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입고 되었다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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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입고 되었다길래
  • 한학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2.22 08:3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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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연한 봄이 닥칠 징후는 아직이다. 봄의 가벼운 징표는 바위틈 고드름 끄트머리에 위태롭게 매달렸다 맥없이 주저앉는 물방울이 아닐까. 겨울은 매서운 기운이 다하면 다양한 방도로 봄을 재촉한다. 맨몸뚱이로 엄동을 지나는 것이 곳곳에 푸르다. 다가올 봄의 기대치가 자못 궁금하다. 알맞을 때 제자리를 지키는 생물을 보면 애틋하고 아름답다. 살얼음이 다 녹고 나면 막 싹을 틔우는 것들, 푸른 하늘이 싱그러울 것이다. 유유히 떠도는 흰 구름의 한가로움은 어디에 비길까. 나뭇가지에 맺힌 분홍색 꽃망울이 폭발하는 봄을 초대하는 꿈은 나른하다. 무엇이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예상하기엔 무리가 있다. 그렇더라도 뭇 것을 모아 시사하는 바로 다양한 해석을 하는 재미가 봄을 기다리는 쏠쏠함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삶 속에 희망, 사랑, 아름다움 같은 긍정적인 요소가 있지만, 절망과 상처, 적개심처럼 부정적인 요소도 뒤섞여 있다. 우리 세계는 불안 위에 위태롭게 얹혀 있는 셈이다. 사회 공동체 삶의 질서를 외면하는 반응이 남의 삶에 개입하기를 꺼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세상을 살아가며 삶의 파고는 누구에게나 있다. 긍정적인 대상과 좋은 기억에 자신을 동일시하다 보면 자신을 좋게 생각하게 되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누구든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 상처에 공감하고, 네 잘못이 아니라고 손을 내밀어주는 이웃이 필요하다. 삶이 나를 너무 들볶는다 생각될 때, 삶의 좌절을 견디는 방식에는 딱히 정답이 없지만, 더 희망적인 방식은 어디엔가 있다. 먼 길을 가는 여행은 또 하나의 인생이고, 또 다른 여행이다. 겨울바람을 견디는 생명을 가진 것들의 치열함에서 삶을 반추해볼 일이다. 거기에 스스로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상대편의 처지와 형편을 내 것처럼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무례와 오해로 인한 실수는 줄고 공감과 소통의 문이 열린다. 자신과 타인에게 적용하는 잣대가 다른 내로남불의 유혹에 굴복할 때가 많은 게 현실이다. 자기에게 이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먼저 슬며시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다면 상대가 먼저 보이지 않을까. 이맘때만은 삶이 외줄 타기 같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제22대 총선이 충분히 한몫한다. 우리는 경쟁이 빡빡하게 전개되는 양상을 한마디로 우열을 가리기 힘든 초접전 양상, 박빙이라고 한다. 사회변화가 첨예하고 초접전 현상이거나, 이상 기후로 명확하지 않은 절기나 날씨 변화가 일어나는 현상을 슈퍼컴퓨터가 ‘역대급 접전’으로 판정할 때가 있다. 이제 이런 사회의 다변화에 익숙해질 때가 아닌가 싶다. 선거는 유권자의 존재를 시사하는 단서로 예측해서 불확실성이 있지만, 우리의 봄날은 연초록 나뭇잎의 낭만적인 단서로 봄을 부른다. 이런저런 결과치를 보고 감탄하는 것은 너무 막연한 기다림이다. 오히려 슬기롭고 낭만적인 삶을 위한 행복한 상상이 희망의 날갯짓이다. 

사회가 다변화하면서 AI나 빅데이터 등을 통해 예측 가능한 세상이 활짝 열렸다. 물론 복잡한 역학관계와 엮여 추측이 난무한 현상도 그리 적지 않다. SNS를 활용한 장점이 더없이 많다. 반면 SNS를 대표하는 카카오톡에 지배당하는 삶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 또한 늘고 있다. 어쨌든 세상의 소리는 내내 침묵하지 않을 태세다. 온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초 디지털 시대를 고려하더라도 SNS가 덮치는 사회의 움직임은 폭주다. 귀에다 이어폰을 꽂고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듣고 세상의 소리에 귀를 닫는다. 총선을 앞둔 정치인이 온갖 감언이설로 입방정이 치열하다. 예전처럼 고요하게 오던 봄의 소리는 뒤미치고 왁자지껄한 총성만 들린다. 내면에서 익어가는 영혼 있는 정치인의 목소리를 들으며 아름다운 봄을 기다리는 즐거움은 지나친 욕망에 불과할까. 이제 SNS가 주목받는 시대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일상이 지지부진하고 뭔가 잘 안 풀린다고 느낄 때, 혹자는 일탈을 감행하지만 거의 모두가 꿈을 꾼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변화는 그다지 쉽지 않다. 모든 변화에는 창조적인 파괴의 과정이 필요해서다. 고정관념을 깨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을 안착하려면 여러 가지 비용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치도록 나를 바꾸고 싶을 때와 맞닥뜨리는 행운도 있어야 한다. 세상의 많은 천재는 한 분야에서 보통 사람의 상상을 뛰어넘는 빼어난 능력의 소유자였지만 늘 외톨이였다. 그가 가진 비범한 능력 그 탓에 특별한 사람으로 인식돼 일반 무리 속에 자연스레 섞이지 못했다. 다만 그들은 계속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색다르고 획기적인 변신과 변화를 위해서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지고 변화의 속도가 급속히 빨라진다. 우리가 설마설마하면서 부대끼며 살아온 이 세상을 끝까지 믿어야 한다.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의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봄의 풍경과 나무들의 흔들림 사이로 봄바람이 느껴질 때까지 초연해야 한다.`

한학수 <청운대 방송영화영상학과 교수,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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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 2024-02-22 20:35:59
봄을 기다리는 글쓴이의 봄에 대한
통찰력 있는 해석을 잘 읽고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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