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산불 1년… 여전히 임시주택에 사는 주민들
상태바
홍성산불 1년… 여전히 임시주택에 사는 주민들
  • 오마이뉴스 이재환 기자
  • 승인 2024.04.13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산불 1년… 상처, 얼마나 아물었나? 〈2〉
서부면 거차리 피해주민들은 콘테이너로 만든 임시주택에서 살고 있다.

“2023년 4월 2일은 잊을 수가 없다. 집 주변 산을 보면 눈물이 난다. 소나무들이 정말 예뻤다. 한순간 벌거숭이 산이 됐다. 마음이 아프다. 언제 저 산이 다시 파랗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산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충남 홍성군 서부면 양곡리에서 만난 A씨의 말이다. 홍성산불은 지난해 4월 2일 발생해 3일 만에 가까스로 진압됐다. 서부면 중리에서 발화한 산불은 삽시간에 서부면 일대로 번져 나갔다. 피해 면적은 1454ha로 서부면 산지 70%가 불에 탔다. 진화되기까지 53시간 동안 40여 채의 민가가 전소됐다. 반소 된 민가도 10여 채다. 이재민은 53가구 91명이나 됐다.

홍성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난 후, 다시 찾은 산불현장에서는 여전히 불에 탄 나무를 자르는 벌목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벌목이 끝난 일부 산지에서는 소나무 묘목을 심고 있는 장면이 목격됐다. 주민들은 “산불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 있지만 조금씩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부면 양곡리는 발화지점에서 가까워 화재 첫날부터 피해가 컸다. 양곡리에서 만난 주민 A씨는 “대형 산불은 숲이 울창한 동네에서 나는 줄 알았다. 여기는 산이 야트막하고, 도로도 가까워서 산불이 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어서 성당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멀리서 집 쪽에 불이 난 것을 목격했다. ‘설마 우리 집이 타겠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됐다. 집이 전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수리비만 1억 원 정도 들었다. 지금은 그나마 거의 복구가 됐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서부면 양곡리의 한 야산에서 인부들이 소나무 묘목을 심고 있다.

서부면 거차리는 산불 이틀째인 지난해 4월 3일에 피해가 컸다. 고령의 주민들은 주민등록증조차 챙기지 못하고 급히 대피소로 이동했다. 거차리 주민 김종근(92) 씨는 기자가 찾아간 날도 집 근처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산불로 집이 전소된 김 씨는 홍성군에서 지원한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임시주택에서 거동이 불편한 부인과 함께 살고 있다.

김 씨는 “산불 이후에는 잠이 잘 안 온다. 우리 동네는 오지여서 6·25 한국전쟁 때 인민군도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며 “마을을 지키며 평생을 살았다. 이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스무살 무렵에 내가 직접 심은 소나무들이 산불로 모두 다 탔다. 언제 다시 산이 푸르게 될지 기약이 없다. 지금은 소나무가 많은 동네가 제일 부럽다. 앞으로 100년은 지나야 숲이 이전처럼 복원될 것 같은데, 내 생전에는 그 모습을 다시 보기 어려울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서부면 남당리 내동에 살고 있는 전용태(81) 씨는 “그날(산불 당시)이 생각이 안 날 수는 없다. 그나마 홍성군과 여러 단체에서 도와줘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면서 “마을사람들은 일을 하지 말고 그만 쉬라고 하는데, 쉴 수가 없다. 잊지 않고 찾아와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지난 2일 ‘제79회 식목일’을 맞아 진행된  ‘식목일 기념 희망의 나무 심기’ 행사.

홍성산불은 피해주민들이 80대 이상 고령층이 많다는 특징이 있다. 인명피해가 없어 다행이지만 평화로웠던 주민들의 노후와 일상은 산불 이후 조금씩 뒤틀려 있었다. 지난달 31일, 양곡리를 다시 찾았다. 홍성산불 당시 주민 대피소에서 봤던 김아무개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서다.
김 할머니는 당시 기자에게 자신의 집 주소를 전하며 “급하게 나와서 우리 집이 어떻게 됐는지도 몰라, 우리집에 가서 좀 살펴봐 줘”라고 말했다. 당시 김 할머니가 알려준 주소로 찾아갔지만 집은 이미 전소된 상태였다. 김 할머니에게는 차마 그 상황을 알리지 못했다.

1년 만에 만난 김 할머니는 “노인인데 아프지 않고 잘 산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그럭저럭 살고 있다. 요즘에는 유난히 눈이 더 안 보여서 밖에 나가기가 어렵다”며 “노인정이나 마을회관도 못간다. 동네 사람이 이따금 안부 전화를 하곤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군과 정부에서 지원받은 돈을 약값과 병원비로 다 쓰고 있는 것 같다”며 한숨을 내 쉬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