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처지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횡포에 온몸으로 대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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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처지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횡포에 온몸으로 대항하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5.18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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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육봉수 유고시집 〈미안하다〉

“함부로 만들어진 법도 법이지만 일껏/만들어 두고도 뒷전으로/뒷전으로만 내어 돌리려는 그 따위의 아리송한”. 앞의 시어는 고故 육봉수 시인이 2002년 도서출판 ‘삶이보이는창’에서 펴낸 시집 <근로기준법>의 표제 시 일부다. 

우리 사회에서 무용지물이 돼 버리고 폐기처분당한 근로기준법의 문제점을 집요하게 파헤친 시인은 안타깝게도 지난 2013년 5월 11일 뇌출혈로 56세의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으며, 2014년 5월 시인의 유고시집 <미안하다>가 ‘푸른사상 시선’ 40번째로 출간됐다. 시인을 추모하는 문단 선후배와 동료 그리고 노동계 인사들이 일 년에 걸쳐 유작을 모으고 자료를 발굴해서 고인의 1주기에 맞춰 출간했다. 

안양대 교수 맹문재 시인은 ‘반(反)근로기준법의 시학’이란 제목의 유고시집 해설에서 “육봉수 시인은 근로기준법조차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처지에서 인간다운 삶의 조건을 실현하기 위해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과 횡포에 온몸으로 대항해 나갔다”고 해석했다. 

또한 “한국의 시문학사에서 반근로기준법의 시인으로 불릴 것이다. 그렇게 불려야 할 것이다.

그가 한국의 시인 중에서는 처음으로 근로기준법을 전면적으로 작품화했기 때문이다”라며 “근로기준법을 단순히 제재로 삼은 것이 아니라 실제의 적용에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노동자의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모순점에 맞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의 작품은 노동시의 영역을 한층 더 확장시키고 심화시키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김선굉 시인은 뒤표지 추천의 글에서, “‘괘않나?/괘않타-//고마운 일이다’(‘안부’) 이 짧은 시의 행간을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이 보인다. 평생을 노동현장에서 치열하게 살다 간 노동자 시인이지만, 그의 가슴 밑바닥에는 늘 따뜻한 서정의 강물이 흘러가고 있었다”고 평했으며, 장옥관 시인은 “거칠어서 더욱 진정성이 담겨진 시. 쓰다 만 시처럼, 하다 만 말처럼 툭툭 분질러 놓은 어조의 행간 속에는 맵찬 결기와 강고한 강단이 스며들어 있다”고 논했다.

시인은 1957년 경북 선상군 옥성면 초곡리에서 태어나 선산고등학교를 다녔다. 1990년 <창작과 비평> 여름호에 ‘파업농성’ 등 다섯 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포항과 구미의 노동현장에서 노조결성과 해고, 복직투쟁을 하면서 노동운동을 이끌었으며, 2002년 시집 <근로기준법>을 출간했다. 한국작가회의 회원, 경북작가회의 이사, 금오문화연구소 회원으로 활동했으며 수요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3년 5월 11일 자신이 태어난 옥성마을 고향집에서 뇌출혈로 영면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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