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 여성으로 명칭 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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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단절’이 아닌 ‘경력보유’ 여성으로 명칭 바꿔야
  • 최선경<홍성군의회 의원>
  • 승인 2024.07.11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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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라’는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던 딸아이가 그래도 좋은 반쪽을 만났는지 남자친구를 집으로 데려와 소개를 시켰다. 딸아이가 결혼을 결심하기까지 가장 큰 걸림돌은 출산과 양육으로 인한 경력단절에 대한 우려였다. 대학병원 간호사로 3교대를 하면서도 틈틈이 대학원을 졸업하고 지난해부터는 대학 강의를 나가는 등 자신만의 커리어를 착실하게 쌓아왔는데 행여나 하루아침에 이러한 경력을 잃게 될까봐 걱정스러웠던 모양이다. 엄마이기에 앞서 같은 여성으로서 충분히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지난 오랜 시간 동안 우리 사회는 여성들이 일단 사회활동을 중단하면 그 기간의 경험과 역량을 인정하지 않아 왔다. 출산, 육아, 노후 부양 등 돌봄 책임을 위해 직장을 떠난 여성들은 ‘경력단절’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사회로 복귀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이러한 잘못된 인식을 바꿀 때가 됐다. 돌봄 활동은 결코 ‘공백’이 아니라, 여성들이 축적해 온 값진 경험과 역량의 보고이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사회에 기여한 여성들의 노력을 우리는 더 이상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그래서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은 경력단절이 지닌 결핍 등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경력 보유 여성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경력단절여성’이라는 용어를 ‘경력보유여성’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2023년 기준 전국 전체 여성경제활동인구 794만 3000명 중 경력단절여성은 134만 9000명으로 17.0%를 차지하고 있으며, 여전히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아있다. 

경력단절을 우려해 출산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여성이 늘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노동과 젠더 분야의 석학인 도나 긴서 캔사스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는 한국의 저출산대책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여성의 출산 후 노동복귀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한민국 여성이 결혼·출산·육아·가족돌봄 등을 이유로 한 경력단절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점에는 남녀 모두 공감할 것이다. 

지난 2021년 11월 서울 성동구에서는 전국 최초로 ‘경력단절여성’이라는 명칭을 ‘경력보유여성’으로 변경하고 무급 돌봄 노동에 대한 경력인정서를 발급하는 ‘경력보유여성등의 존중 및 권익 증진에 관한 조례’를 제정한 바 있다. 여기서 무급 돌봄 노동은 육아, 가사, 간병 등을 말한다.

성동구의 조례 제정을 시작으로 경기도를 비롯해 전남 무안군, 충북 음성군, 전남 여수시, 서울시 성북구 등에서도 돌봄을 경력으로 인정하고 ‘경력단절여성’을 ‘경력보유여성’으로 바꿔 부르려는 시도가 전국적으로 이어지는 추세이다.

이처럼 여성의 무급 돌봄 노동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경력단절여성’을 ‘경력보유여성’으로 바라보려는 시도는 여성들의 돌봄 노동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현재 재취업을 준비하는 경력단절 여성들에게 보다 자신감을 심어줄 것으로 기대된다.

언어는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우리 국어사전에 ‘경력’을 찾아보면 ‘여러 가지 일을 했던 경험’이라고 정의돼 있어, 꼭 ‘직업’만 포함되는 것은 아님을 엿볼 수 있다. 그래서 일상에서의 모든 소중한 경험이 존경받는 일터, 다양성과 포용이 있는 일터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이유이다. 

용어를 바꾸는 건 곧 관점을 바꾸는 일로 추후 홍성군 조례를 개정해 여성이 지닌 역량이 정당하게 평가받을 수 있도록 의회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할 예정이다.

지난주 제9대 홍성군의회 후반기 원 구성이 마무리됐다. 홍성군 역사상 의장단 구성원 중 여성의원이 과반을 넘겼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가사·돌봄노동의 경험이 가져다준 여성 특유의 소통과 공감 능력이 성실한 의정활동을 통해 주민들로부터 반드시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경력보유여성’이라는 긍정적인 용어가 우리 사회에 널리 자리 잡고 여성들의 숨은 노동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세상이 된다면 저출산 문제 해결에도 어느 정도 보탬이 되지 않을까 싶다. 경력단절 여성, 그들은 누군가의 가족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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