사의 역할을 담당하며,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고 있고, 경찰에 대한 직접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는 매우 강력한 기관이다. 

1985년에 영국 역사상 처음으로 범죄소추법(the Prosecution of Offences Act)이 제정돼 검사제도가 생겨났지만, 그 이전에 영국에는 검사라는 제도 자체가 없었으며, 검사제도가 생긴 후에도 검사는 치안판사가 해오던 기소는 할 수 없고, 경찰의 이름으로 제기된 기소(위에서 고발로 보던 행위) 절차를 인수해서 행하는 것이 그 역할의 대부분일 뿐이다.

미국의 검사는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없지만 수사 요구권이 있으며, 직접 수사를 할 수도 있고 기소권을 가지고 있다. 한편, 경찰도 각종 영장을 법원에 직접 청구할 수 있고, 검찰도 일부 중요 범죄에 대한 직접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검찰과 경찰이 수평적 관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의 검사는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고, 기소를 할 수 있으며, 기소후에 공소유지를 담당한다. 얼핏 보면 우리와 비슷하지만, 특정 중대범죄에 관해선 검사에게 수사지휘권이 없고, 이에 대하여는 예심판사만이 경찰을 직접 지휘해 수사를 하고 기소할 수 있다.  즉, 특정 중대범죄의 수사와 기소는 예심판사(수사판사)에게 맡겨져 있으며, 이 제도는 프랑스에서 유래해 스페인,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대륙법계 유럽 국가들과 이들의 식민 지배를 경험한 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유지되고 있다.

2009년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은 지나치게 강력한 예심판사의 수사(지휘)권을 없애고 검사에게 직접 수사권을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을만큼 예심판사는 강력한 기소관(起訴官)이다. 
독일은 한국처럼 검사가 기소권을 독점하고 경찰의 수사를 지휘하거나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다. 다만 검찰 조직에 검사의 수사를 돕는 수사관이 없어서 직접 수사권은 법률상으로만 존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며, 수사지휘권으로 수사를 대신한다.

직접수사권과 기소권이 치안법원 판사에게 있던, 예심판사에게 있던, 검사에게 있건, 그 기관의 명칭여하를 불문하고 직접 수사권을 가지고 있거나 수사지휘권을 가지고 있거나, 기소권을 가지고 있는 국가권력은 반드시 존재한다.

현재도 우리나라의 법률상 검사의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은 국민들의 인권과 직결된 신병구속 여부와 수사 종결권에 대해서만 행사되고 있고, 직접 수사권도 특정 범죄에 한하여 제한되고 있다. 법률상 검사가 경찰수사의 전반에 대해서 시시콜콜하게 지휘할 권한은 없다. 

경찰에만 독점적인 직접수사권을 주면 사회정의가 실현되고 부정부패가 척결된다는 보장은 어디에 있는가? 검찰의 수사지휘권라는 견제장치를 배제하고, 수사를 완전히 경찰에게만 독점적으로 부여해도 괜찮을 만큼 경찰이 다른 기관에 비해 특히 공정하다는 보장은 누가 할 수 있는가?

권력기관의 내부자와 그 주변이 정의롭지 못하다면 권력기관을 아무리 바꿔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검찰의 입을 틀어막으면 자신들의 어두운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경찰에도 어느 한 조직은 정의가 살아있을 것이니, 때가 되면 경찰의 입이 말하게 될 것을….


이상권 <변호사·전 국회의원·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