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유공자 이상만 선생 공적비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른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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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유공자 이상만 선생 공적비 계속해서 구설수에 오른 까닭은?
  • 박승원 기자
  • 승인 2023.07.27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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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들여 만든 공적비에 오자
허술한 행정업무 처리에 빈축
두 번 다신 이런 실수 없어야

본지 제796호(2023년 7월 6일자 8면) “아차차, 독립유공자 공적비에 ‘오자’가” 제하의 기사 를 통해 보도된 홍성 출신 독립유공자 이상만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공적비’ 내 오자(誤字)가 정정됐다.<사진>

지난달 30일 열린 ‘공적비 제막식’ 취재 과정에서 공적비 하단에 “그의 유해는 국립서울현충원 임시정부 요인묘역에 ‘안정’되어 있으며”라며 ‘안장(安葬)’을 ‘안정’으로 잘못 새긴 것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홍성군은 확인 결과 오자가 맞다고 인정하고 “석공회사 측과 협의해 신속히 공적비의 오자 교정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전하며 “향후 이러한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통해 독립유공자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지난 24일 공적비가 위치한 충령사를 다시 방문해 확인해 본 결과 오자였던 ‘안정’이 올바르게 ‘안장’으로 정정돼 있었다.
 

다같이 노력했는데 군수이름만?
전면부에 지나치게 크게 새겨져
군의회, 과잉충성·전시행정 지적

이상만 목사 공적비 추진위원회를 결성하며 공적비 제작에 앞장섰던 홍성군기독교연합회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추진된 이번 공적비 제작 과정에서 노출된 허술한 행정업무 처리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면서 “이상만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목적에도 찬물을 끼얹는 격과 마찬가지이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공적비 내 이용록 홍성군수를 비롯해 공적비 추진에 힘쓴 관계자들의 이름을 함께 넣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홍성군수의 이름만 단독으로 새겨졌고, 이와 관련해 홍성군기독교연합회 차원에서도 별도로 논의를 거쳐 적절한 대응을 펼칠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한편 지난 19일 열린 제297회 홍성군의회 임시회에서 이정윤 의원은 공적비 제막식에 참석한 지역 원로들이 공적비 전면부에 크게 새겨진 ‘이용록 홍성군수’에 대해 불편함을 나타낸 점을 지적하며 “홍성군의 큰 어르신들이 보는 시각에서 불편함을 느꼈다면 그것이 맞는 것”이라며 “충성행정인지, 전시행정인지 이해가 되지 않고, 앞으로 본 취지에 어긋나는 행정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선균 의장 역시 “군수의 명함을 새기는 것이 문제가 되진 않더라도 지나치게 크게 새겼다”면서 “향후 공적비, 효자비, 유허비 등을 세울 때 추진위원 명단 속에 함께 새겨넣은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이상만 선생은 지난 지난 1884년 홍성군홍성읍 고암리 영암마을에서 출생해 목회 활동을 이어오다가 1919년 3·1독립운동 발생 직전부터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했고, 1945년 광복 이후에도 우리나라 국민의 안전과 재산 등을 지키기 위해 제반 업무 등을 처리한 공로를 인정받아 1963년 김복한·이설 선생과 함께 건국훈장 독립장에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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