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돈이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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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은 돈이 되는 걸까?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7.0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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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학교에서 인문학과들이 사라져 가고, 고등학교에서도 이과보다 문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이 현격히 줄어들고 있다. 인문학을 전공해서는 밥벌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소위 ‘문송합니다’라는 표현도 문과 출신의 학생들이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함의하고 있는 말일 것이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 기술이 하루가 멀다고 발전, 확장하는 사회에서 인문학이 생산성을 높일 가능성은 적어 보이기에 인문학은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여겨지게 마련일 것이다. 영어영문학과에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을 가르친다고 했더니 셰익스피어가 언제 때 사람인데 아직도 가르치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었다. 당장 필요한 영어 문법이나 작문, 회화를 가르쳐야지 4대 비극을 가르쳐서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질책이 질문 속에 숨어있다. 많은 사람들은 인문학을 산업생산에 지친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한 힐링 수단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인문학이 중심이 됐던 근대사회에서 생산성이 강조되는 산업사회, 지식 정보사회를 거쳐 4차 산업혁명사회로 이행되는 시기에, 다시 인문학이 강조될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리버럴 아트(liberal arts)’는 인문학만이 아니라 순수과학, 사회과학, 철학 등을 포함한다. 미국의 경우 많은 대학에서 리버럴 아트를 중요시하며 리버럴 아트만을 운영하는 유명대학들이 많다.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딸이 며칠 전 미국 콜로라도 칼리지에 입학했다고 해 리버럴 아트 칼리지가 새롭게 인식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 대학마다 독특하게 커리큘럼을 운영하기도 하지만, 리버럴 아트의 근본은 학생이 세상사를 올바로 직시하고, 비판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능력을 키워주는데 방점을 두고 있다. 미국 ‘세인트 존스 칼리지’에서는 고전 100권을 선정해 4년 내내 읽고 토론해, 높은 수준의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으로 4년 동안의 커리큘럼을 이수하게 한다. 스포츠와 컴퓨터 등의 과목들은 비교과 과목으로 설정해 방과 후에 또는 방학 중에 집중 운영하는데, 이런 과정을 수료한 학생들의 취업률은 일반대학들을 앞서고 있다. 취업을 하지 않더라도 좋은 인성을 습득한 학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해 더 깊은 전공의 세계로 나가기도 한다.

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개발도상국가나 저개발국가들은 생산성에 도움이 되는 과목만을 커리큘럼에 남겨 놓거나 구색 맞추기로 인문학을 교양으로 가르친다. 생산성에 직접 영향을 주지 못하는 과목들을 당장 배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자 삶의 패턴에 급격한 변화가 닥쳐오고 있다. SNS의 발전과 인공지능의 발달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탐색을 요구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피에르 브르디외(Pierre Bourdier)는 인간이 돈을 벌어 성공하기 위해서는 3가지 자본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현금과 주식 같은 경제자본, 좋은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사회자본, 유명대학의 학위와 같은 문화자본이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이라고 역설했다. 여기에 영국 정치경제대학 교수였던 캐서린 하킴(Catherine Hakim) 교수는 매력자본(erotic capital)이라는 또 하나의 자본을 덧붙였다. 이것은 그 사람의 성적매력을 근본적으로 의미하지만 그것 외에도 유머감각,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주는 배려정신, 세련미, 수준 높은 언어감각 등도 포함한다. 한마디로 젠틀맨십(gentlemanship·신사도)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4가지 자본이 결합될 때 부는 확대될 것이고, 이것이 결핍될 때 가난이 반복되기 쉽다고 강조한다. 

이러한 매력자본을 증대시키기 위한 개인의 노력에 부합될 수 있는 과목이 인문학이다. 몇 권의 책으로 인간의 심성이 길러질 수는 없다.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 있는 책들은 인류의 긴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양서들이다. 독서를 통해 고전의 고급한 출판언어를 받아들이고, 보편적이고 이성적인 사유체계를 받아들임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의식에 편입될 수 있다. 리버럴 아트 전반에 걸친 다양한 교양의 습득은 보편적 인류애를 갖고 일상사에 대한 문제해결 능력이 강한 인간으로 길러낼 수 있다. 

잘생긴 외모에 독특한 매력자본이 내장된 스타들은 엄청난 부를 거머쥘 수 있다. 이미지가 수입을 창출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ICT기술과 SNS의 발전은 매력자본의 인지와 확산을 더욱 빠르고 넓게 해주고 있다. 미래학의 대부인 짐 데이토(Jim Dator)교수는 정보화 사회 다음에는 개인의 이미지가 주력엔진이 되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라는 해일이 밀려올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앞으로의 시장은 기능이 아니라 매력에 이끌리는 사회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인문학적인 매력자본이 돈이 되는 시대가 몰려오고 있다.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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