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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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
  • 김혜진 <홍성녹색당>
  • 승인 2024.04.25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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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이라니,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고 식은땀이 난다. 내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는다고? 왠지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당당하게 말하기 힘들 것만 같다. ‘정신질환’이라는 용어 자체가 참 낯설다. 알지 못하는 아득히 멀리 떨어진 세계의 말 같다. 아니,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지난해 말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라는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를 통해 공황장애, 우울증 등 다양한 정신질환의 증상이 어떤지 그리고 주변에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중에서 조현병을 앓는 환자가 등장하는 회차가 있다. 이 환자의 가족들은 새 아파트로 이사를 하는데, 조현병 환자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주민들이 입주를 반대하는 고초를 겪는다. 아플 뿐인데 벌써부터 범죄자 취급을 당하는 것이다. 
 

리베카 울리스/서울의학서적/1만 8000원

‘사랑하는 사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라는 책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 그 가족들과 함께 일해 온 가족치료 전문가 리베카 울리스가 쓴 책이다. 이를 조현병을 앓는 자녀가 있는 강병철 씨가 번역했다. 중학교 1학년 때 갑자기 이상하게 변한 아이는 강박, 공포, 불안에 따른 환청, 망상과 같은 증상들로 사회적으로 고립되기 시작했고 가족들도 무너져 내렸다. 도대체 아이가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하루하루 지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양한 방법을 찾고 시도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의사인 자신조차 양질의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운데, 이런 상황에서 다른 부모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때 찾은 이 책으로 그는 큰 위안과 힘을 얻었다고 한다.  환자에게 가장 중요한 환경인 가족들이 무너지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 부분에 대한 인식조차 없는 실정이다. 환자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사회적 편견과 낙인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런 어려운 상황에 처한 가족들을 위한 매뉴얼이라고 할 수 있다. 주요 정신질환에 대한 설명과 그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기술, 한발 더 나아가 힘든 상황에서 감정을 다스리는 방법, 주변의 부정적인 시선에 대처하는 방법들도 나와 있다. 

옮긴이 강병철 씨는 아이와 캐나다로 떠났는데, 그 나라의 정신질환에 대한 시스템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환자당 한 명의 간호사가 배정돼 사회적 갈등 발생 시 개입해 필요한 조치를 해주는가 하면, 일상생활까지 돌봐준다. 같은 환자들끼리 모여 장을 보고 파티하고 취미생활 할 수 있는 공간과 모임도 많다. 특히 가족들에 대한 지원과 교육이 대단하다. 전담 심리학자가 배정돼 감정을 돌봐주고, 힘들어하는 형제들에 대한 프로그램도 있다. 모두 무료이고, 가족들에게 필요한 교육 기회는 너무 많아 고르기도 힘들 정도라고 한다. 

제3장 중, ‘일상생활의 일반적 가이드라인’을 살펴보자. ‘존중할 것. 조용하고 직접적인 태도를 취할 것. 완급을 조절할 것. 사람과 질병을 따로 생각할 것.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할 것. 사랑의 거리를 유지할 것. 규칙과 한계를 정할 것. 부정적인 감정 표현하는 방법……’ 가이드라인 목록을 보니 가슴이 찡하고 아프다. 사실 이 기술들은 정신질환을 앓는 환자들뿐만 아니라 ‘누구나’에게 적용돼야 하는 것들이다. 놀랍지 않은가? 그리 특별하지 않은 기술들이라는 것이. 인간관계에서, 아니 어떤 관계든 필요한 기본적인 덕목들인 것이 말이다.

학교 구성원 중 장애를 갖고 있는 아이를 위해 모든 학부모가 교육을 받았던 때가 생각난다. 장애 아이를 대하는 기술 또한 기본적인 내용은 위의 가이드라인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상대방이 어린 아이든, 노인이든, 정신질환을 갖고 있든, 신체장애를 갖고 있든. 앞에 있는 사람과 눈을 맞추고 귀를 귀울여 서로 존중하기만 한다면 그 사람이 어떤 행동을 하든 이해할 수 있으며 그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는 말이다.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과 그 가족들은 질병뿐만 아니라 사회적 격리와 거부감으로 이중고를 겪는다고 한다.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의 지평이 넓어지기를 바라며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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