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추 혼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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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추 혼내기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7.2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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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상추가 제대로 크지 않는다고 화를 낸 적이 있는가? 그 상추에게 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혼낸 적이 있는가?

새로운 질병이 나타나면 인과관계를 연구하고 치료법을 개발하기 위해 노력한다. 치료법 가운데 하나가 약을 만드는 것이다. 약은 단계별로 임상실험을 거치고 최후에 사람에게 적용되는 과정으로 알고 있다. 연구자들은 처음 발생한 질병을 연구하면서 다양한 변수를 생각하게 되고,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 것이다. 

사람의 생명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라 모든 변수를 통제할 수도 없고 완벽한 과업을 시행하기 어려우므로 자연스럽게 시행착오를 거친다. 시행착오 과정에서 오히려 결정적인 발견을 하기도 한다.

심리적 상처와 질병도 비슷한 경로를 거친다. 단지 마음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알고 보면 마음도 보인다. 마음은 주로 언행으로 나타난다. 사람의 마음과 관계된 것은 치료하는 과정도 약처럼 효과를 일반화하기는 더 어렵다. 모든 것이 사람마다, 사례마다, 시기마다, 감정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하는 말을 중 2병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임을 미리 밝혀둔다. 중 2는 발달적으로 볼 때 수행해야 할 과업이 많은 시기다. 15세 전후고 어린이도 성인도 아닌 애매한 나이다. 흔한 말로 반항의 극치를 달릴 때고, 말도 안 듣고, 풍자하는 말로는 전쟁이 안나는 이유도 바로 중 2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학교와 가정, 사회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중 2가 병이라고 한다면 과연 치료법은 무엇일까? 치료약은 있는 것일까? 이 글을 읽고 있는 중 2 자녀를 둔 보호자들께 질문드리고 싶다. “어떻게 해야 치료가 됩니까?” 추정해 보면 자신 있게 답을 하는 분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 필자는 한 가지 효과적인 방법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냥 안아주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안아주면 아이는 변화가 생긴다. 추가적으로 중 2에게는 말을 많이 해서는 100% 역효과를 본다. 핵심적인 말 한마디가 훨씬 효율적이다.

전원주택을 짓고 작은 텃밭을 가꾸며 소소하게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오이, 상추 등이 농사짓는 주 작물인 듯 싶다. 한 가족이 먹을 양보다 많이 수확하면 주변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농사짓는 즐거움을 말하기도 한다. 

만약에 내가 짓는 농사가 잘 안되면 어떻게 할까? 예를 들어 상추가 제대로 성장하지 않아서 식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 되면 어떤 조치를 취하는가? 설마 상추를 혼내지는 않을 것이다. 네가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고 화를 내는 사람도 없다. 대신 물은 주기적으로 성장에 맞게 주었는지를 살펴볼 것이고, 영양분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햇볕은 어떤지 생각한다. 또 상추를 키우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이 있다. 모든 상추의 크기가 다 다르다. 즉 성장하는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 신기한 것이 같은 땅에서 같은 성장조건임에도 불구하고 상추마다 서로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중 2병도 같은 맥락에서 고려해야 된다. 정말로 학생만의 고유한 문제인지 아니면 상추처럼 물, 영양분, 햇볕 등이 환경문제인지 알아봐야 한다. 물론 사람과 상추를 표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오로지 중 2학생의 말과 행동을 보고 그 아이만의 문제라고 판단하는 것도 역시 무리가 있다. 그리고 중 2는 상추처럼 개인차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같은 보호자 아래서 생활해도 아이들은 성격뿐만 아니라 학업성취와 흥미분야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오늘 밤 중 2병을 심각히 앓고 있는 아이의 잠자는 모습을 관찰하고 상추를 떠 올리며 마음속으로 물어보자.

“상추야! 지금 네가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줄 수 있겠니? 말하기 싫으면 지금 안 해도 괜찮아. 난 네 옆에서 조용히 기다려 줄게.”


변승기 <한국K-POP고등학교 교사·칼럼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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