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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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 페미니즘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4.03.28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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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페미니즘을 오해하고 있다. 심지어 ‘페미니스트’들 조차도 페미니즘을 오해하고 서로를 저격한다. 정치인들은 성별 갈라치기를 하며 페미니즘을, 또는 그 반대를 정치적 도구로 사용했다. 정희진이 2005년 출판된 《페미니즘의 도전》에서 페미니즘은 그런 것이 아니라고 열변을 토한 지 20년, 그동안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페미니즘의 도전》 책의 부제인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에 걸맞게 저자 정희진은 책에서 일상 속 가정 내의 관계(더 나아가 가정 폭력)에 대해, 개인의 나이 듦에 대해, 진보를 말하는 이들에 대해 다룬다. 거시적인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의 일상이 곧 정치적이라는 전제에서 페미니즘이라는 안경을 쓰고 한국 사회 일상을 바라본다. 그 페미니즘이란 안경은 무엇인가? 나는 인간의 다름을 이해하고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안경이라 말하고 싶다. 
 

정희진/교양인/1만 500원.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은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22쪽)

저자는 책에서 내내 ‘모두가 다름’을 이야기한다. 페미니즘 내에서도 성매매에 대해 급진주의와 자유주의로 나뉘어 다른 입장과 의견을 표현한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보다 장애인 범주 내에서 각 개인의 차이가 더 크고 다양하다. 그가 책에서 언급하는 다름의 예시는 무궁무진하다. 그는 인간은 모두 다르니, 반대로도 보고, 이렇게도 보라고 제안한다. 남성성도 여성성도 자원이 되지 않고, 각기 다른 개별성과 타자성이 존중되는 인간 그 자체로 보는 것을 말한다. 

서울 한복판 테헤란로에는 밤새 뿌려지는 종이 조각들이 있다. 키스방, 셔츠방, 레깅스방, 교복방. 운동하며 내 몸을 바로 보기 위해 입는 레깅스와 학생이기 때문에 (원치 않아도 대부분) 입는 교복이 남성들에게 성적 대상이 된다는 것은 참 이상하다. 무엇 때문인가. 반면 넷플릭스의 <성인물: 네덜란드&독일 편>에서는 친구 사이인 남녀가 알몸인 것에 거리낌 없이 함께 목욕을 즐기는 혼탕 문화와 나체로 스포츠를 즐기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알몸인 상대의 몸을 성적인 대상으로 느끼지 않는다. 어떤 사회에서는 나와 다른 타인의 몸이 착취와 탐욕의 대상이 되고 어떤 사회에서는 그저 그대로 존재하는 것이 된다. 그 인식의 차이는 무엇에서 비롯됐을까. 

다름을 배울 수 있는 성, 우리 사회의 성교육이 어떠한지 묻고 싶다. 남자다움,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찾아가자는 취지로 2020년 여성가족부에서 진행했던 ‘나다움어린이책 교육문화사업’은 많은 비판을 받고 축소됐다. 사업에서 선정한 성교육책의 성관계를 설명하는 그림이 적나라해서 교육에 부적절하며, 성관계를 신나고 멋진 일, 하고 싶은 일이라고 표현한 것이 조기 성애화를 우려하게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비슷한 예로 2023년 충남의 보수 단체와 정치인들이 충남 내 공공도서관의 ‘성교육&성평등’ 어린이 책을 폐기 처분해달라는 민원 제기가 있었다. 우리는 서로의 다름 중 하나인 ‘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기에 그 (사진도 아닌) 그림이 사실적이어선 안 되고, 성관계가 신나고 멋진 일이어선 안 되는가. 

독문학자 김누리 교수는 tvN의 채널 <미래수업>에서 다음과 같이 묻는다. ‘민주주의의 적이 무엇입니까?’ 독일의 사회학자 아도르노에 따르면 바로 ‘약한 자아’이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는 강하고 분명한 자아를 키워나가야 한다. 김누리 교수는 성교육은 나와 자아의 관계를 배우는 것이기에 성교육이 가장 중요한 정치교육이라고 말한다. ‘성’을 통해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와 존중의 마음을 배우는 것. 이것이 우리나라 성교육이 페미니즘과 함께 가야 하는 이유이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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