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레길을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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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레길을 다시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7.13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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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두발로 걷는 ‘걷기’라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상가나 철학자들이 쏟아낸 ‘정의’나 ‘일화’는 역사적으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매일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보며 시계를 맞췄다는 일화가 있는가 하면, ‘신은 죽었다’던 ‘니체’는 하루 8시간씩 산책을 하며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걷기를 예찬한 사람이었다. 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스티브 잡스’, ‘무라카미 하루키’, ‘마크 저커버그’ 등도 모두 걸으면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 ‘걷기 예찬론자’에 속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걷는 것의 가장 큰 즐거움과 이익은 몸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심신을 회복시키는 것에 있다. 단순히 걷기만 해도, 땀을 흘리기만 해도 건강해진다는 사실은 나이들면 누구나 체감하기 마련이다. 이때 비로소 걷는 것의 소중함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주변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게 된다.

맞춤한 길이 눈에 들어오면 이제 나설 채비를 하고 출발점과 경유지, 도착점 등을 고려해 체력에 맞는, 시간에 맞는 저마다의 코스를 선택해 걷기 시작한다.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며 자연과 사계절의 변화를 감상하는 것은 물론, 자신을 조용히 성찰하고 흐트러진 마음과 생각을 정리하면서, 많던 고민이 점차 사라지고 새로운 희망으로 변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의 반복은 체력의 증강을 가져다줘 주변의 산과 더 멀리에 있는 더 높은 산에 목표를 두게 되기도 하며, 나름의 다양한 코스를 개발하기도 하는 등의 활동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여기서 나름의 다양한 코스란 바로 크고 작은 ‘둘레길’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영감을 얻은 ‘제주 올레길’은 우리나라의 ‘둘레길 걷기’ 열풍을 주도하였고 이후 지방자치단체는 물론 국가가 나서서 걷는 길을 직접 조성하거나 장려하고 있으며 아웃도어의 유행과 함께 지금은 낮이나 밤이나 계절을 가리지 않고 걷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지자체 또한 늘어나는 걷는 인구를 위해 새롭고 독창적인 명품 둘레길을 조성, 다양한 안전장치와 편의시설을 갖추고 새로운 관광지로 탈바꿈시켜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는 사례도 많이 생겨나고 있다.

이름부터 거대한 ‘코리아 둘레길’은 우리나라 외곽을 하나로 연결하는 약 4500km의 초장거리 걷기 여행길이다. ‘대한민국을 재발견하여 함께 걷는 길’이라는 비전으로 ‘평화, 만남, 치유, 상생’의 가치를 구현하고자 마련됐다. 동쪽의 해파랑길, 남쪽의 남파랑길, 서쪽의 서해랑길, 북쪽의 DMZ 평화의 길로 구성돼 10개의 광역지자체, 78개의 기초지자체가 참여하고 있는 중이며, 우리 홍성군은 수룡동에서 남당리를 거쳐 궁리항에 이르는 11.2km가 서해랑길 63코스에 속해있다.

명산 주변을 도는 둘레길은 물론 지역의 특색을 살린 다양한 길도 속속 개발되고 있는데, 철원 한탄강 주상절리길, 단양 잔도길, 화성 우음도 에코 트레킹길, 울진 금강소나무길, 섬진강 매화길, 괴산 산막이 옛길, 청풍호 자드락길 등 수많은 길이 화려한 주변의 풍광을 등에 없고 나날이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 이들 둘레길은 단순히 길만 개척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벤트와 볼거리, 체험시설, 연계된 관광지가 잘 조성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우리 홍성의 큰 둘레길은 인근의 예산 당진 서산과 함께 국가 숲길로 지정된 내포문화숲길을 꼽을 수 있다. 홍성 구간은 오서산을 지나 이응노 생가, 용봉산 등을 거쳐 가는 길과 김좌진 장군 생가지에서 청룡산을 지나 결성 동헌으로 가는 길이 조성돼 있다. 또한 금북정맥이 월산과 남산 오서산을 통과하며 마을을 지나고 있고, ‘재너머 사래 긴 밭 가는 숲길’이 남산과 보개산 주변에 마련돼 있다.

이외에도 홍양 저수지 둘레길(빼뽀길), 용봉산 산책길, 천주교 순례길도 있지만 어쩐지 우리지역 주민들의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다. 아마도 차량으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고, 일부러 시간 내서 걸을 만큼의 여유가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둘레길을 개척하려고 애쓰고 있는 분들도 있다. 예전 홍성의 군계(郡界)를 답사하며 길을 냈던 어르신들도 있고, 최근에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 김좌진 생가에서부터 보령에 있는 장군묘까지의 35km길(가칭 김좌진 장군길)을 초도 답사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남산의 산책길도 꾸준한 관심으로 잘 관리되고 있다.

둘레길을 일부러 낼 필요는 없다. 역재방죽 산책로처럼 그냥 지역주민들이 좋아하는 작은 길을 정비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 홍성천 월계천을 따라 큰 시장에 가는 ‘장보러 가는 길’, 조양문에서 홍성역까지 ‘역전가는 길’, 홍주읍성을 둘러싼 ‘동네 한바퀴 길’ 등 우리와 친숙한 소소한 길을 생활밀착형 둘레길로 잘 다듬고 꾸민다면 ‘기꺼이’ 걸을 것이다. 사람은 길에서 쉬고 쉴만한 곳에서 머물기 마련이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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