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 결성 사람 최선달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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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결성 사람 최선달 명창’
  • 송경섭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12.07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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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판소리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최선달(1726~1805) 명창은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결성에서 태어났다. 2026년이면 선생의 탄생 3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판소리가 언제부터 어떤 사람에 의해 시작됐는지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최선달 명창이 우리 결성면 성남리 사람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정노식은 1944년 조선일보사에서 출간한 《조선창극사》에서 판소리 광대의 효시로 하한담과 결성 사람 최선달을 말하고 있다. 처음엔 결성의 향토사 연구자나 국악인들에게 ‘결성 사람 최선달’은 미스테리한 인물이었다. 

최선달 명창의 본명이 최예운(崔禮雲)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고증작업에 큰 진전이 있었다. 해주최씨 좌랑공파 25세였고, 1726년에 태어나서 1805년에 세상을 떠난 최예운(崔禮雲)이 최선달 명창의 본명이었다.

동화작가이자 교직 활동을 은퇴한 김정헌 선생이 취재한 지역신문 기사를 보면, 1998년에 최선달 명창과 결성 관련 고증작업을 실시했던 당시의 기록이 나온다. 최선달이라는 이름은 해주최씨의 족보에는 없었다. 결정적인 단서는 후손인 최재설 당시 결성면장의 집안에 전해오던 모필 글씨였다.

“25세인 예운 할아버지가 명창으로 이름나서 가선대부의 품계를 국가에서 제수받았다”라는 내용이었다. 이 붓글씨 한 장을 근거로 집 뒷산의 최씨 집안 비석을 찾아보게 됐다. 그 결과 ‘가선대부 최공지묘(嘉善大夫 崔公之墓)’라고 새겨진 비석을 발견했다. 이렇게 하여 최선달 명창은 본명이 최예운이고, 해주최씨 가문의 결성 사람으로 확실하게 밝혀진 것이다.

지금은 방조제 공사로 달라졌지만 최선달 명창의 고향 성남리 마을은 당시에 바다와 맞닿아있었다. 최선달 명창은 어려서 누에산에 올라가 앞바다를 바라보며 소리를 익혔다고 한다. 득음하고 광대의 길에 나선 최선달 명창은 영조 시절에 전주신청에서 춘향무굿(춘향의 넋을 달래기 위한 씻김굿)을 부르게 된다. 하은담과 최선달 명창이 춘향가를 판소리로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부른 ‘춘향가’가 판소리의 효시가 됐고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고 한다.

결성농요가 지난 1993년에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시에 결성농요는 13명의 소리꾼 중에서 9명이 최선달 명창의 후손이었단다. 최선달 명창의 타고난 재능이 오랜 세월 동안 후손들에게 유전됐고 결성농요에서 드러난 것이다.

한국 판소리학회 회장이신 목원대학교 최혜진 교수는 최선달 명창 연구에 가장 적극적인 학자이다. 최 교수는 ‘판소리 명창의 비조 최선달 연구’, ‘충청지역 판소리 문화유적 현황 연구’, ‘홍성지역의 명인 명창과 중고제 판소리의 변모’ 등의 최선달 명창 관련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중고제 판소리의 맥을 잇고 있는 박성환 명창께서 결성향교의 이현조 선생(문화 in 결성)과 함께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최선달 명창 선양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홍성군이나 홍성군의회에서도 최선달 명창 기념사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지난 8월 25일에는 최선달 명창 기념사업을 위한 학술세미나가 홍성군청 회의실에서 열리기도 했다. 

고민해볼 수 있는 기념사업으로 학술세미나 개최, 생가복원, 기념관 건립 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누가 ‘결성 사람 최선달 명창’ 기념사업을 주관하는 것이 좋을까? 어디에서 이 사업이 이뤄져야 할까? 언제 이 사업을 해야 할까? 그것은 결성 사람들에 의해서 결성에서 이뤄지는 것이 맞다. 최선달 명창, 그분이 결성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생의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는 2026년 전후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


송경섭 <결성감리교회 담임목사,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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