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노동을 한 체험에서 인식 득도한 다양한 현실정서를 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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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노동을 한 체험에서 인식 득도한 다양한 현실정서를 담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02.2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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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문재 시인의 첫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는 1996년 10월, 출판사 실천문학사에서 ‘실천문학의 시집’ 112째로 펴낸 맹문재 시인의 첫 시집이다. 

시인이 시집 후기에 ‘안전화를 벗고 포항을 떠나올 때 다짐했던 시의 무기화. 제철소의 옛 동료들이 있기에 지금껏 버티고 있지만, 점점 힘에 부치는 일임을 느낀다. 그러나 어쩌랴. 끝까지 걸어야 함이 나의 운명인 것을’이라고 밝혔듯, 5부로 편집된 시집에는 시인이 20대 후반 뒤늦게 대학에 들어가기에 앞서, 포스코에서 현장 노동자로 7년 동안 땀 흘려 철판을 옮기고 쇠붙이를 다루는 공장노동을 한 체험에서 인식 득도한 다양한 현실정서가 곳곳에 배어 있다. 이를 바탕으로 1부와 3부에 일상적 삶의 경험을, 2부에 노동현실과 노동자의 다양한 삶을, 4부에 농촌 현실을, 5부에 분단과 민족문제를 담았다.

시집에 대해, 오형엽 문학평론가는 ‘붉은 빛의 그리움과 자기 성찰’이라는 제목의 시집 해설에서 “맹문재 시의 특징은 치장 없는 소박함과 진솔함에 있다”면서 “다양한 소재와 인식 및 시작 방식을 추구함으로써 변모된 현실에 대한 다각적인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고 평했으며, 이시영 시인은 뒤표지글에서 “맹문재의 시에서는 어떤 ‘기운’이 느껴진다. 그것은 이 세계와 굳게 대결하려고 하는 자에게서 느껴지는 팽팽한 힘 같은 것이다”라고 논했다. 김종희 문학평론가는 “그의 시와 더불어 우리는, 서민들의 궁핍한 삶이 얼마나 질박하면서도 의로울 수 있으며, 그 명료한 인식이 어떻게 시대사의 파고에까지 이르게 되는가를 목도할 수 있다”고 논했으며, 정인화 시인은 “해거름 때면 들판에서 일하다 적당히 지쳐 돌아오는 평범한 농사꾼 같은 마음을 가진 그의 시를 대하면 그저 마음이 편하고, 지나고 나면 그 저녁 어스름이 추억이 되어 가슴을 적신다. 그 추억 속엔 민중의 삶과 희망이 있어 더욱 정겨웁다”고 평했다.

“먼 길에서 바라보는 산은 가파르지 않다/미끄러운 비탈길 보이지 않고/두릅나무 가지 겁나지 않고 독오른 살모사도/무섭지 않다/먼 길에서 바라보는 기차는 한산하다/발 디딜 틈 없는 통로며/선반에 올려진 짐꾸러미 보이지 않는다//먼 길에서 바라보면/다른 사람의 수술이 아프지 않다/불합격이 아깝지 않고/자살이 안타깝지 않다/배고픔과 실연이 슬프지 않고/아무리 글을 읽었어도 강의 깊이를 볼 수 없다//그러나 길은 먼데서 시작된다/누구나 먼 길에서부터 바위를 굴릴 수 있고/도랑물 소리 들을 수 있다/정기적금 첫 회분을 부을 수 있고/못난 친구들과 잔 돌릴 수 있고 심지어/노동시의 슬픔도 읽을 수 있다//새벽에 나서는 설 귀향길/그리움이 먼 길을 움직인다”(‘그리움이 먼 길을 움직인다’ 전문)

1965년 충북 단양에서 출생한 시인은 고려대학교 국문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1991년 월간지 ‘문학정신’으로 등단했다. 시집 ‘먼 길을 움직인다’, ‘물고기에게 배운다’, ‘책이 무거운 이유’ ‘사과를 내밀다’, ‘기룬 어린 양들’, ‘사북 골목에서’ 등을 펴냈다. 또한 개화기부터 1990년대까지의 노동문학을 중심으로 한국 시문학사를 정리한 학술서 ‘한국 민중시 문학사’와 시론 및 평론집 ‘지식인 시의 대상애’, ‘현대시의 성숙과 지향’, ‘시학의 변주’, ‘만인보의 시학’, ‘여성시의 대문자’, ‘여성성의 시론’, ‘시와 정치’, ‘현대시의 가족애’ 등을 출간했다. 현재 안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태일 문학상, 윤상원 문학상, 고산 문학상, 김만중 문학상, 효봉윤기정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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