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한 도시 빈민 노동자의 노동을 육화시킨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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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한 도시 빈민 노동자의 노동을 육화시킨 시편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12.19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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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용 시인의 시집 '개같은 날들의 기록'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br><br>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중학교 3학년 때였다. 토목업자였던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중학교도 마치지 못하고 가출해 부랑자가 되어 오랫동안 객지로 떠돌아야 했다. 서울역 지하도에서 노숙했으며, 배가 고파 매혈을 했다. 중단한 공부를 하고 싶어 일부러 수차례 수감자가 되기도 했다.

서울역 앞 양동 쪽방촌에 방을 얻어 청계천의 지게꾼이 됐다. 건설현장 잡부 일도 했다. 지게벌이와 잡부 일을 해서 받은 노임으로 틈만 나면 남산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고 시를 썼다. 통발배에서 뱃일도 했다. 그 와중에도 시를 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1945생 김신용 시인이 청소년기부터 젊은 날까지 살아온 이야기다.

시인은 1990년 출판사 ‘세계사’에서 두 번째 시집 <개같은 날들의 기록>을 펴냈다. 166쪽 분량의 시집은 독자들로부터 깊은 사랑을 받아 7쇄까지 발행했다. 그 사랑에 힘입어 2015년 출판사 ‘문학의 전당’에서 ‘시인동네 시인선’ 31번째로 178쪽 분량의 증보 개정판을 출간했다.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이 시집을 처음 출간할 때, 시인의 말을 쓰지 않았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가슴만 답답하고 막막했기 때문이다. 이미 시에 할 말이 다 들어 있는데 무슨 말을 더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는 아마 이런 생각도 한 듯하다”라면서 “‘이 개 같은 날들의 기록’이 현재 진행형이 아니길…….”이라고 밝혔듯, 시에 모두 담아 놨기에 사족인 ‘시인의 말’이 필요 없는, 1960년대부터 1980년대를 관통한 도시 빈민 노동자의 다양한 노동에서 건져 올려 육화시킨 피땀 서린 시편들이 절절하게 배어 있다. 시인이 ‘시인의 말’에서 기원한 대로 되지 않고, 시집 속에 배어있는 시의 기록이 2024년 현재도 진행형으로 지속 되고 있는 현실이 무척 안타깝다.
 

시집 《개같은 날들의 기록》
시집 《개같은 날들의 기록》

문학평론가 정효구는 ‘허기의 밥풀로 그린 사실화’라는 제목의 시집해설에서 “그의 삶은 보편적인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에게 실감으로 체득하기 힘든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열어 보여주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고 전제, “나는 김신용의 이런 삶과 그 속에서 빛나는 의식의 다채로움을 그의 작품으로부터 읽어내면서, 이른바 허기의 문화 내지는 가난의 문화라는 것을 필연적으로 떠울리게 된다”며 “김신용의 작품은 인간의 실존을 위협하는 허기와 가난의 현장을 그 누구의 작품보다도 리얼하게 표출하고 있으며, 그의 시는 붓으로 창조한 것이라기보다는 허기의 밥풀로 짓이긴 사실화와 같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흐르는 땀방울은 왜 덫이 되어 목을 조를까/짐, 척추를 휘이게 하는 꿈의/이 짐,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더욱 깊이 허리 굽히며/달팽이처럼, 내 등에 지워진 세상/온몸으로 꽃피워 올렸는데/꿈틀대는 근육은 왜 부끄러워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을까//지게여/저 붉은 벽돌담 무너뜨릴 망치일 수 없다면/풀잎이여/허망의 쇠창살 뜯어낼 지렛대일 수 없다면//차라리 감옥이었으면 좋겠다/세끼 밥, 누울 잠자리가 있는 푸른 수의였으면 좋겠다.”(시 ‘지게에 대한 명상’ 부분)

시인은 1945년 부산에서 출생했으며, 1988년 잡지 <현대시사상> 제1집에 ‘양동시편-뼉다귀집’ 등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버려진 사람들>, <개같은 날들의 기록>, <환상통>, <도장골 시편>, <바자울에 기대다>, <잉어>, <진흙쿠키를 굽는 시간>, 시선집 <부빈다는 것>, 장편소설 <달은 어디에 있나>, <기계 앵무새>, <새를 아세요> 등을 출간했다. 천상병문학상, 노작문학상, 고양행주문학상, 한유성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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