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판 고려장’으로 전락한 장기요양보험의 ‘그늘’
지난달 3일 새벽, 홍성읍내 한 요양보호시설에서 할머니가 투신한 사건이 발생했다. 담당 수사관에 따르면 외부인의 흔적이 없고 시신에서 가혹 행위 등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직까지 자살의 원인에 대해서는 뚜렷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으며 현재 수사 중이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유족 측은 요양보호시설의 관리 소홀 문제를 지적하고 나섰다. 보호자들은 환자가 입원해 있던 5층 창문에 방범창 등의 안전시설물이 설치되지 않았다는 점과 주변에 요양보호사가 상주하고 있었는지의 여부를 문제 삼고 병원 측에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시설 측은 노인복지법상 이러한 시설에서 방범창을 설치해야 한다는 귀속요건이 없으며, 소방법상으로도 방범창 설치가 금지돼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환자 4명 당 1명 꼴로 요양보호사가 배정돼 있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시설 측은 사망한 환자가 심한 실어증으로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며, 평소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드러내 집으로 돌아가길 원했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시설 담당자는 “만약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책임을 질 것이다. 다만 돌아가신 할머니는 비록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평소에도 스킨십을 무척 좋아하고 마음이 따뜻한 분이셨다. 돌아가신 당일에도 보호자들이 면회를 왔길래 할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가서 하루만이라도 주무시게 할 것을 요청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았는지 점심만 드시고 바로 병원으로 귀가하셨다”고 답변했다.
관리·감독을 책임지고 있는 홍성군 담당자는 평소 정기점검을 통해 사고가 일어난 시설을 관리해왔지만 문제가 될 만한 특이상황은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홍성군 내에는 노인장기요양보험과 관련해 노인요양시설 10곳과 재가시설 31곳이 운영 중이지만 이러한 시설들을 단 한 명의 공무원이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사실 이러한 시설들은 현지 조사가 제일 중요한데 담당자 한 사람이 40여 곳이 넘는 곳을 일일이 방문해서 현장 실사한다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군 담당자는 “건강보험관리공단과 함께 1년에 두어 차례 현지조사를 나가지만 시설 안전이라든가 청결, 환자들을 위한 환경을 체크하기보다는 보험료 부당청구나 목적사업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회계와 관련된 업무가 주를 이룬다”고 밝혔다.
따라서 가장 큰 문제는 자격을 갖추지 못한 부실한 요양기관이 우후죽순 늘고 있어도, 요양급여를 지급하는 주체는 건강보험공단, 요양기관과 요양기관 이용자인 노인들을 관리하는 주체는 지방자치단체인 이중구조이다 보니 제대로 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효과적인 운영과 재정비 필요
이번 사건을 통해 노인장기요양보험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요양보호시설의 안전문제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다수 노인요양병원의 경우 각층 출입문 및 피난계단출입문은 치매노인의 무단이탈방지를 위해 대부분 열쇠로 잠금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화재발생시 피난장애를 불러와 막대한 인명피해와 재산 손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소방법 상으로는 설치를 권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처럼 소방법에 저촉되지 않기 위해서 방범창이 설치되지 않은 시설에서는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는 반론이 제기되는 부분이다. 따라서 정부 차원에서 이에 대해 명확한 기준과 규제를 제시하고 대대적인 정비가 필요하다.
또한 일부 시설의 경우, 열악한 환경과 비도덕적인 운영으로 또 하나의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출혈경쟁 속에 매출에만 혈안이 돼 있는 일부 요양시설과 보호자들은 환자를 부모가 아닌 ‘돈’으로 보고 거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현대판 고려장’이 따로 없다고 지적하는 이유다.
비양심적인 시설운영자와 자식들의 무관심 속에 노인들은 외로움과 고통 속에 쓸쓸히 생을 마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시행으로 이제 중풍이나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들을 가정에서 돌볼지 않아도 되는 환경이 마련됐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를 역이용해 부모를 보살피지 않으려는 세태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는 여론이다.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도입된 지 만 4년이 됐다. 그러나 급격한 고령화에 따른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태동한 이 제도가 지닌 선한 취지는 이미 빛이 바랬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제도시행 4년이 넘고 있는 과정에서 서비스 질 평가와 관리를 위한 기반 구축, 제도 시행 과정에서 수많은 잡음을 낳은 요양보호사 인력의 양성과 활용상의 문제점 등을 개선하기 위한 대안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