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 정체성과 문화관광산업
상태바
홍주의 정체성과 문화관광산업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8.24 08: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 많은 것들은 생산과 소비라는 시장원리로 작동한다. 시장원리에서 본다면 전국 지자체들의 정주인구(定住人口) 유입정책은 정치적 구호일 뿐 성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저출생으로 전체인구가 감소(생산)하고 있어 필수구매에 해당하는 인구유입의 필요경비와 경쟁력은 높아졌고, 이미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거환경이라는 사회기반시설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빈약한 재정으로는 인구유출 방어에 몰두하는 대도시를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도 큰 몫을 한다. 우리 홍성만 보더라도 주거, 교육환경 등의 이유로 젊은 세대들은 내포신도시로 옮겨간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시도하는 사회기반시설의 현대화 등과 홍주성 복원 같은 지역 활성화의 기틀을 마련하는 사업들은 투자와 투기의 경계에 서 있다 할 만큼 엄청난 위험성이 따름으로 다양한 지혜가 모아져야 한다. 

예를 들면 수년 전 광천읍은 행정복지센터 신축과 함께 시내 도로를 확장하는 등의 기반시설을 확충했다. 그런데 토지보상을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그것을 기회로 광천을 떠난 반면 유입은 거의 없었다. 이처럼 지역경제 활성화와 역사회복을 위해 현재 복원중인 홍주읍성 역시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군청이전의 빈자리를 채워야 겨우 본전이다. 그리고 건물철거 등으로 떠난 사람들만큼 유입되거나 아니면 그것을 현격히 뛰어넘는 경제유발효과를 내어야 한다는 엄청난 책임을 안고 있다. 이것은 각 행정단위 간에 한 쪽은 인구유출을 막고 한 쪽은 인구유입을 유도하는 소리 없는 내전(內戰), 생존전쟁이다. 처음 겪는 이 전쟁은 국민 모두가 풀어야할 숙제이다. 지역의 소멸이란 다른 말로 국가의 죽음이니 말이다. 

이미 대부분의 지자체는 이 같은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정주인구 유입을 포기하고 유동인구(流動人口)를 늘리려는 관광산업에 매달리고 있다. 이것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경쟁의 혈투가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진화론은 인간의 욕구와 욕망은 생존을 위한 필수조건이라 해석한다. 그래서 욕구와 욕망은 충족되는 동시에 곧바로 결핍으로 돌아서고 새로운 것을 찾아 나서도록 유전자에 설계돼있다는 것이다. 가장 쉬운 설명으로 남녀 간의 사랑이 한 번으로 충족된다면 대를 이어가는 생산력이 떨어져 종족자체가 소멸되기 때문이란다. 

인간이 느끼는 즐거움의 척도를 연구한 결과 역시 맥락을 같이한다. 가장 큰 즐거움은 마음에 드는 이성을 기대감으로 만나는 일이며, 두 번째가 여행을 준비하는 과정이다. 이 수치는 이성을 경험하고, 여행을 체험했을 때의 행복감보다 더 높다고 한다. 속된 말로 ‘집 떠나면 개고생이다’를 외치면서도 여행 가방을 들고 행복감에 젖는 모순이 반복되는 이유이다. 

이처럼 관광산업은 유동인구를 늘리는 가장 좋은 소재임에 분명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 예를 들면 ‘경주 동궁의 월지와 월정교’, ‘수원 화성의 밤풍경’, ‘안동달빛기행-달그락’, ‘홍주읍성의 야행(夜行)’ 등 문화재와 밤풍경이라는 같은 주제에서 행해지는 행사(축제)에서 무엇으로 경쟁력을 확보할지는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경주, 수원, 안동은 자연환경이 워낙 빼어나 처음부터 홍주읍성은 경쟁대상이 안 된다. 그래서 기획자들은 ‘홍주의병’과 역사에 무게를 두는 것 같다. 문제는 가볍게 밤놀이를 나온 동네 사람들과 일상을 벗어나 즐기려고 여행을 오는 외지인들에게 정신적인 문제를 다루어 밤풍경처럼 쉽게 다가서는 데는 다양하고 신중한 논의가 필요하다.

홍주성 복원에 다음과 같은 논의를 보탠다. 인간의 역사는 진화의 기록과 같다. 건축물처럼 부수고 새로 짓는 게 불가능한 생명체는 과거를 끌어안고서 변화를 거듭한다. 이러한 측면에 보면 이때까지 홍성과 홍주읍성은 권력에는 적응했을지 몰라도 미래성장의 방향성은 잘못 잡은 것 같다. 일반적으로 홍성을 ‘독립운동의 성지’ ‘의병의 도시’라고 부르고 식자(識者)들은 《논어》 구절을 따와서 견위수명(見危授命)을 정체성을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독립, 의병, 견위수명 등은 의(義)라는 옳음을 바탕으로 한다. 옳음이란 어떤 것에 대한 상대적 개념이다. 따라서 홍주읍성이 말하는 옳음이란 최소한 국가의 존립과 국익이어야 한다. 그런데 홍성야행 기획에서는 일제가 강제한 홍주라는 지명을 회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간과했으니, ‘홍주읍성’에서 ‘홍주의병’을 주제로 하면서도 ‘홍성야행’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제를 놓친 격이 됐다. 이처럼 그동안 성(홍주)을 알리고 가꾸는 데 있어서 국가 차원의 옳음이 아니라 편협한 이익에 휘둘리다 보니 엉뚱한 푯말만 난무할 뿐 정작 홍주의 역사적 위상과 ‘호국’, ‘애민’은 묻혀버렸고, 독립운동의 성지라는 자부심마저 퇴보했다는 평가이다. 

만시지탄이다. 그러나 잘못을 깨닫고 개선하려는 그날부터 희망의 첫날이 되는 만큼 결단의 용기가 필요하다. 이제라도 군민과 관계자들은 홍주성 복원에 폭넓은 의견을 수렴해 22개 군현을 통괄했던 과거 위상과 의사총의 영령들과 홍주의병, 독립운동 등 국가 차원의 옳음을 담아내어야 한다. 그것을 기반으로 홍주성이 역사, 문화 관광에서 국내 어느 곳도 넘볼 수 없는 독립운동 성지가 돼야 한다. 그래야만 독립의 완성인 통일의 주역으로 본래 모습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