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 그리는 나의 동굴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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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에 그리는 나의 동굴벽화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1.06 0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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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밝았다. 찬란한 태양이 바다 끝 잿빛 구름위로 영롱한 자태를 뿜어낸다. 엄동설한에, 발을 동동거리며 해가 솟구치기만 기다리던 호미 곶 해돋이 꾼들은 핸드폰을 들이대며 탄성을 지른다. 오늘의 태양이 어제와 다르지 않을 터이지만, 그것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날의 삶이 그리 쉽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희망이 없는 사람들은 내일을 기다리지 않는다. 내일이 어제 보다 분명 더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에 기다림도 있다. 《희망의 원리》의 저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희망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고 행복을 약속해 준다고 말한다. 희망이 클 때 삶을 더욱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희망은 미래에서 무이자로 빌려오는 거래인지 모른다.

희망은 꿈을 낳게 하고 꿈은 미래에 대한 비전과 계획을 내놓게 한다.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행운의 내일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의 과거에는 많은 상흔(傷痕)이 남는다. 고대 사람들도 이것을 깨달았는지 현재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의 ‘카르페 디엠(Carpe diem)’을 남겼다. 그러나 최선을 다해 살아온 결과 심신이 탈진하는 ‘피로사회’가 됐다고 베를린예술대학교 한병철 교수는 진단했지만, 그날이 그날처럼 지냈을 때 남는 현재의 퇴적물은 때로 융기해 현재를 덮친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 아버지 햄릿의 유령이 나타나 자신은 억울하게 죽었으니 나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우유부단한 아들 햄릿에게 부탁한다. 한을 품고 죽은 아버지의 모습이 아들 햄릿에 유령으로 출몰한 것이다. 아들 햄릿이 아버지와의 작별에 공을 들여 아버지 잊기라도 했더라면 편안했을는지 모른다. 불교에서 죽은 이의 넋을 극락으로 보내기 위해 행한다는 천도재(薦度齋)도 산자를 위한 의식(儀式)일 수 있다. 액맥굿도 새해를 맞이해 과거를 잘 떠나보내고, 일 년 동안의 재액(災厄)이 없기를 기원했던 옛 사람들의 송구영신(送舊迎新)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떠나가는 임을 제대로 보내드리지 못하면 김소월의 ‘진달래 꽃’의 작중화자처럼 한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여 하루하루를 살아내기가 쉽지 않은 일이며, 지나간 과거에는 아쉬움, 원망, 체념 등이 묻어난다. 희망으로 맞이했던 새해는 이루지 못한 차액으로, 과거라는 모습으로 남는다. 삶의 패턴은 비슷한 모습으로 반복될 것이다. 계묘년에도 인플레이션과 불경기는 계속될 것이고, 돈 빌려 집을 샀던 사람들은 떨어지는 집값과 오르는 이자에 한숨지을 것이다. 살기 힘드니 출산률은 세계 꼴찌인데 자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기록한다. 극한대립과 퇴행을 거듭하는 정치판은 파렴치한 언어를 쏟아내며, 도덕적 파탄의 비루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세상이 그렇다 해서 좌절하거나 짜증만 내서는 아름다운 퇴적층을 남길 수 없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라’라던 러시아 시인, 푸쉬킨의 시구처럼 내일을 맞이해야 한다. 그래야 불확실한 미래를 견뎌내며 자신의 꿈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변화와 행운을 기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시인 김수영도 혁명을 꿈꾸기 위해서는 진부한 ‘육법전서’를 버려야 한다고 읊었다. 미국시인 롱펠로(Longfellow)는 힘들었던 삶 속에서도 인생을 긍정적으로 찬미했다. 링컨 대통령은 그의 시 낭독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는 미국 전역을 돌면서 탁월한 시 낭송으로 한때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그의 시(詩)세계를 두고 호불호가 갈린다. 그러나 주로 삶의 어둔 면을 들추어 보는 시인보다는 세상의 밝은 면을 노래하는 시인에게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어느 것에 가치를 두느냐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절망 속에서도 유토피아를 모색하는 것이 인간이라고 블로흐는 말한다. 

구석기인들도 더 많은 동물을 잡고 싶은 소망에서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에 여러 종류의 동물을 그렸는지 모른다. 그들이 관심 대상이 아닌 것을 벽화에 남겨 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도 원시인의 눈빛으로 내 ‘소·확·행’을 벽에 그리고 싶다. 새해에는 멋지고 아름다운 글로 독자에게 다가서고 싶다. 아직 더 많은 책을 꼼꼼히 읽고 사유의 근육을 담금질해 탄탄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둘째,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 이웃과 ‘관계(Relationship)’를 더욱 돈독히 하고 싶다. 미국 역사상 인간의 삶에 대한 최장기 연구 프로젝트인 ‘하버드대 성인발달 연구’의 4번째 책임 연구자인 월딩어 교수는 행복은 “부-명예-학벌이 아닌 ‘관계’에 있다”는 연구결과(동아일보 2023년 1월 2일 새해특집)를 인터뷰로 밝히고 있다. 셋째, 가보지 못했던 곳을 낮선 눈빛으로 여행하고 싶다. 나이가 들수록 찾아오는 무감각이 희망과 행복을 빼앗아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년에는 다른 벽화 그릴 수 있기를 꿈꾸어 본다.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초빙교수,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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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희 2023-01-06 20:29:29
올해도 멋진 글 기다리겠습니다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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