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공장서 체험한 고단하고 암울한 노동을 핍진하게 노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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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공장서 체험한 고단하고 암울한 노동을 핍진하게 노래하다
  • 정세훈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5.01.09 0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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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성배 시인의 첫 시집 '아침 햇살이 그립다'
<strong>정세훈</strong><br>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br><br>
정세훈
시인
노동문학관장
칼럼·독자위원
 

<아침 햇살이 그립다>. 15세 소년 공장노동자로 시작해 정년을 바라보는 현재까지 평생 공장에서 노동하며 시를 쓰는 표성배 시인의 첫 시집이다. 출판사 ‘갈무리’가 2001년 ‘마이노리티시선’ 12번째로 펴낸 시집에는, 가난한 소년공 출신 시인이 1990년대 공장 현장에서 체험한 고단하고 암울하고 아픈 노동을 핍진하고 감동 짙게 노래한 시편들로 가득 차 있다.   

“이 땅에 가을이 왔다/귀뚜라미는 울어 쌓는데/허허로운 가슴으로 공장들을 오가며/뚫어져라 꿈을 찾는다//가을은 깊어만 가는데/아침 저녁 쌀쌀함을 느끼며/수출후문 공단거리 야무지게 걷지만/ 달아나는 햇살/삐걱이는 다리/타는 듯한 가슴을 끄집어내지도 못한다//내일이면 며칠째 놀고 있는 것일까/내일이 지나면 모레/뚜렷한 길이 없다//늦은 밤 쪼그리고 앉은 가슴 위로/텔레비전은 자꾸만/풍요로운 들판/결실의 계절 가을이라는데/단풍놀이 떠나가는 가을이라는데//잿빛 공단하늘 머리에 이고/전봇대에 따닥따닥 눌러붙어/빛바랜 모집 공고문 앞에 선다//차가운 바람이 가슴에 와 박힌다”(시 ‘실업일기 1’ 전문)

시인을 ‘아우’라고 호칭하는 서정홍 시인은 ‘아침 햇살이 그리운 사람들에게 바치는 노래’라는 제목의 시집 발문에서 “나는 그들과 함께 길을 걷지 않았지만 시를 쓰는 일이 얼마나 자신에게 가혹하고 남에게 너그러워야 하는지 잘 안다. 성배 아우의 첫 시집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함께 이 길을 걸어온 동지들의 땀방울을 나는 어느 누구보다 잘 안다.”며 “시인의 길은 외롭고 쓸쓸하다. 이 시집은 그 외로움과 쓸쓸함과 모진 아픔과 그리고 가난과 정직을 부둥켜안고 쓰여진 것이리라. 그래서 이 시집은 세상에 나와야 했으며, 이 시집을 읽는 사람들은 시인의 외로움조차 사랑하게 되리라 믿는 것이다.”라고 응원하며 논했다.
 

시집 《아침 햇살이 그립다》
시집 《아침 햇살이 그립다》

김해화 시인은 시집 뒤표지 글에서 “표성배 시인이 쓴 시집을 읽고 나는 가슴이 뜨거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온 시인의 눈물을 보았기 때문이다. 이 눈물이 많은 이들의 가슴을 촉촉이 적셔 주기를 바란다.”고 밝혔으며, 문영규 시인은 “표성배 시집은 현실에 대한 고뇌와 좌절, 분노와 연민이 꾸밈없이 흩어져 있는 언덕이라고 할까. 그의 글을 읽으면 발부리에 툭툭 채이는 느낌 때문에 언제나 우린 긴장하게 된다. 그는 생각만이 아닌 몸소 실천함으로써 이 시집을 일구었다. 투박함조차도 빛나는 것은 바로 생각과 행동을 하나로 이어주는 깨끗한 양심 때문일 것이다”라고 평했다. 

문학평론가 남두현은 “표성배의 시는 곧은 소리다. 홀로 떨어져 부서지지만 그 부서짐은 다시 곧은 소리로 살아나 다른 곧은 소리를 부르고 있다. 곧지만 쇳소리가 나지 않고 다른 이의 마음속 곧은 소리를 부르는 시. 노동자가 낡은 기계 부속품처럼 버려지는 시대. 종이 한 장으로 하나의 가정이 무너지는 시대.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일어나 사람을 불러야 하는 시대. 사람 사는 세상을 위해 곧은 소리가 필요한 시대. 이 시집의 시들은 바로 이 시대의 곧은 소리다.”라고 논했다.

1966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한 시인은 1995년 제6회 ‘마창노련문학상’을 받으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아침 햇살이 그립다> <저 겨울산 너머에는> <개나리 꽃눈> <공장은 안녕하다> <기찬 날> <기계라도 따뜻하게> <은근히 즐거운> <내일은 희망이 아니다> <자갈자갈> <당신은 누구십니까> <당신이 전태일입니다> 등과 시산문집 <미안하다>가 있다. <경남작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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