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그루 율(律) 대표
칼럼·독자위원
국가유산 사적인 홍주읍성 안 북문(망화문) 문루 복원공사를 마무리한 인근에 적산가옥(敵産家屋; 일본인들이 물러간 후 남겨놓고 간 집이나 건물로 ‘적의 재산’이라는 뜻)이 있다.
적산가옥은 북문 인근에 전 향토예비군홍성지역대 사무실 맞은편에 위치해 있다. 홍성읍 오관리 120-1번지로, 건물 면적은 298㎡이다. 지어진 지 90년 정도가 됐다고 한다. 현재는 개인 소유 주택을 홍성군에서 매입했다.
최근 흉흉한 이야기가 떠돈다. ‘적산가옥을 철거한다’는 말이다. 정확한 사실은 한번 더 확인해야 할 것이지만, 기정사실처럼 ‘철거’를 언급하는 말들이 무성하다.
말하자면, 읍성 안 적산가옥의 철거는 안 된다. 물론 적산가옥은 일제강점 아래 일본인이 살았던 가옥이기에 무조건 철거해야 한다는 의견은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적산가옥은 읍성 안 객사를 없애고 자리 잡은 일본의 침탈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라는 점과 일제강점기의 가장 뼈아픈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 등에서 우리의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 활용해야 한다.
여러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보면 “점점 사라져가는 일제강점기 건축물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한국사회의 아픔을 잊지 않기 위함”이라며 “적산가옥을 통해 일제강점 36년의 시간이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고 그 시대의 역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보존하고자 함”이라고 밝혔다.
물론 읍성 안 적산가옥은 무조건 철거해야 한다. 적산가옥은 읍성 객사를 없애고 만든 건축물이기에 객사 복원에 맞춰 무조건 철거하는 것이 옳다.
조선시대 홍주읍성은 중앙의 효율적인 내포지역 통치를 위한 역할을 했으며, 가장 중요한 시설은 ‘객사(客舍)’였다. 흔히 지역의 통치자가 업무하던 ‘동헌(홍성은 안회당)’이 위계가 높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실제로 ‘객사’의 위계가 높다.
그 이유는 조선시대 읍성에 설치된 ‘객사’는 왕의 위패를 보관했으며, 동시에 왕의 사신이 일정기간 기거했던 장소이기 때문이다.
곧 지역 통치자는 왕에게 위임받아 지역을 관리했으며, 객사에 기거하는 사신은 해당지역에서는 왕의 직접적인 대리인과 같았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객사는 철거되었고 객사 터에 일본식 주택양식인 ‘적산가옥’을 지었고, 현재까지 남아있다.
홍성을 역사도시로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읍성의 객사 복원은 다른 소실된 국가유산보다 우선시 돼야 한다.
그렇다면 읍성 객사 터에 위치한 ‘적산가옥’은 철거돼야 하는가? 철거해야 맞지만, 철거만이 답은 아니다.
비록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 읍성의 가장 중요한 객사 터에 불순한 의도로 지어졌다 해도 이 역시 우리의 뼈아픈 역사다. 이 건축물을 근대문화유산으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이 건축물을 객사 터에서 철거하는 것이 아닌 읍성 인근에 이전 복원해 보존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홍성에는 홍성읍과 광천읍을 중심으로 주택, 창고 등 적산가옥들이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읍성 안 적산가옥 등을 비롯해 광천읍 광천역 앞 농협창고, 광천읍 네거리 인근 2층 가옥, 홍성전통시장 철물점 거리, 엽연초생산조합이 사용했던 홍성읍 연초창고(옛 KT&G) 등이다. 특히 홍성읍 연초창고는 지난 2014년 철거 당시 전문가들의 견해는 “흙과 대나무살을 얽는 형태로 지어진 벽채의 공법이 특이한 데다 천장부의 골재 보존상태가 양호해 보강공사를 거친다면 문화공간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홍성읍 연초창고는 홍성읍행정복지센터와 홍성군보건소 부지 위치로 철거의 전철을 밟아야 했다. 그 외의 지역 안 적산가옥 대부분 보존 활용되지 못하고 가벼운 역사 인식과 무분별한 개발로 철거돼 사라지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철거는 안 된다. 홍주읍성 안 적산가옥이라도 제발 읍성 인근에 부지를 마련 이전 복원하고 활용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다시 한번 정책 결정에 책임 있는 이들에게 부탁한다. 적산가옥 철거 대신 이전 후 활용방안을 고민해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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